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그리고 초록의 감각, 김서울 작가

<안현정의 아트픽> 안현정 미술평론가(예술철학박사, 성균관대 박물관 학예실장)가 추천하는 작가입니다.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씨엘아트 갤러리에서 개최되는 김서울의 개인전 《초록그림자》는 물성에 감정을 입히고, 빛에 사유를 담는 조형적 수행의 기록이다. 전시 제목이자 작업의 핵심 모티프인 ‘초록그림자’는 단지 시각적 명암이 아닌, 시간과 기억, 감정과 사유의 흔적으로 작동한다.

초록이라는 생명의 색은 이 전시에서 단일한 상징을 넘어, 존재의 아이러니와 감각의 다층성을 품는다. 이는 단순한 색채의 조합이 아니라, 삶의 미세한 진동을 재구성하는 감각의 레이어로 자리 잡는다.

초기 작업 : 도시의 상자에서 자라난 감정의 씨앗

김서울은 2007년 홍익대학교에서 판화를 전공한 뒤, 일본 타마미술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9년간의 일본 체류는 그녀에게 동양적 평면성에 대한 깊은 사유와, 도시적 감수성에 대한 정련된 시각을 제공했다.

초기 작업은 ‘상자’라는 조형적 은유를 중심으로, 규격화된 도시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고독과 내면성을 탐색했다.

그녀의 작가노트에서 밝히듯, 도시의 효율적 구조가 인간을 수납 가능한 존재로 환원하는 현실 속에서도, 작가는 ‘홀로 상자’의 감정적 해방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러한 도시적 조형 언어는 김서울의 작업을 단순한 공간 비판으로 국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물리적 한계 속에서 생겨나는 감정의 진동, 고립 속에서 피어나는 내면의 생명성을 탐구하는 여정이었다. 수납과 충만, 분리와 내면화라는 이중적 층위는 이후 <반려식물> 시리즈로 이어지며, 비유적 공간에서 생명적 조형으로 이행된다.

이름을 바꾸며, 감정의 조형어를 바꾼 작가

2020년, 김서울은 본명 ‘김소희’에서 현재의 활동명 ‘김서울’로 개명했다. 단순한 예명 변경을 넘어, 이는 작가적 정체성과 조형언어의 이정표이기도 했다.

그녀의 작업은 이 시기를 경계로 한층 더 섬세하고 감각적인 조형의 층위로 나아갔다. 기존의 도시적 레토릭과 공간 비유를 넘어, 자연과 생명의 리듬을 삶의 내면에 투영하는 방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후의 <반려식물> 연작은 삶의 이면을 감각적으로 재현하는 작가적 태도를 집약한 결과물이다. 도심 속에서 살아가는 식물이 갖는 생명성과 그에 투영된 감정의 무늬는, 그녀가 일상에서 발견한 ‘시간의 정원’이며 ‘기억의 초상’이다.

반려식물 : 시간의 레이어, 감정의 정원

《초록그림자》는 바로 이 <반려식물> 시리즈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아크릴과 투명 필름 위에 실크스크린으로 인쇄된 이 작업들은, 정지된 평면이 아니라 감각의 흐름을 시각화한 ‘움직이는 조형’이다.

빛이 통과하면서 생기는 레이어의 중첩은,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겹침을 은유한다. 시선이 달라질 때마다 변화하는 그림자들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관객의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공감각적 회화로 기능한다.

식물은 여기서 단순한 자연의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작가에게 있어 ‘존재의 파트너’이며, 감정의 반사면이다.

그녀가 반복적으로 인용하는 “초록은 생명의 색이지만, 그 안엔 어둠도 있다”는 말처럼, 이 전시에서의 초록은 양면의 감정을 품은 존재이다. 희망과 상실, 충만과 공허, 시작과 끝이 모두 레이어 안에서 동시에 펼쳐진다.

정원의 시학, 레이어의 철학

전시 속 작품들은 모두 같은 크기나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아크릴의 두께와 필름의 밀도, 잉크의 색감과 반사율까지 달라, 각각이 독립된 시간성을 가진 하나의 정원처럼 기능한다.

이는 마치 서로 다른 계절을 지닌 감정의 정원을 떠올리게 하며, 관람자는 이 정원들 사이를 산책하듯 걸으며 자신만의 감정을 비치게 된다.

김서울은 단지 아름답거나 생명력 있는 식물을 그리지 않는다. 그녀는 빛과 그림자가 엉킨 순간, 그 찰나를 시각화하고자 한다. 그것은 시처럼 섬세하고, 음악처럼 리드미컬하며, 판화처럼 중첩된 감각의 조형이다.

예술적 경계와 실험의 현장

김서울은 작가로서의 조형 실험뿐 아니라, 작업실 ‘프린트그라운드’를 운영하며 판화라는 장르의 물리적, 개념적 확장을 시도해왔다.

일본에서의 수상 경력과 더불어, 2017년 뮤지엄산 신진 판화작가 선정, 2020년 대구문화예술회관 청년작가전, 2021년 현재 예술발전소 입주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회화와 판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그녀의 전시는 일본, 한국, 미국, 유럽을 아우르며 20여 회 이상 개최되었고, 매체 간의 통섭과 레이어의 시각화를 통해 동시대 판화의 새로운 경향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결론 : 초록의 속삭임, 그림자의 숨결

《초록그림자》는 단순히 식물에 대한 아름다운 찬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도시 속에서 어떻게 내면을 보존하고, 감정을 겹겹이 겹쳐가며 존재하는지를 말하는 전시이다.

김서울은 조용하고 섬세한 언어로 말한다. 초록은 빛이지만, 동시에 그림자이며, 생명은 움직이지만, 그 안에는 고요한 기억이 숨어 있다고. 그녀의 작업은 관람객에게 초록의 속삭임과 그림자의 숨결을 건넨다.

그것은 작고 따뜻한 위로이자, 복잡한 감정의 미세한 결이다. 우리가 멈추고 바라볼 때, 그녀의 정원은 삶의 조용한 힘으로 우리 안에서 피어난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예술은, 삶의 가장 깊은 곳을 은은하게 밝히는 ‘그림자의 빛’으로 자리하게 된다.


Blue Star Fern

아크릴에 실크스크린_42x28x26cm_2024

Dizygotheca

아크릴에 실크스크린_80x40x28cm_2024

남천

아크릴에 실크스크린_26x16x16cm_2025

미리오클라두스

아크릴에 실크스크린_55x40x28cm_2025

보스턴고사리

아크릴에 실크스크린_25x30x21cm_2025

사계국화

아크릴에 실크스크린_16x16x16cm_2025

스파티필름

아크릴에 실크스크린_55x40x28cm_2025

큰 아이안템 고사리

아크릴에 실크스크린_50x4045cm_2025

필리아페페

아크릴에 실크스크린_16x16x16cm_2025

SODA

아크릴에 실크스크린

△전시장소 : CLart gallery (씨엘아트 갤러리)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 150길 25 논현빌딩 7층.
△전시기간 : 2025.05.28(수)~06.21(토)
△전시제목 : <초록그림자>김서울 개인전
△운영시간 : 월요일-금요일, 11:00-17:00, 토요일 12:00-17:00 (일요일, 공휴일 휴무)


김서울 작가는 2013년 도쿄 타마 미술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2012년 일본 순요우카이 공모전 판화부문 대상을 받고 2023년 아세안문화재단 국제 레지던시에 선정된 바 있다.

2024 아트팩토리(파주) 《Mon paradise artificial》, 2024 갤러리 Q(도쿄) 《김서울展》 등 현재까지 꾸준히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2024 소마미술관(서울) 《드로잉 페어링: 감각의 연결》, 2022-23 뮤지엄산(원주) 판화 지원 프로젝트 입상 작가전 《일상 - Layer》 등 국내외로 활발히 작업 활동 중이다.

청년타임스 정수연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