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30도에도'... 한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 스키장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에 눈이 적게 내리면서 스키장들은 눈을 확보할 방법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기후변화 때문에 스키 시즌이 점점 불확실해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과거 인류의 방식을 되살려, 여름에도 눈을 녹지 않게 보관하는 스키 리조트들이 등장했다.

핀란드의 ‘루카 스키 리조트’에선 보통 4월이면 눈이 녹기 시작한다. 그래서 5월 초가 되면 22대의 스키장 리프트는 운행을 중단한다. 리프트가 멈추면 41개의 스키 슬로프는 녹색 물결로 덮이고 스키 관광객이 아닌 하이킹이나 산악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곤 한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슬로프 중 5곳에 흰색 폴리스티렌 담요로 덮인 눈 구덩이들이 생겼다. 각 구덩이에는 약 3만㎥ 규모의 눈이 저장된다. 구덩이에 담긴 눈은 그 안에서 여름을 보내게 된다. 몇 년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산해보면, 10월에 구덩이의 담요를 걷어냈을 때 눈은 약 80~90% 정도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슬로프 3~4곳과 스노우 파크를 충분히 덮을 수 있을 정도다.

루카 리조트처럼 고도가 해발 500m가 안 되는 스키장에선 이런 방법이 굉장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특히 이 방법은 적설량과 기온이 일정하지 않은 스키 시즌 초반에 효과를 톡톡히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티 카라바 루카 리조트 CEO는 “약 10년 전만 해도 이곳에선 12월 초부터 4월까지만 좋은 설질을 보장됐다”며 “하지만 지금은 눈 저장 기술을 통해 10월 초부터 5월 둘째 주까지도 스키르 타기 위한 좋은 조건을 보장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겨울이 따뜻해지고 적설량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스키 리조트들은 눈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겨울은 점점 따뜻해지고 적설량은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많은 스키 리조트들이 “스노우 파밍” 또는 “스노우 스토리지”라고 불리는 눈 저장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겨울 동안 내린 눈을 한 곳에 눌러 담은 후 단열재로 덮어 여름을 날 수 있게 보관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보관된 눈은 늦가을 스키 시즌 개막이나 스키 대회 같은 이벤트 때 눈이 필요한 곳에 뿌려진다.

어떤 면에서 이 방식은 스키장들이 눈을 만들던 기존 방식보다 더 효율적이다. 업계에선 이 방식이 루카와 같은 리조트 및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슬로프에 눈이 없다면 스키를 원하는 방문객들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고, 수천 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대형 스키 대회도 열지 못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리조트가 눈 저장 기술에 의존한다는 사실 자체가 탄소 배출과 관련된 스키 업계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가을철 적설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업계는 전통적인 ‘시즌’ 개막 시기인 10월 초를 고수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 년 내내 눈을 보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행은 수세기 전부터 이어져 왔다. 냉장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여름철에 얼음과 눈을 지하에 저장해 음식을 시원하게 보관했다. 스키 업계도 오랫동안 가을 또는 초겨울에 스키 이벤트를 열거나 스키장을 개장하기 위해, 눈을 보존하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그렇게 나온 해법 중 하나가 눈을 모은 다음 톱밥과 잘게 부순 나무, 짚과 같은 물질로 눈을 덮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놀라울 정도로 효과가 좋다고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런 방식으로 여름에도 72~85%의 눈을 보존할 수 있다고 한다.

스위스에 있는 ‘눈 연구소’의 설상 스포츠 연구소장인 파비안 볼프스페르거는 “(이런 보관법은) 집과 같은 원리”라며 “단열만 잘하면 북극에서도 따뜻한 집을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눈을 쌓은 다음에 단열만 잘 해주면, 주변의 열에도 녹지 않는 거죠.”

오늘날에는 훨씬 더 정교한 기술이 나오고 있다. 50~70mm 두께의 흰색 폴리스티렌 담요로 눈 구덩이의 기하학적 모양을 완전히 덮어 열을 차단하는 핀란드 기업 ‘스노우 시큐어’의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의 내부 테스트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극도로 높은 기온에서도 효과를 발휘한다. 2023년 6월 핀란드 비티에서 저장된 눈을 덮은 담요의 상단을 일주일 간 측정했더니, 최고 온도는 44℃였다. (당시 대기의 최고 기온은 31℃였다.) 반면 담요 아래의 최고 온도는 2.5℃에 불과했다.

담요는 여름철 기온이 올라갈 때 눈이 녹는 것을 막아준다

이런 방식으로 저장한 눈은 약 90%까지 녹지 않게 보관할 수 있다. 물론 그 양이 리조트 전체를 덮을 만큼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루카 리조트 내 2개의 주요 리프트 구간과 스노우 파크 또는 어린이 구역 등을 눈으로 덮는 데는 충분한 양이다.

이런 눈은 많은 스키 리조트에서 대회용 슬로프를 눈으로 덮을 때도 사용된다.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핀란드의 레비 리조트다. 이 곳은 매년 11월 FIS(국제 스키 및 스노보드 연맹) 알파인 스키 월드컵 일정의 첫 번째 슬라럼 경기를 개최한다. 레비 리조트는 2016년부터 경기용 슬로프를 위해 눈 저장 기술을 사용해왔다. 이후 레비 리조트는 가을철 FIS 경기를 개최하는 다른 리조트들과 달리, 눈 부족을 이유로 슬라럼 경기를 취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도 대가가 따른다. 스노우 시큐어 사의 기술을 파일럿으로 사용하려면 약 5만~10만 유로가 들고, 슬로프 전체를 덮을 수 있는 충분한 눈을 확보하려면 "수십만 유로”가 들어간다. 그럼에도 회사 측은 10년이 지나면 눈 1㎥당 1유로 미만으로 비용이 줄어드는 만큼 투자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환경 비용도 발생한다. 다만 현재 많은 스키장들이 스키장 운영을 위해 사용하는 방식보다는 그 환경 비용이 적을 수 있다.

현재 많은 스키장에선 눈을 확보하기 위해 인공 제설기를 사용한다. 인공 제설기가 얼마나 많은 눈을 만들 수 있는지는 몇 가지 조건에 좌우된다. 매우 낮은 기온과 건조한 공기, 온화한 바람의 조합이 있을 때가 가장 효율적이다. 카라바는 기온이 -2℃정도라면 인공 제설기는 시간당 약 2㎥의 물을 사용해 3㎥의 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기온이 -15℃에서 -20℃ 사이라면 제설기에 시간당 20㎥의 물을 통과시켜 35~40㎥의 눈을 생산할 수 있다. 그는 “같은 양의 에너지로 10배나 더 많은 눈을 만들어내는 셈”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키장은 최대한 눈을 많이 만들려 하고 있다. 때문에 날씨가 비교적 따듯한 10월이나 11월 등, 인공 제설기의 효율성이 가장 떨어지는 시기에도 제설기를 가동한다.

카라바는 눈 저장 기술을 사용하면 루카와 같은 스키장들이 인공 제설기를 눈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시기(1월 등)에 집중적으로 가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볼프스페르거는 눈 저장 기술에도 에너지가 들어간다고 말했다. “분명히 탄소 발자국이 있는 기술입니다.” 실제로 눈 저장 기술은 보관한 눈을 분산시켜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제설 작업보다 두세 배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수도 있다. 볼프스페르거는 "이러한 기계가 화석 연료로 구동되는 한, 이것은 추가적인 탄소 배출”이라고 말했다. (카라바는 루카 리조트의 인공 제설 및 눈 분산 기계는 재생 가능한 디젤로 작동하여 공정의 탄소 발자국을 약 90%까지 줄였다고 했다.)

스키장에서 인공 제설기로 만들 수 있는 눈의 양은 기온에 따라 달라지는데, 날이 추울수록 더 많은 양의 눈을 만들 수 있다

물론 볼프스페르거는 “항상 무엇을 비교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즉, 따뜻한 가을날에 눈을 만드는 리조트와 비교한다면, 눈 저장 기술의 에너지 효율이 더 좋은 셈이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도 있다. 그는 “스키 월드컵 개막을 4주 뒤로 미루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FIS도 점점 이 점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FIS 월드컵 알파인 스키 일정은 10월에 시작하여 3월에 끝난다. 하지만 이제 이 일정을 지키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다. 최근 시즌에는 오스트리아, 스위스,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 열린 남자부 일정의 첫 11개 경기 중 8개가 기상 조건으로 인해 취소됐다. 그 직전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볼프스페르거는 현재의 FIS 일정과 전통적인 스키 시즌은 이제는 의미를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눈은 겨울 스키 시즌에 걸쳐 지속적으로 축적되는 물질”이라고 했다. 많은 리조트들이 연중 가장 큰 관광 대목으로 크리스마스 연휴를 대비하지만, 실제로 12월엔 눈이 거의 내리지 않거나 아예 내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도가 높은 리조트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눈이 가장 많이 쌓이는 시기가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볼프스페르거가 살고 있는 2700m 높이의 다보스 바이스플루요흐에서는 4월 중순의 평균 적설량이 최고치를 보인다.

하지만 봄에 스키를 타러 오는 여행객들은 상대적으로 적다.

볼프스페르거는 “앞으론 대회 일정이 달라지고, '11월 중순이나 12월에 스키를 타러 가는 것이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는 눈 저장 기술은 앞으로 더욱 보편화될 전망이다.

카라바는 루카 리조트가 이 기술을 시험 사용해보기로 한 것에 대단히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내가 카라바를 만난 때는 아직도 겨울이 끝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2024년 10월 4일에 리조트가 문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그 시점에 눈이 오든 안 오든, 리조트엔 이미 눈이 마련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