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하이틴 스타의 대명사로 불린 배우가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조용원은 ‘한국의 소피 마르소’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영화와 드라마, 광고를 종횡무진하던 인물이었죠.
그녀는 우연히 ‘미스 롯데’ 대회에 참가해 신인상을 받으며 연예계에 등장했는데요.
1984년 영화 ‘땡볕’으로 대종상 신인상과 아시아영화제 신인상을 휩쓸며 라이징 스타로 떠올랐어요.

지성과 미모를 겸비했다는 점도 그녀를 특별하게 만들었죠.
조용원은 학창 시절에도 공부를 잘했고, 학력고사 고득점을 기록할 정도로 성적이 뛰어났대요.
그럼에도 다른 길 대신 연기를 택했고,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습니다.
연기자로서도 성실하고 겸손해 많은 이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어요.

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1985년, 대학 1학년이던 해에 어머니가 몰던 차량이 가로수와 충돌해 5m 아래로 추락하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 것.

그녀는 전치 10주의 중상을 입었고, 얼굴에는 깊은 흉터가 남았다는데요.
성형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회복은 쉽지 않았고, 방송 복귀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죠.

그러나 무대에 대한 조용원의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약 8개월의 공백 후 영화 ‘먼 여행 긴 터널’로 복귀했고, 예능 ‘토토즐’의 MC로 활약하기도 했죠.
1990년에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예술학 석사를, 도쿄대 대학원에서 사회정보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학문에도 몰두했다고 해요.

이후 조용원은 1996년 영화 ‘정글 스토리’로 컴백했는데요.
전의 인기를 되찾기엔 공백이 길었던 탓인지, 작품은 실패의 고배를 마시게 됩니다.
그녀는 연극단을 창립하고 영화 잡지 ‘씨네버스’를 창간하며 제작자로도 활동했으나, IMF 외환위기와 잡지 폐간으로 또 한 번 시련을 겪었대요.

시간이 흘러 2019년 SBS ‘불타는 청춘’을 통해 조용원의 근황이 전해졌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채 한국에서 어머니를 간호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된 거죠.
방송을 통해 만난 동료들은 “동안 외모에 효심까지 깊은 배우”라며 그녀를 떠올렸어요.

조용원의 삶은 화려한 청춘과 불의의 사고, 그리고 꿋꿋한 극복의 과정이 공존하는 이야기예요.
무대 위에서는 하이틴 스타였지만, 지금은 어머니 곁을 지키는 효녀로서 또 다른 시간을 이어가고 있죠.
그녀의 이름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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