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게 너무 싫은 겁쟁이…39년째 주식하는 비결은 [한국의 위대한 투자자]

최재원 기자(himiso4@mk.co.kr) 2026. 6. 8.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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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플러스 '한국의 위대한 투자자' 시리즈 3번째 주인공은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이다. 그는 두말 할 필요가 없는 '한국의 워런 버핏', '가치투자의 대부'다.

그리고 그 소심함은 오히려 한국 가치투자의 역사를 만든 원동력이 됐다.

그는 일본어 투자 서적을 탐독하면서 기업가치와 내재가치 개념을 깊이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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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 1편

매경플러스 ‘한국의 위대한 투자자’ 시리즈 3번째 주인공은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이다. 그는 두말 할 필요가 없는 ‘한국의 워런 버핏’, ‘가치투자의 대부’다. 행여라도 고객이 맡긴 돈을 잃는 날엔 잠도 못자는 그는 가장 믿을 만한 펀드매니저, 투자의 대리인이다.

“저는 원래 겁이 굉장히 많은 사람입니다. 많이 버는 것보다 잃지 않는 게 목표였어요.”

‘한국의 워런 버핏’. ‘가치투자의 대부’. 수십 년 동안 투자업계가 붙여준 화려한 수식어와 달리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자신을 “겁 많은 투자자”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그의 투자 인생을 관통하는 단어는 공격보다 방어, 수익보다 생존이었다. 그리고 그 소심함은 오히려 한국 가치투자의 역사를 만든 원동력이 됐다.

타고난 소심함, ‘잃지 않는 투자’의 원동력
올해로 39년째 자본시장에서 활동 중인 이채원은 한국 최초의 가치주 펀드를 만들고, 가치투자 문화를 대중화한 상징적 인물이다. 하지만 그 출발은 의외로 평범했다.
서울 여의도 IFC에 위치한 라이프자산운용 집무실에서 만난 이채원 의장 [김재훈 기자]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꿈이 회사원이었어요. 양복 입고 넥타이 매고 출근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죠.”

1964년 출생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꿈이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고 했다. 창업가나 사업가를 꿈꾼 적도 없었다. 투자로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경영학을 공부해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목표였다.

아버지가 회사 임원을 지낸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안정적인 삶을 선호하는 성격이 컸다. 그는 지금도 자신을 “선천적으로 위험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일화는 그의 성격을 잘 설명한다. 돌도 되기 전 기어다닐 때, 마당 평상 위에 올려놓아도 그는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이 무작정 기어다닐 때, 그는 턱을 확인하고 뒤로 물러섰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부모님께 받은 용돈도 절대 한 곳에 보관하지 않는다. 상의 주머니, 바지 주머니, 가방, 세 군데로 나눠 넣었다. 지금도 비상금을 여러 곳에 분산해 보관하는 습관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저는 원래 분산이 DNA에 박혀 있어요. 한 군데에 몰아넣는 걸 싫어합니다.” 이런 성향은 훗날 가치투자 철학의 토대가 됐다.

주식에 미친 청년, 벤저민 그레이엄에 충격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한신증권 공채로 입사한 이채원은 곧 자신이 평생 해야 할 일을 찾았다고 느꼈다. 주식이었다.

그는 업계에서 ‘주식에 미친놈’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운전면허도 없고 골프도 치지 않았다. 주말은 가족과 보내고 평일은 오직 주식만 생각했다. (참고로 집안에서 그의 별명은 ‘딸병신’이다. 두딸에 대한 애정이 딸바보를 넘는 수준이라고 그의 아내는 말한다.)

증권사 입사 당시 상장기업 700여개의 종목코드를 줄줄이 외우고 다녔다. 투자설명서를 끌어안고 잠들 정도였다.

“왜 그렇게 주식이 좋았는지는 지금도 설명하기 어려워요. 살아있는 생명체 같았어요. 기업이 성장하고 쇠퇴하고,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과정이 너무 흥미로웠죠.” 주식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삶 자체가 됐다.

서울 여의도 IFC에 위치한 라이프자산운용 집무실에서 만난 이채원 의장 [김재훈 기자]
1990년대 초 일본 도쿄사무소 근무는 투자 철학을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한국은 투자에 대한 개념 자체가 미비했던 때였다. 그는 일본어 투자 서적을 탐독하면서 기업가치와 내재가치 개념을 깊이 공부했다. 이 시기부터 단기 매매보다는 기업 자체를 분석하는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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