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공장 도입'으로 ''집값 5억원 상승했지만 상가는 임대 천지라는'' 이 동네

‘K-반도체 특수’의 교과서, 고덕신도시의 두 얼굴

경기 평택시 고덕신도시는 2015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착공 이후 ‘평택 캠퍼스’의 확장과 함께 인구 유입이 꾸준히 이어진 대표적 배후도시다. 대규모 제조업 투자와 우수 일자리, 교통·인프라 개선 기대감이 겹치면서 주택 매매가격은 수년 사이 수억 원씩 상승했고, 택지의 지가도 덩달아 뛰었다. 상식적으로 인구 증가와 소득 수준 제고는 상권 활성화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고덕의 거리는 이 상식을 거스른다. 주거는 뜨거운데 상가는 차갑다. 대로변 일부를 제외하고 이면도로를 들어서는 순간, 1층 점포의 셔터가 연속되는 ‘임대 문의’의 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반도체 공장의 존재가 곧

바로 동네 상권의 번영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고덕에서 적나라하게 증명되고 있다.

분양 상가의 역설, 광장은 넓고 점포는 비어 있다

고덕신도시로 진입하는 관문인 서정리역 일대, 그리고 주요 생활 거점의 광장형 상업블록에서는 외형적 ‘완성도’와 내부의 ‘공실 현실’이 동시에 보인다. 유려한 외관, 넓은 보행동선, 층층이 계획된 스트리트몰이지만, 실제로는 간판 대신 임대 현수막이 공간을 메운다. 분양형 상가의 전형적 함정이 여기서 발생한다. 초기 분양가가 높게 책정되면 임대료 기대치도 동반 상승하고, 공실이 길어질수록 보유자들은 가격을 방어하기 위해 더디게 조정한다. 수요가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기 전, 공급이 먼저 충만해진 탓에 ‘가게의 손익분기점’과 ‘소비자의 지갑·동선’ 사이의 간격이 좁혀지지 못한다. 보행자는 많지 않고, 임대료는 낮아지지 않으니, 예비 창업자는 안전지대인 대로변만 선호한다. 결과적으로 광장 한복판의 시각적 장점은 임대료의 부담으로 중화되고, 이면 상가의 공실은 전염처럼 퍼진다.

“집값은 올랐는데 장사할 손님은 없다”는 구조적 이유

주택 가격 상승이 소비력 확대를 보장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특히 산업 배후 신도시에서는 몇 가지 구조적 요인이 상권 활성화를 가로막는다. 첫째, 생활 동선의 ‘내장화’다. 대규모 제조캠퍼스는 구내 식당·편의시설·통근 셔틀을 강화해 직주시간을 압축한다. 그만큼 외부 상권에 도달하는 동기가 줄어든다. 둘째, 주거의 ‘투자화’다. 초기 분양·입주 물량 중 실거주가 아닌 임대·공실이 일정 비중 존재하면, 낮 시간 생활 밀도가 낮아지고 동네에 ‘생활 소음’이 없다. 셋째, 상가 공급의 ‘동시다발’ 문제다. 택지지구는 특정 시점에 다량의 상업용지를 동시에 공급한다. 상업시설 간 차별화가 미흡하고, 상호 보완보다는 직접 경쟁으로 치닫는다. 넷째, 교통체계의 ‘목적지 지향성’이다. 직선적 대로와 넓은 차로, 대형 교차로 중심의 설계는 차량 이동 효율은 높이지만, 보행 체류를 유도하지 못해 ‘차 타고 지나가는 동네’가 된다. 이 네 가지가 겹치면, 주거는 활황이라도, 상권은 광야가 되기 쉽다.

정문 앞 상가주택의 함정, 이면 1층이 텅 빈 이유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정문 인근에는 단독주택형 상가주택이 띠처럼 늘어서 있다. 표면적으로는 ‘직주근접 수요’의 금맥처럼 보이지만, 이면도로로 한 블록만 들어가면 1층 점포 공실이 줄지어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가시성의 급락이다. 정문과 대로변이 수요의 주 흐름을 빨아들이면, 이면 상가는 도달 전에 ‘인지’ 자체가 되지 않는다. 둘째, 소비의 ‘근거리 분절’이다. 근무자·협력업체는 점심·퇴근 시간에 내동선(사내·정문 앞)에서 대부분의 소비를 처리하고, 주말에는 원거주지 혹은 광역 상권(강남·동탄·수원 등)으로 이동한다. 셋째, 상가주택의 ‘분산 소유’다. 동일 블록 내 점포마다 임대전략·가격정책이 달라 브랜드 입점·집객 업종 유치가 어렵다. 넷째, 주차·차량 진·출입의 불리함이다. 이면도로 상가는 주정차 불편이 크고 회차 동선이 비효율적이라 목적 방문 외의 충동 방문이 사실상 발생하지 않는다. 이 모든 요인이 합쳐져, 대로변과 이면 간 임대갭이 벌어지고, 이면 공실이 구조화된다.

중개 현장의 진단: ‘높은 임대료’와 ‘공급 과잉’의 결합

현지 중개업계가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것은 두 가지다. 임대료가 초기 기대치에서 충분히 내려오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임대 맞출 점포 수가 수요 대비 과도하다는 점이다. 전자는 투자 회수 논리, 후자는 계획도시의 일정표 논리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시장은 논리가 아니라 ‘현금흐름’으로 작동한다. 매출이 매달 변동하는데 임대료가 경직되어 있으면, 영업자의 위험은 과도하게 커진다. 특히 외식·생활서비스처럼 원가·인건비가 상승한 업종은 고정비 비중이 높아 버티기가 어렵다. 공급 과잉은 상호 출혈 경쟁을 강화해 수익 모델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 임대료를 낮추면 자산가치가 흔들린다는 두려움이 있지만, 공실이 길수록 실질 수익은 0이며 주변 시세를 오히려 끌어내린다. 시장은 ‘현금이 흐르는 곳’을 기준으로 가격을 재형성한다. 지금 고덕의 상가는 임대료의 유연성이 생존의 선결조건이 되어야 한다.

해법의 실무: 임대 구조, 보행 설계, 수요 큐레이션을 동시에 고쳐라

지금 필요한 것은 원론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세부 해법이다. 고덕의 조건을 전제로, 작동 가능한 6가지 처방을 제시한다.

임대 구조의 재설계: 공실 장기 점포는 ‘기본임대료+매출연동’ 혼합형으로 전환한다. 초기 6~12개월은 관리비 수준의 기본임대료로 문턱을 낮추고, 매출 연동분으로 상가주·임차인의 이해를 맞춘다. 블록 단위로 동일 조건을 묶으면 브랜드 유치와 동시 오픈이 수월해진다.

분산 소유의 집합 운영: 상가주협의회를 법적 구속력 있는 ‘상가운영관리단’으로 격상해 공동 마케팅·공용설비 개선·영업시간 협약을 집행한다. 임대가·간판·영업시간의 최소 표준을 맞춰 ‘거리의 일관성’을 만든다.

보행 체류 동선 강화: 대로와 이면을 잇는 골목마다 보행 안전섬·그늘·벤치·미니 이벤트 포켓을 조성해 ‘5분 체류’를 설계한다. 점심·퇴근 시간대 차량 속도를 제한하고, 보행자 우선 신호와 횡단 대기 시간을 줄여 ‘걷고 싶은 이유’를 만든다.

콘텐츠형 집객 장치: 반도체 테크 팝업, 교육·체험형 매장(키트 조립, 드론·로봇 라운지), 주말 야시장·소규모 공연을 정례화해 반복 방문 동기를 만든다. 삼성 협력사·기관과 연계한 커뮤니티 교육(직무·안전·IT 툴) 공간을 개방형으로 운영한다.

생활 편의의 빈칸 채우기: 밤·주말형 업종(야식 간편식, 24시간 셀프빨래·물품보관, 무인 운동·리커버리)을 유치해 교대제 인력의 시간대 소비를 흡수한다. 어린이 돌봄 연장, 반려동물 케어 등 체류형 수요를 촘촘히 보강한다.

교통·주차의 합리화: 이면 상가에 ‘15분 무료 회차 존’을 촘촘히 설치하고, 상가 이용 차량은 첫 1시간 주차 무료를 앱 연동으로 자동 정산한다. 대로변 버스정류장-이면 상가골목을 연결하는 미니 셔틀·순환 전동 킥 공유존을 운영한다.

이 조합의 핵심은 ‘사람의 시간’에 맞춘 설계다. 회사를 나와 집에 가는 길목에 무엇이 있는가, 주말에 왜 여기로 와야 하는가, 20분만 있어도 할 일이 있는가—이 질문의 답을 상가가 먼저 제공해야 한다.

‘반도체 도시’ 다음 단계: 투자 도시에서 생활 도시로

고덕은 ‘공장 도입으로 집값이 5억 올랐다’는 숫자보다, ‘상가에 불이 얼마나 켜져 있는가’가 도시의 건강을 말해준다. 투자 도시에서 생활 도시로의 변환 없이는, 불황의 그림자는 주거의 성과도 갉아먹는다. 초기에 형성된 기대 프리미엄은 시간이 지나면 실물 경험으로 대체된다. 아이가 다닐 학원·공원이 가까운지, 야근 뒤 열려 있는 가게가 있는지, 주말에 함께 걸을 광장이 ‘사람 냄새’가 나는지. 이 일상의 디테일이 채워질 때 비로소 가격은 ‘지속 가능한 가치’가 된다. 반도체 ‘메가 팩토리’라는 거대한 엔진은 이미 돌고 있다. 이제 도시는 엔진의 힘을 일상의 바퀴로 전달해야 한다. 임대는 유연하게, 거리는 느리게, 콘텐츠는 촘촘하게—이 세 줄의 원칙이 고덕 상권을 다시 켜는 가장 현실적인 스위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