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에 국왕 선조는
붕당정치를 강하게 비난했지만
이이가 죽으면서
선조는 오히려 이 붕당을 왕권 강화에
역이용하기로 합니다.

신하들이 붕당을 만들고
자기들끼리 견제하면
왕이 중재자 역할을 해주며
왕권을 다질 수 있잖아요.

그 일례가 선조 22년이었던
1589년 일어난
정여립 모반 사건입니다.
정여립은 호남 출신으로
비영남 출신이니
당연히 처음엔 서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여립은 개인적으로
동인 출신의 정치인 및 학자들과
친분이 두터워
점점 동인 쪽으로 붙게 되었죠.

정여립은 오래도록
전라도 신안군 죽도라는 섬에서
‘대동계’라고
같이 공부도 하고 군사훈련도 하는
사조직을 운영 중이었습니다.

서인들은 정여립의 대동계를
반란을 위한 사조직으로 몰아갔고
선조는 해산명령을 내렸으나
정여립은 거부,
선조는 군대를 파견해
대동계를 강제 해산시켰습니다.

정여립은 현장에서 죽었으나
정여립과 조금이라도 연루되어 있던
동인 소속의 정치인들도
한 패라는 죄목으로
정말 많이 희생됐습니다.

이때의 옥사를
기축년에 일어났다고 해서
기축옥사라고 하고
혹은
‘정여립 모반 사건’이라고 합니다.

몇 년에 걸쳐
1000여 명이 희생됐다는데
이 옥사를 주도했던
지옥에서 온 서인의 사냥개는
정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