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당 영양제 샀는데…'혈당 관리' 문구, 다 같은 뜻 아니었다

약국 진열대에서 혈당 영양제를 고르다 보면 눈길이 멈춘다. 바나바잎 제품엔 '식후 혈당 상승 억제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고 인쇄되어 있고, 크롬 제품엔 '정상적인 혈당 유지에 필요'라고 적혀 있다.
같은 혈당 영양제인데 포장 문구는 왜 다를까. 알고 보면 단순하지 않은 차이다.
포장 문구 다른 것 '유념'
당뇨 전단계는 공복혈당 100~125mg/dL, 또는 당화혈색소 5.7~6.4%에 해당하는 구간이다. 공복혈당은 8시간 이상 굶은 뒤 잰 수치고, 당화혈색소는 최근 2~3개월 평균 혈당을 보여주는 지표다. 당뇨 전단계는 당뇨 진단 기준(공복혈당 126mg/dL 이상, 당화혈색소 6.5% 이상)에는 못 미치지만 정상도 아닌 경계 상태다.
혈당 수치가 마음에 걸려 관련 영양제를 사려고 한다면 포장 문구부터 그냥 지나치지 말자. '혈당'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해도 정부가 허락한 범위는 다르다.
미국은 한국보다 기능성 표현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건강기능식품 제조사는 식품의약국(FDA) 사전 승인 없이 일정 범위의 기능성 문구를 사용할 수 있고, 판매 후 통보하면 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원료별로 심사를 거쳐 허용 표현을 직접 지정한다. 제품 포장의 기능성 문구 하나하나가 심사를 통과한 표현이다.
식약처는 바나바잎추출물·계피추출분말 등을 혈당 관련 고시형 원료로 공전에 올려놓고 있다. 고시형 원료는 식약처가 안전성과 기능성을 직접 심사한 것이다. 식약처가 허락한 표현의 범위가 성분마다 얼마나 다른지는 직접 들여다봐야 한다.
물론 건기식의 특성을 고려할 때 고시원료에 이름을 올렸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혈당 낮춘다' vs '혈당 유지에 필요'…이 차이가 핵심
크롬이 든 혈당 영양제 포장을 보면 '혈당'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바나바잎추출물과 함께 담긴 제품 전면엔 '혈당 관리', '식후 혈당 조절'이라는 문구가 나란히 들어 있다. 한 제품 안에 들어있는 성분이니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식약처가 크롬에 허락한 표현은 '정상적인 혈당 유지에 필요'까지다. 혈당을 '낮춘다'거나 '억제한다'는 표현은 허락한 바 없다. 크롬은 공전에 영양소(필수 미량 미네랄)로 등재돼 있다. 크롬이 없으면 혈당 조절이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지, 크롬이 혈당을 낮춰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면 바나바잎추출물과 계피추출분말은 '식후 혈당 상승 억제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는 표현이 허용된다. 두 성분 모두 고시원료다.
바나바잎추출물은 동남아시아에 자생하는 바나바 나무 잎에서 추출한 코로솔산이 핵심 성분이다. 이탈리아 카타니아대 카나렐라 연구팀은 2023년 《내분비(Endocrines)》에 리뷰 논문을 냈다. 이들은 코로솔산이 포도당 대사 개선·인슐린 민감성 향상·탄수화물 분해 효소 억제 등 여러 경로로 혈당에 관여할 수 있다고 정리했다. 연구팀은 효능을 확인하려면 대규모 임상이 더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계피추출분말도 고시원료다. 이란 타브리즈의대 모리드푸르 연구팀은 2024년 《파이토테라피 리서치(Phytotherapy Research)》에 논문을 발표했다. 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무작위대조시험 24건을 종합한 결과, 계피 보충제가 공복혈당과 당화혈색소를 뚜렷하게 낮추는 것으로 확인됐다.
내 상황과 같은 조건의 연구이었나
혈당 관련 영양제 시장에서 최근 가장 빠르게 주목받는 원료 중 하나가 베르베린이다. 이는 황련, 황벽나무, 매자나무 등의 뿌리에서 추출되는 알칼로이드 성분이다.
중국 산둥중의약대 왕자청 연구팀은 2024년 《약리학 프런티어(Frontiers in Pharmacology)》에 논문을 발표했다. 2형 당뇨병 환자 4150명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대조시험 50건을 종합한 결과, 베르베린을 단독 투여했을 때 공복혈당·식후혈당·LDL콜레스테롤·중성지방이 낮아졌고, 혈당강하제와 병용했을 때 당화혈색소도 개선됐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베르베린은 식약처 공전에 혈당 관련 기능성 원료로 올라 있지 않다. 기능성을 인정받지 못해 건기식으로는 판매할 수 없다.
혈당 영양제, 포장 문구 확인이 먼저
영양제를 고를 때 건강기능식품 마크와 기능성 표현을 확인하자. 해당 연구가 나와 비슷한 사람을 대상으로 했는지를 따져보자. 왕자청 연구팀 논문을 포함해 베르베린 관련 연구들은 대부분 2형 당뇨병 진단을 받은 환자가 대상이었다.
무엇보다 당뇨병으로 악화될 우려가 있다면 영양제와 함께 식습관과 운동도 챙겨야 한다. 실제로 당뇨 전단계에서 생활습관만 바꾼 사람들은 당뇨병 발생 위험이 30~58% 낮아졌다. 미국과 핀란드에서 진행된 대규모 임상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생활습관 관리가 함께돼야 혈당 개선 효과도 더 안정적으로 나타난다.
복용 중인 당뇨 치료제가 있다면 의사나 약사와 먼저 상담하자. 바나바잎추출물·베르베린·계피는 당뇨 치료제와 함께 먹으면 혈당이 지나치게 떨어질 수 있고, 다른 약의 효과를 바꿀 수도 있다.
어떤 성분인지 알고 고른 영양제가 더 잘 맞는다. 영양제 한 알이 제 힘을 내려면 운동과 식습관이 함께해야 한다.
최승욱 기자 (swchoi6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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