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에… 전 세계 오직 한국에만 서식하는데 멸종위기라는 '한국 생물'

산간 계곡의 보석…이 작은 조개가 사라지고 있다
산골조개 사진. / 국립생태원

초여름 냇가가 활기를 띤다. 아이들은 맑은 물을 따라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친다. 시원한 물살 아래 숨어 있는 작은 생명들은 이런 계절에 더욱 바빠진다. 그중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 한국에서만 살며, 맑은 물 없이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생물이 있다. ‘산골조개’다.

한국 고유종 민물조개인 산골조개의 정확한 학명은 Pisidium coreanum, 일반적으로 ‘산골조개’로 불린다. 강원도, 경상북도, 제주도 등지의 고산 습지나 계곡에서 발견된다. 주로 해발 고도가 높고 인적이 드문 지역의 1급수에서 서식한다. 그만큼 환경 변화에 민감하다.

청정 환경에서만 살아남는 민물조개

맑은 강물 사진. / 위키푸디

산골조개는 이름처럼 산골짜기 맑은 물에서 산다. 민물조개지만 흔히 아는 재첩이나 다슬기보다 훨씬 작다. 성체 크기는 손톱 밑에 겨우 들어갈 수준이다.

산골조개. / 위키푸디

조개껍데기는 긴 삼각형 형태로, 얇은 황색의 각피가 표면을 감싸며 약간의 광택이 난다. 등 면은 앞쪽이 길고 뒤쪽이 짧다. 형태만 봐도 독특하지만, 서식 환경도 특이하다. 산지의 차가운 물이 흐르는 습지, 진흙이 많은 바닥, 낮은 수온이 유지되는 곳에서만 살아남는다. 오염이나 외부 자극에 매우 민감해 환경 상태를 알 수 있는 생태 지표종으로 분류된다.

생식 방식도 특이한 자웅동체

산골조개는 자웅동체로, 한 개체가 암수 생식 기관을 함께 지닌다. 수정 후 어린 조개는 어미의 조개껍데기 안에서 자란 뒤 밖으로 방출된다. 이처럼 어미 몸속에서 유생을 키우는 방식은 다른 조개류에선 드물다. 외부로 노출되지 않기에 생존율이 높고, 서식지 조건이 맞으면 효율적인 번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조건이 무너지면 번식 자체가 불가능하다.

즉, 맑은 물이 끊기면 산골조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인위적인 수질 변화, 농약 유입 등은 이 작은 조개에 치명적이다.

제주서 100년 만의 재발견

산골조개는 1908년 일본의 연체 동물학자 구로다 도쿠베이가 한라산 백록담에서 처음 발견해 학계에 소개했다. 이후 긴 시간 동안 발견되지 않다가 2008년 국립산림과학원이 제주 시험림 내 습지대에서 집단 서식하는 개체를 다시 확인했다.

산골조개 서식지 발견은 제주 시험림의 수질이 10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알려졌다. 학계에선 산골조개가 발견된 지역은 오염되지 않은 청정 습지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지표로 평가한다.

약용 소문과 개발이 불러온 생존 위기

한방 약재. / 위키푸디

문제는 이렇게 희귀하고 민감한 생물이 사람 손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산골조개가 관절이나 뼈에 좋다는 말이 퍼지면서 약재로 쓰기 위한 무분별한 채취가 이어지고 있다. 시중에서 개당 300원 수준에 거래되기도 한다. 크기가 작고 서식 밀도가 낮아 수익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남획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 카페나 일부 블로그에선 ‘한라산 약용 조개’ 등으로 둔갑해 채취 정보가 공유되는 일도 있다. 심지어 산간 계곡에서 발견된 조개를 산골조개라고 잘못 소개해 다른 생물까지 무분별하게 채취되는 문제도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서식지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산에 도로를 내고 하천을 반듯하게 만들면서 산골조개가 살아갈 습지가 점점 줄고 있다. 결국 산골조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돼 보호 대상이 됐다.

산골조개 보호는 습지 생태계 보전의 열쇠

국립산림과학원을 비롯한 연구 기관들은 현재 산골조개 서식지에 대한 정기 모니터링을 진행 중이다. 산지 개발이 이뤄지지 않도록 지자체와 협력해 보호구역 지정도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실효성 있는 조치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다.

시민들이 산간 계곡에서 야생 생물을 채취하지 않으려는 인식 변화도 따라야 한다. 작고 희귀하다는 이유로 무심코 채집한 생물이 사실은 생태계 유지에 꼭 쓰이는 존재일 수 있다. 산골조개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생물이라도 그 주변의 곤충, 식물, 양서류, 물고기와 연결돼 있다. 조개 하나가 사라지면 습지 전체로 그 여파가 번진다. 산골조개를 지키는 일은 결국 그 물줄기를 따라 살아가는 모든 생명을 함께 살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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