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플레이스보다 흥미진진한 망원동 동네 서점 투어!

오랜만에 망원동 지도를 펼칩니다. 유독 서점이 눈에 많이 들어오네요. 망원동에 이렇게 책방이 많았던가, 망원동 산책에 이만한 동기 부여가 없어 보입니다. 골목을 다니며 저마다 개성 있는 서가를 둘러보기로 합니다.

사람도 만나고 책도 한 권씩 사며 망원동에서 산책, 그렇게 펼치는 망원동에서 산 책.

⁂ 스캐터북스

스캐터북스

저만치에서부터 책방 앞에 놓인 캠핑 의자가 보입니다. 분위기가 어떨지 상상이 되네요. 스캐터북스의 이제헌 대표는 산책 중인 강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책은 물론 커피도 내려주는 스캐터북스는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인 듯 알맞은 밀도로 북적입니다.

커피를 찾는 손님들이 오자 책방지기는 능숙한 손길로 에스프레소를 뽑습니다. 책방 이전에는 오랫동안 커피를 했다고 하네요. 그동안 책방 안을 둘러봅니다. 픽션부터 논픽션까지 구성이 참 다양하고 알찹니다. 목수가 짜고 책방지기가 직접 칠했다는 책장과 벽에 걸린 사진들도 참 잘 어울리네요.

Q. 스캐터북스는 어떤 책방인가요?

스캐터(scatter)는 씨 같은 걸 흩뿌린다는 뜻이에요. 여기서 사 간 책 한 권이 씨앗으로 뿌리를 내려 커다란 독서 나무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지은 이름입니다. 제가 책을 좀 늦게 좋아하게 됐는데요,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고 어떤 책을 읽고 나서 책을 완독하는 재미가 있구나, 이 세계를 좀 더 넓게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저처럼 뒤늦게 책을 좋아하게 된 분들, 혹은 아직 책 읽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분들에게 책이라는 씨앗을 한 권씩 심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스캐터북스의 이제헌 대표

Q. 독서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어떤 책이었나요?

헬렌 맥도널드가 쓴 논픽션 『메이블 이야기』입니다. 재미있을 줄 알고 샀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완독을 했어요. 중간중간 재미있는 요소들이 있었거든요. 그때 중간에 있는 이 정도의 재미만 있어도 읽을 가치가 있구나, 책이란 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지요.

헬렌 맥도널드의 『메이블 이야기』

Q. 큐레이션은 어떻게 하시나요?

기본적으로는 제 취향에서 출발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읽었던 책들을 서가에 넣기도 하고, 이 책 안 팔리면 그냥 내가 읽어야지 하는 책을 위주로 입고했어요. 그러다가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으니 제 취향일 법한 책을 싹 찾아본 다음 책 정보를 취합해 검토하고 들여놓았어요. 요즘은 그냥 제목이 예쁘거나 표지가 예쁘다 싶은 책들, 그러면서 내용도 괜찮아 보이는 책들을 즉흥적으로 입고하기도 합니다. 제가 다른 책방에서 봤다면 샀겠다 싶은 책들을요.

위트있게 손으로 쓴 책 소개

제가 소설을 더 많이 보는 편이라 서가에서도 소설 비중이 높아요. 그래서 너무 소설만 파고들고 제 취향으로만 흘러가지 않기 위해 아내에게 찾아달라고 부탁도 하고, 단골 분들에게 추천을 받기도 하면서 다양하게 큐레이션 하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제 취향의 책만 있었는데 이제는 제 취향과 아내의 취향과 단골 분들의 취향이 섞여 있어요.

Q. 스캐터가 씨를 흩뿌린다는 뜻이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심어진 씨앗이 있나요?

작년에 어느 단골손님이 친구분께 저희 책방을 소개해 주셨어요. 그 친구분과 1년 가까이 책모임을 하며 그분께 조금 뿌려지지 않았나 싶어요. 원래는 에세이만 가끔 읽으셨다는데 독서 영역을 넓혀가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책 모임에서도 일부러 SF도 읽고 고전도 읽고 한국 소설도 읽으며 다양한 책을 함께 접했어요.

Q. 스캐터북스에서는 어떤 책을 추천해 주시겠어요?

구희 작가가 쓰고 그린 『기후위기인간』을 추천해 드려요. 기후 위기 문제를 개인의 노력으로 시작 하자는 서점 프로젝트가 있는데, 이제 관심이 생기신 분들께서 기후 위기 문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입니다.

구희 작가의 『기후위기인간』
스캐터북스

•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11길 44 102호
• https://www.instagram.com/scatter.books

⁂ 로우북스

네모반듯한 공간, 벽에 붙은 달력과 포스터가 시크하기도, 알게 모르게 귀엽기도 합니다. 책방 로우북스에 들어서자마자 배인영 대표가 쾌활하게 묻습니다.

“책 추천해 드릴까요? 소설, 에세이, 논픽션, 시집 중 어떤 장르를 좋아하세요?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을 받고 싶으세요?”

시집을, 먹먹해지고 싶은 기분을 답하자 숙희 시인의 『오로라 콜』, 김영미 시인의 『투명이 우리를 가려준다는 믿음』이 척척 등장합니다. 잠깐만요, 책방지기는 서가의 모든 책을 다 읽으신 건가요? 챗GPT로도 이렇게 빠르고 정확한 책 추천은 받지 못할 것 같은데요?

로우북스에 비치된 숙희 시인의 『오로라 콜』, 김영미 시인의 『투명이 우리를 가려준다는 믿음』을 비롯한 아침달의 시집선

Q. 로우북스는 어떤 책방인가요?

로우북스는 2021년 여름에 오픈했어요. 문턱이 낮은 서점을 지향해서 ‘로우’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평소 책을 많이 안 읽는 분들도 언제든지 편하게 와서 책을 고를 수 있는 책방이길 바랐지요. 그렇게 3년째 많은 분들에게 책을 잘 팔고 걱정 없이 월세 내가면서 운영하고 있는 서점입니다.

로우북스

Q. 로우북스에서는 어떤 책을 추천해 주시겠어요?

김연수 소설가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추천합니다. 김연수 작가님은 북토크나 강연 섭외가 들어오면 어떤 강의를 하기보다 짧은 소설을 써서 낭독하신다고 해요.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그 낭독 소설을 엮은 소설집이고요.

다섯 장 남짓한 짧은 이야기임에도 다 읽고 나면 삶이 한 뼘 정도 고양되는 느낌을 받을 만큼 아름다운 순간들을 담고 있어요. 그게 제가 이 서점에서 정말 팔고 싶은 이야기였고, 그래서 작년 ‘로우북스 책방지기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도 했어요.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게 만드는 말들’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이 책이 너무 좋아서 김연수 작가님께 연락을 드렸고, 저희 서점에서도 낭독회를 여신 적이 있어요. 보시다시피 저희 책방 베스트셀러 1위랍니다.

김연수 소설가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

Q. 책방 베스트셀러는 책방지기님의 영업력으로 만들어지는군요?

물론이죠. 책방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는 아마 다 사장님들이 만드는 걸 거예요.

Q. 책방을 하기 이전에 유학을 가려 하셨다는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책방을 열기 전에 공부하신 것과 책방 운영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까요?

책방을 열기 전 도시사회학을 공부했어요. 레이 올든버그의 『제3의 장소』라는 책도 추천해 드리고 싶은데요, 이 책에서는 제1의 장소가 집, 제2의 장소가 회사 같은 곳이라면 제3의 장소는 서점이나 작은 카페 같은 비공식적 공공장소라고 설명해요. 레이 올든버그는 이런 비공식적 공공장소가 어떻게 삶을 떠받치고 있는지 설명하는데, 저는 제 서점이 바로 이런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레이 올든버그의 『제3의 장소』

우리는 도시 안에서 약한 연대를 이루고 있고, 서점은 그 연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등대처럼 언제든지 들를 수 있는 공간인 것이지요. 자본주의 논리에 포섭되는 게 아니라 따스함과 정을 느끼고 사람 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요.

사회학을 하며 배운 이론들을 서점을 하면서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하고 있어요. 그런 경험을 토대로 글쓰기 수업이나 독서 모임을 열기도 하고, 서울시 평생시민대학에 강의를 나간 적도 있어요. 또, ‘동네 서점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계간지 「걷고 싶은 도시」에 연재를 했는데, 그 원고들을 모은 책이 곧 출간될 예정이에요.

로우북스의 서가

Q. 동네 서점의 기쁨과 슬픔을 하나씩 꼽아주신다면요?

많은 사람을 직접 만나며 환대를 하고 환대 받기도 하는 일이 동네 서점을 운영하는 기쁨이에요. 10평 남짓한 공간에 다양한 작가님들과 손님들이 오가며 그 모든 세계가 다양하게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즐겁고요.

동네 책방의 슬픔이라면, 그렇게 SNS를 관리하며 계속 브랜딩을 해야 하는 것, 그렇게 퇴근은 없고 계속해서 경쟁 구조에 노출되는 자영업자로서의 불안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로우북스 배인영 대표
로우북스

• 서울 마포구 포은로 56 1층
• https://www.instagram.com/low_books

인터뷰 | 이은서, 신태진
정리·사진 |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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