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성공 뒤에 가려진 12부작의 딜레마, '21세기 대군부인'이 남긴 씁쓸한 한계

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이 자체 최고 시청률 13.8%를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국내 시청률의 고공행진은 물론, 글로벌 OTT 플랫폼인 디즈니+를 통해서도 아시아 전역을 비롯한 해외 각국에서 탑랭킹을 기록하는 등 글로벌 흥행 면에서는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가상의 현대 왕실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세계관, 그리고 아이유와 변우석이라는 톱스타 카드의 결합은 전 세계 드라마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숫자와 외형적 흥행 성적표 뒤에 가려진 작품의 내실을 냉철하게 들여다보면, 정작 국내외 시청자들에게는 진한 아쉬움과 씁쓸한 여운만을 남겼다. 웰메이드의 반열에 오르기엔 턱없이 부족한 여러 구조적 한계와 치명적인 오점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얄팍하게 소모된 방대한 세계관, '12부작'이라는 자가당착

'21세기 대군부인'이 지닌 가장 심각한 본질적 문제는 12부작이라는 현저히 적은 분량 안에 너무나 거대하고 방대한 이야기를 억지로 밀어 넣으려 했다는 점이다.
작품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에 머물지 않고 복잡한 현대적 입헌군주제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자 했으며, 인물들 간의 촘촘한 이해관계와 가상 역사 세계관의 정교한 설정까지 동시에 구축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거창한 기획은 서사의 물리적 한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인물들의 감정선은 깊어질 시간을 얻지 못했고, 군주제와 권력을 둘러싼 묵직한 서사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지나갔다. 최소한 16부작 이상의 호흡으로 차근차근 빌드업했어야 할 거대한 판형을 지나치게 압축하다 보니, 서사는 매회 헐떡거리기 바빴고 시청자가 세계관에 몰입할 여백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용두사미형 급전개'는 비단 이 작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플랫폼의 기획력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얼마전 디즈니+를 통해 공개되었던 '파인'과 '조각도시', 그리고 초반의 높은 완성도로 기대를 모았으나 디즈니+ 방영 확정 이후 후반부 급전개와 허술한 마무리로 아쉬움을 남겼던 '정년이'의 선례가 대표적이다. 초반부의 매력적인 설정과 거대한 스케일로 시청자를 유인한 뒤, 후반부에 이르러 분량 조절 실패로 날림식 마무리를 짓는 고질적인 병폐가 '21세기 대군부인'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 것이다.
지상파와 글로벌 OTT(디즈니+) 동시 편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분량과 회차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지 못한 기획의 부실함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다.
철저했던 '원더풀스'와 극명한 대비, 지상파·디즈니의 안일함

'21세기 대군부인'의 이러한 한계는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전 회차가 공개된 '원더풀스'의 행보와 비교했을 때 더욱 극명하고 뼈아프게 다가온다.
'원더풀스'는 도리어 '21세기 대군부인'보다 적은 '8부작'이라는 파격적인 슬림 편성을 택했다. 그러나 이들은 회차를 줄이는 대신, 에피소드 1회당 러닝타임을 1시간 이상으로 과감하게 할애하며 총 9시간이 넘는 긴밀한 서사 구조를 확보했다. 짧은 회차 안에서도 서사의 깊이와 인물의 완성도를 놓치지 않기 위해 러닝타임을 유연하게 늘리는 철저함을 보여준 것이다.
반면 '21세기 대군부인'은 가상 역사와 왕실이라는 훨씬 더 방대한 설정집을 쥐고서도 지상파 방송의 규격화된 시간 제한과 디즈니의 경직된 회차 전략에 갇혀 갈 길을 잃었다. 분량의 한계를 극복할 만한 아무런 대안적 기획 없이 안일하게 기존 문법을 따르다 보니, 작품의 밀도는 떨어지고 서사의 구멍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안일한 고증이 부른 화근, '천세' 논란과 역사왜곡 리스크

작품의 외형적 완성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결정타는 11회 즉위식 장면에서 터져 나온 역사왜곡 논란이었다.
극 중 새로운 왕(변우석 분)이 즉위하는 엄숙한 자리에서 신하들은 자주국의 상징인 "만세"가 아닌, 제후국이 쓰던 "천세"를 외쳤다. 왕이 머리에 쓴 면류관 역시 자주국 황제의 십이면류관이 아닌 중국의 신하가 쓰던 구류면류관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가상 왕실이라 할지라도, 명백히 우리 역사의 자주적 지위와 정체성을 훼손하는 어처구니없는 고증 오류였다.
가상 역사 세계관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 역사 맥락에 대한 정교하고 세심한 리스펙트'다. 제작진은 "세계관을 정교하게 다듬는 노력이 부족했다"며 서둘러 사과하고 VOD 자막과 오디오 수정에 나섰지만, 대중의 서늘해진 시선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판타지라는 방패 뒤에 숨어 기본적인 역사적 예법조차 면밀히 살피지 않은 제작진의 태만함이 빚어낸 참사였다.
그럼에도 얻은 성과, 그리고 아이유의 눈물이 남긴 숙제

수많은 비판 속에서도 '21세기 대군부인'이 남긴 유일한 성과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 주연 배우들의 고군분투다.
타이틀롤을 맡은 아이유와 왕의 무게를 견뎌낸 변우석은 헐겁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대본 속에서도 자신들의 연기력과 독보적인 스타성으로 매 장면을 책임졌다. 개연성이 무너진 서사 위에서 인물의 감정선을 어떻게든 붙잡고 이끌어간 배우들의 호연이 없었다면, 앞선 시청률과 글로벌 흥행 성적표는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종영일이자 자신의 생일이었던 지난 16일, 마지막 회 상영회 현장에서 타이틀롤로서 고개를 숙여야 했던 아이유의 사과는 시청자들에게 더욱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당시 아이유는 드라마의 논란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미흡한 모습을 보여드린 건 다 제 잘못이다, 여러분이 하시는 말씀은 다 제가 받아들여야 하는 말"이라며 눈물 어린 심경을 전했다. 대본의 구멍과 기획의 실패, 고증의 부실함으로 발생한 작품의 문제를 결국 전면에 선 배우가 온전히 책임지고 사과해야 하는 이 기형적인 구조는 대단히 유감스럽다. 진짜 책임을 통감해야 할 주체는 배우의 뒤에 숨은 제작진과 플랫폼의 기획자들이다.

'21세기 대군부인'은 스타 시스템과 매력적인 소재만으로는 결코 좋은 드라마를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한 사례로 남게 됐다.
향후 복잡한 세계관이나 가상 역사를 다루는 기획물들은 반드시 서사의 규모에 걸맞은 적정 회차를 확보해야 하며, 회차 조율이 어렵다면 에피소드별 러닝타임을 유연하게 가져가는 영리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아울러 역사적 소재를 차용할 때 가볍게 접근하는 안일한 고증 태도는 강력한 리스크로 돌아온다는 점을 뼈아프게 새겨야 할 것이다. 화려한 외형에 걸맞은 내실과 책임감을 갖춘 차기작의 등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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