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안 하는 것 하라' 구인회 선대 회장 뜻 이은 LG전자의 도전

LG그룹의 창업자인 고(故) 구인회 선대 회장.(사진=(주)LG 홈페이지)

전통적인 가전의 강자 LG전자가 '가전을 넘어 라이프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청사진을 낸 것은 고(故) 구인회 선대 회장의 '남이 안 하는 것부터 하라'는 뜻을 이어가는 도전정신에서 비롯됐다.

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주요 가전은 오늘날 LG전자를 있게 한 대표적인 제품들이다. 가전제품의 생산 및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H&A(Home Appliance & Air Solution)사업본부는 회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가장 크다. 올해 1분기에 매출 8조217억원,영업이익 1조188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회사의 연결기준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의 39%, 68%에 해당되는 수치다. LG전자의 가전은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가장 믿음직스러운 캐시카우(현금창출원)다.

LG전자가 단순 가전제품의 판매에서 벗어나 구독과 렌탈 등 고객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서비스로 사업 방식을 변경하겠다고 한 것은 기존의 가전 기업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시도다. 생활가전 기업들이 가전 렌탈 사업은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LG전자는 가전에 다양한 서비스를 추가하며 단순한 가전 판매에서 나아가 새로운 사업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각오다. 가전을 HaaS(Home as a Service) 형태로 발전시키면 회사 입장에서는 고객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고정적인 매출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구독 형태의 서비스는 콘텐츠와 쇼핑 등의 분야에서는 이미 대중화됐다. 멜론·지니뮤직·바이브·플로 등의 음원 서비스,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웨이브 등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비롯해 네이버의 플러스멤버십, 쿠팡의 로켓와우 등이 대표적이다. 고객이 월 이용료를 내고 꾸준히 콘텐츠와 쇼핑 혜택을 이용하는 서비스들이다.

하지만 가전과 같이 하드웨어에 구독 형태의 서비스가 접목된 사례는 적다. 콘텐츠와 쇼핑 등의 분야에 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LG전자는 가전을 업그레이드하면서 각 집안 공간에 필요한 모든 것을 서비스화하며 경쟁사들과 차별화할 방침이다. 기존에 없었던 '가전의 서비스화'에 과감히 도전하는 셈이다.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가 1959년 11월 선보인 국내 최초의 국산 라디오 'A-501'.(사진=(주)LG 홈페이지)

이는 LG 그룹의 창업자인 구인회 선대 회장의 '남이 미처 안 하는 것을 선택하라'는 경영철학과 맞닿아있다. 구 회장은 경영 현장에서 임직원들에게 "남이 안 하는 일 가운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되,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LG그룹의 시초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세워 화장품 '럭키크림'을 비롯해 플라스틱 칫솔과 튜브형 치약 '럭키치약'을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구 회장은 락희화학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다른 사업을 모색했다. 그는 1950년대 후반 라디오 방송 산업이 확대되는 것을 보면서 전자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떠올렸다. 라디오 방송이 뜨고 있는데 정작 라디오 기기를 만드는 국내 기업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라디오 제작 계획에 대해 회사의 임원들은 방송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하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구 회장은 락희화학이 축적한 플라스틱 및 금형 기술로 라디오 케이스와 부품을 생산하고 국내에 있는 독일 기술자를 유치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봤다.

그는 1958년 부산시에 국내 최초의 전자공업회사인 '금성사(현 LG전자)'를 설립했다. 이후 유럽으로 날아가 전자업계를 시찰하며 이미 앞서가고 있는 현지 기업들을 둘러봤다. 구 회장의 뚝심으로 금성사는 라디오 개발에 힘을 쏟았고 결국 시작한지 1년여만인 1959년 11월 국내 최초의 국산 라디오 'A-501'을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금성사는 '명랑한 가정마다 금성라디오!'라는 광고 카피로 제품을 홍보했다. 이 제품은 각 가정에서 라디오를 청취하고 싶은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30여년간 금성사뿐만 아니라 국내 전자제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골드스타(GoldStar)'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회사는 △선풍기 △자동전화기 △흑백 및 컬러 TV △세탁기 △카세트 녹음기 등을 줄줄이 내놓으며 전자제품의 국산화에 앞장섰다. LG전자는 이러한 구 회장과 금성사의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DNA'를 계승해 △의류 건조기 △의류 관리기 '스타일러' △식물 생활가전 '틔운' △신발관리 솔루션 '슈케이스·슈케어' 등을 선보이며 국내외 가전시장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