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겐일까, 테토일까? 동물병원에서 시작된 상상 [수상한 말수의사]

요즘 '에겐남'이니 '테토녀' 이니 하는 신조어가 스몰 토크에서 쉽지 않게 자주 등장한다.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사소한 변화를 챙기는 스타일은 에겐스타일, 다소 시원시원하고 뒤끝 없는 스타일을 테토 스타일이라고 규정짓는 것 같다.

출처 : pixabay

내가 처음에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설마 이게 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estrogen)'과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의 약자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처음엔, 요즘의 밈과 신조어에 심하게 취약한 나에게는 워낙 난이도가 높아서, 그냥 젊은이들이 잘 쓰는 문장의 어떤 약어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인체가 왠지 낯부끄럽게 그려져 있는 과학 교과서 한 구석에 나올 법한 고환 유래의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난소 유래의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이라는 의학용어가 어쩌다 아이스 브레이킹 토크에서 등장하는 단어로 넘나들었는지, 정말 어떤 연유로 여기까지 온 게 된 건지 그야말로 신기방기했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은 MBTI, 그전에는 혈액형, 그전에는 별자리, 띠, 사주, 색깔 등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는 항상 상대를 한번 재미 삼아 파악해 보는 어떠한 도구를 가지고 있었다. 참 신기하다.

왜 그럴까? 우리는 왜 자신이 어떤 스타일인지, 어떤 스타일의 상대와 잘 맞고 잘 안 맞는지 궁금해할까?

사실, 나 또한 내 성향, 또 타인의 성향을 규정지어 보는 것을 꽤 재미있어한다. 거기에 상상의 나래를 더 펴서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과연 동물은 어떤 성향일까? 내가 늘상 보는 말(horse)은 에겐일까 테토일까? 또, 동물을 치료하는 사람은 어떤 성향이 유리할까? 또 동물의 보호자는 어떤 성향이 유리할까?

아마, 세상에서 나만 상상해 볼 것 같은 '수의사와 보호자, 그리고 동물의 에겐과 테토 테스트' 결과를 내 맘대로 판단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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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말 한 마리가 내원했다. 말관리자는 말이 힘이 없고, 밥을 잘 안 먹는다고 했다. 이 짧은 단서 하나로, 수의사는 모든 레이더를 열고 가능성을 체크한다. 나는 그 과정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사실 진단과 치료 프로토콜은 객관식이 아니다. 그래서, 개체에 따라 어떻게 접근을 하고, 또 내 치료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따라서 다음 단계가 바뀐다.

그런 식으로 하나 하나 정보를 쌓아가며 경과를 지켜보면, 조금 더 정확도를 기할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 포인트에서는 확실한 결론이 난다. 그때 나는 안도와 기쁨을 느낀다. 어서 이 질환을 해결하고자 하는 정복 욕구나 경쟁심이 나를 조정하는 걸 보면, 수의사는 테토의 역할이 꼭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동물은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보다 훨씬 더 자세히 모든 감정의 영역을 살펴야 한다. 이 동물이 그간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고, 내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등의 모든 상황을 오감은 물론 육감까지 끌어올려, 유의 깊고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거기에 동물의 감정에 공감까지 한다면 금상첨화 이겠다고 늘 생각한다. (어서, 동물 감정 통역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따라서, 에겐 특유의 그 예민함과 공감의 영역은 질환을 파악하는데 굉장히 큰 장점이다. 따라서, 수의사는 에겐 역시 꼭 필요하다.

그렇다면, 동물의 보호자는 어떨까? 동물의 보호자는 가능한 많은 정보를 가질수록 좋다. 어떤 보호자는 매일의 체온을 모두 기억하고 매일의 활력 정도를 정확히 알려준다. 하지만, 어떤 보호자는 병원에 오기 전까지 말이 어땠는지 설명하기 어려워한다. 수의사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전자가 훨씬 도움이 된다.

내 기준으로 볼 때는, 보통 여자 보호자가 남자 보호자보다 그런 면에서 동물의 상황을 다채로운 용어를 섞어서 이야기하고, 동물의 아픔 신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게 정말 생물학적인 성호르몬의 차이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에겐만 가지고서는 동물의 '보호자'로서 굳건히 살아갈 수가 없다. 동물이 항상 건강하지는 않으며, 감정만으로는 당연히 치료가 되지 않는다. 결단과 리드의 영역으로 동물을 책임지고 판단해야 하는 일이 정말 많고, 그게 좋은 보호자의 필수 요소이다. 어디까지 치료의 영역으로 둘지, 그 굴곡 속에서 어떻게 결단을 내려야 할지에 대한 판단은 보호자가 해야 한다. 이러니, 보호자 역시 에겐과 테토 뭐 하나 뺄 수가 없다.

그렇다면, 관점을 돌려서, 동물은 어떨까? 본능과 적자생존의 모태인 동물은 정말 테토에 가까울까? 아니면 오히려 사람보다 더 세심한 감정을 알아보는 에겐에 가까울까? 그냥, 우세하는 성호르몬에 따라, 그러니깐 정말 암컷과 수컷에 따라, 성에 따라 에겐과 테토를 단순히 나누면 되는 걸까?

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면 다들 알 것이다. 그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주인의 반응을 항상 살피며 애교가 많은 수컷 푸들이 있다면, 쟁취와 사냥밖에 모르는 암컷 포메라니안도 있다. 내 어린 시절 키우던 개 초롱이는, 내가 슬플 때 귀신같이 내 허벅지에 붙어서 나를 위로해 주는 확신의 에겐이었다. 내가 늘 보는 말들은 무리 속에서 무조건 서열을 짓고 격하게 경쟁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확신의 테토 녀석들 같다. 에겐 말 한 마리 찐하게 교감하며 간직하다 죽는 게 내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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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이 세상은 적절히 음과 양이 균형을 이뤄가며 맞춰서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물학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다르기에, 그에 따라 우세하는 성호르몬은 성별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그 경향성을 역행하는 개체도 있으며, 때로는 한쪽에 과하게 치우친 개체를 다른 개체가 중화시켜 준다. 그렇게 우리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어느 선에서 합쳐지며 하나의 또 다른 합을 이룬다. 연애든, 인간 관계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간에, 크게 다를 건 없다는 게 나 홀로 상상 테스트의 결론이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다름에 대해서 벽을 치고 싶고, 내 성향을 주장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어떻게든 상대와 맞춰보고 관심을 가져보고 싶어서 이런 밈이 등장한 것 같기도 하다. 상대에게 관심이 없다면, 굳이 공통점을 찾던지, 차이점을 찾아내며 의미 부여하려는 노력 자체를 아예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나를 표현하고 싶어 하고, 그 곁을 동물이든 사람이 든 간에 채워주기를 바란다.

때 아닌 신조어 덕분에, 재미로 주위의 사람과 동물까지 그들의 행동을 하나씩 판단하고 되뇌어 보았다. 혼자서 이런 상상을 하며 누군가를 규정짓고 있는 나 역시 그저 곁을 내주고 싶고, 내주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생명체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동물과 사람 사이에서 때로는 쩔쩔매고 때로는 희희낙락하며 에겐과 테토 사이 어딘가의 균형 지점에서 뒤뚱거리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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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소개 : 수상한 말수의사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다가가는 게 망설여지는 한 인간의 고군분투기

글쓴이: 김아람
말 많은 제주도에서 사는 20년 차 말 수의사입니다.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를 공저했습니다.
https://linktr.ee/ara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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