“게으른 당신 덕분에 재무제표 건강해졌네요”…미국 헬스장 돈 버는 공식 [홍키자의 美쿡]

홍성용 기자(hsygd@mk.co.kr) 2026. 3. 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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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다 보면 극과 극의 헬스장을 마주하게 됩니다.

한 달에 단돈 25달러, 우리 돈 3만 원 남짓이면 이용할 수 있는 ‘플래닛 피트니스’가 있는가 하면, 맨해튼 금융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에퀴녹스’같은 초고급 헬스장도 있습니다. 에퀴녹스의 프리미엄 올액세스 멤버십은 한 달 350달러, 우리돈 50만 원에 육박합니다.

미국 프리미엄 헬스장 ‘에퀴녹스’ 광고.
가격 차이가 무려 14배에 달하지만, 이 두 헬스장이 돈을 버는 근본적인 공식은 놀랍도록 똑같습니다.

헬스장은 사실 임대업이 아닙니다. 보험업입니다.

보험회사는 고객에게 사고가 나지 않을 확률에 돈을 겁니다. 헬스장도 정확히 같은 논리로 작동합니다. 헬스장은 회원이 운동하러 오지 않을 확률, 즉 인간의 나태함에 베팅하는 비즈니스입니다. 미국 뿐만이 아니고요. 전 세계 헬스장이 똑같이 작동하죠.

플래닛 피트니스를 예로 들어보죠.

한 지점당 평균 등록 회원 수는 6000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실제 수용 인원은 300명 남짓에 불과합니다. 만약 이 6000명이 월요일 저녁 7시에 동시에 운동하러 몰려온다면 러닝머신 한 번 탈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에퀴녹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싼 돈을 냈으니 매일 올 것 같지만, 1월이나 2월 연초에 야심차게 등록한 회원의 절반 이상은 봄이 되면 어김없이 유령 회원이 됩니다.

헬스장의 마진율은 바로 이 사람들이 오지 않을 때 극대화됩니다. 모든 회원이 동시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통계적 확신이 있죠. 헬스장은 철저하게 오버부킹 장사를 하는 겁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매달 빠져나가는 25달러 혹은 350달러는 기구 이용료가 아닙니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뛸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심리적 위안을 얻기 위해 내는 일종의 건강 보험료에 가깝습니다.

헬스장 카드를 지갑에 꽂아둔 채 집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는 순간, 헬스장의 재무제표는 한층 건강해집니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바로 헬스장이 수익을 내는 방법입니다.

에어로빅 붐에서 오버부킹 모델까지: 헬스장 산업의 역사
우리가 흔히 아는 상업적 헬스장 산업의 뿌리는 1970~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헬스장은 보디빌더와 일부 운동선수들의 전용 공간이었습니다.
1940년대 후반,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의 ‘오리지널 머슬 비치(Muscle Beach)’에서 초기 프로 보디빌더들의 모습.
대중이 헬스장을 찾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는 1982년 제인 폰다의 에어로빅 비디오 출시였습니다.

이 비디오 한 편이 미국 전역의 거실을 피트니스 스튜디오로 바꿔놓았고,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처음으로 운동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24아워 피트니스’가 1983년에 문을 열었고, ‘LA 피트니스’가 1984년 시작했죠. 그때부터 더 이상 보디빌더 등 특수 계층이 아닌, 일반 대중을 위한 공간으로 헬스장이 급속도로 바뀝니다.

1982년에 출시돼 전 세계에 에어로빅 열풍을 일으켰던 제인 폰다(Jane Fonda)의 홈 비디오 캡쳐.
그런데 이 붐은 동시에 헬스장 업계에 구조적 딜레마를 안겨줬습니다. 새로 등록하는 회원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이들 상당수가 몇 달 지나지 않아 발걸음을 끊었습니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 ‘유령 회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내보낼 수도 없고, 억지로 데려올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업계는 깨달았죠. 이 유령 회원들이 오히려 수익의 원천이라는 사실입니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대형 체인들은 이 역설적 공식을 체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회비를 받되, 공간은 실제로 올 사람의 수에만 맞게 설계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플래닛 피트니스는 이 모델을 가장 노골적이고 정교하게 발전시킨 주인공입니다.

1992년 뉴햄프셔에서 작은 헬스장으로 출발한 회사는 ‘저가 + 오버부킹’의 공식을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이식하며 전국으로 확장했습니다.

현재 플래닛 피트니스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입니다. 전 세계 2700개 이상의 지점을 보유하고 있고, 회원 수는 208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2024년 연간 매출은 약 11억8000만 달러(약 1조 6500억 원)에 달합니다. 영업이익률은 최근 분기 기준 32%를 웃돌고 있는데, 이는 일반 소매업 평균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치입니다.

유령 회원 돈으로 굴리는 무료 초대권, “남의 돈으로 생색내기”
확률을 철저히 계산하는 헬스장들이 구사하는 전략 가운데 가장 교묘한 것이 바로 프리미엄 멤버십 회원에게 제공하는 친구 무료 초대권입니다.

플래닛 피트니스의 최고 등급인 블랙 카드 회원이라면 매번 게스트 한 명을 무료로 데려올 수 있습니다. 에퀴녹스처럼 비싼 멤버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단순한 혜택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마케팅입니다.

미국의 한 피트니스 ‘무료 게스트’ 관련 광고.
첫째, 이 서비스는 남의 돈으로 작동합니다. 유령 회원들 덕분에 텅 비어버린 러닝머신에 친구 한 명을 데려와 뛰게 하는 데 추가 비용이 전혀 들지 않죠. 경제학 용어로 한계비용이 0원입니다. 0원의 비용으로 기존 회원에게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강렬한 만족감을 안겨주는 셈입니다.

둘째, 정교한 ‘끼리끼리’ 마케팅이기도 합니다. 한 달에 350달러를 내는 에퀴녹스 VIP가 데려오는 친구는 바로 자신과 비슷한 경제력을 가진 잠재 고객입니다.

헬스장이 길거리에 전단지를 뿌리거나 구글 광고에 돈을 쏟아붓지 않아도, 검증된 우량 고객이 알아서 자기 수준에 맞는 친구를 손잡고 데려옵니다. 가장 돈이 안 드는 방법으로 가장 순도 높은 잠재 고객을 확보하는 겁니다.

셋째, 인간관계가 헬스장 이탈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혼자라면 비 오는 날 쉬고 싶고, 조금 아프면 빠지고 싶고, 밥을 많이 먹으면 배불러서 가기 싫습니다.

하지만 친구와 헬스장 로비에서 만나기로 약속해 두면, 웬만해서는 나가게 됩니다. 헬스장은 인간관계로 회원을 묶어두고, 그 관계가 서로를 못 나가게 붙잡아 주는 구조를 만들어 둔 것입니다.

헬스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태함’ 위에 세워진 구독 경제
사실 헬스장의 비즈니스 모델은 현대 구독 경제 전체를 관통하는 보편적 공식입니다.

전 세계 대표 구독 모델인 넷플릭스를 볼까요. 월 구독료를 내지만 실제로 매일 콘텐츠를 시청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간 구독료를 내고도 무료 배송 혜택을 쓰는 횟수가 그 비용을 실제로 정당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SaaS 역시 구독 계약을 맺어두고 실제 사용률은 30~40%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들 모두는 ‘구독은 하되, 충분히 활용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소비자 심리 위에서 수익 모델을 설계합니다. 그러나 헬스장 모델에는 다른 구독 서비스와 구별되는 결정적 특징이 하나 있긴 합니다. 바로 죄책감의 활용입니다.

넷플릭스를 한 달간 보지 않아도 별다른 감정이 생기지 않지만, 헬스장 회원권을 끊어두고 가지 않으면 자책감이 생깁니다.

헬스장은 이 심리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회원을 해지하지 않도록 붙잡는 가장 강력한 힘이 기구의 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이미 돈을 냈는데 안 가면 손해 아닌가”라는 매몰 비용의 심리라는 것이죠.

여기에 헬스장은 항공사의 오버부킹 전략과도 닮았습니다.

항공사는 탑승하지 않을 승객을 통계적으로 계산해 좌석 수보다 많은 항공권을 팝니다. 헬스장은 운동하러 오지 않을 회원을 계산해 수용 인원보다 훨씬 많은 회원권을 팝니다.

아메리카항공 실내 좌석 모습.
다만, 항공사는 예측이 빗나가면 보상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반면 헬스장은 모두가 실제로 나타나는 최악의 상황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훨씬 안전한 오버부킹 구조로 세팅돼 있죠.

헬스장에 처음 등록할 때 입력한 이메일 주소도 끊임없는 마케팅 채널로 작동합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 무료 이용권을 드립니다”, “1년 멤버십 갱신하시면 3개월 무료” 같은 문구가 담긴 이메일이 주기적으로 날아옵니다. 이미 회원인 사람에도 이런 메일을 보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존 회원이 그 메일을 지인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헬스장이 구축한 것은 단순한 운동 공간이 아닙니다.

고객이 알아서 가망 고객을 모셔 오고, 서로서로 못 나가게 붙잡아 주고, 이메일 한 통이 또 다른 회원을 낳는 자동 수익 엔진을 구축한 것입니다. 이 엔진의 연료는 다름 아닌 우리의 선의, 작심삼일, 그리고 언젠가는 달라질 것이라는 인간의 영원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지금 소파에 누워 있는 이 순간에,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튕기고 있는 이 순간에도 헬스장의 재무제표는 한층 건강해집니다.

미국에 살아봐야 보이는 진짜 미국. 뉴욕특파원 홍성용 기자가 직접 경험하고 해석한 미국의 돈 이야기. “미국 월세는 왜 이렇게 높고, 중고차는 어떻게 사며, 왜 신용크레딧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걸까?” 직접 체험한 미국살이의 모든 것을, 한국인의 시선으로 깊이 있게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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