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현실 사이의 순간들 [수상한 말수의사]

생후 한 달 된 흑갈색 망아지가 우리 병원에 온 첫날, 얼핏 봤을 때는 경미하게 아파 보였다. 한참 시도 때도 없이 낮밤으로 젖을 먹을 나이인데 젖을 빠는 게 갑자기 시원찮고 맹해졌다고 했다. 망아지는 주간에는 병원에 와서 처치를 받고, 야간에는 집에 데려가서 보호자가 분유를 주는 형식의 통원 치료를 며칠 지속하다가 상태가 나아져서 치료를 종료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말이 갑자기 또 힘없이 처진다고 연락이 왔다. 다시 내원한 망아지는 이번에는 잘 걷지도 못하고 고개를 잘 들지도 못했다. 급하게 검사를 다시 돌리니, 퇴원할 때 괜찮았던 수치들이 엄청나게 안 좋아져 있었다. 방심했던 나는 예민모드로 불이 번쩍 켜졌다. 염증수치는 이틀 사이에 정상범위에서 다섯 배는 넘게 솟구쳐 있었다. 망아지는 젖을 스스로 빨기는커녕 분유를 삼키지도 못했다. 눈과 귀의 감각은 둔하고, 누운 상태에서 스스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뱅뱅 돌며 발버둥만 쳤다.

나는 한숨만 더해졌다. 그날 밤부터 24시간 동안 수액을 걸고, 밤에도 분유를 매시간 먹여야 하겠다고 판단했다. 그건 누군가는 상주해야 한다는 소리였고, 주인은 야간 관리자를 구했다. 그날부터 얼떨결에 난데없는24시간 입원 관리의 기나긴 여정은 시작되었다.

출처: 김아람

진료를 하다 보면 퍼즐이 한 번에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이 말도 그랬다. 야간 치료 기간 동안 염증 수치가 다행히 날마다 떨어졌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모든 게 전혀 나아지는 게 없었다. 온 힘을 다해 야간관리자는 말을 돌보았다. 뱅글뱅글 무의식적으로 벽을 돌기만 하고, 전혀 먹지를 못했다. 어미말의 젖을 시간마다 짜서 젖병에 담아서 망아지에게 주고, 또 부족한 만큼 분유를 타서 먹이고, 수액줄이 엉키지 않도록 계속 잡아주는 것이 관리자의 일이었다.

다음날이 되어도, 또 다음날이 되어도 망아지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며 증상은 호전이 없었다. 며칠밤을 샌 관리자는 낮밤이 바뀌어서 얼굴이 점점 노래지고 있었다. 인건비는 점점 누적되고, 전례 없던 야간 돌봄 운영에 사람들도 지쳐갔다. 그때부터였다. 점점 나는 무력해지는 것 같았다.

‘이 말을 언제까지 입원시켜야 하나?‘ ’진즉에 포기하는 게 맞았나?‘ ’ 내가 모든 말을 책임질 수는 없지 않나?‘ ‘내가 주인을 희망고문하나?' '가망도 없는데 너무 여러 사람 낮밤으로 고생만 시키고 돈만 들게 하나?' 이제는 나 스스로가 나를 더 거세게 휘둘렀다. 혈액수치 하나 빼고는 온갖 정성 대비 모든 게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이것도 인력을 갈아 넣으며 밤샘 약물처치 때문에 이렇게 연명하는 거지, 이게 없다면 과연 스스로 버틸 수 있을지 보장도 없었다.

그 압박은 결국 나를 두 손 들게 만들었다. 나는 주인을 소환했다. 마트에서 오늘 필요한 분유 한통을 사고 있다가 내 전화에 달려온 주인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말이 없어졌다. 나는 시각과 청각 등 신경장애증상이 전혀 돌아오지 않고, 24시간 초집중 치료를 여러 날 했음에도 여전히 엄마도 못 찾고 스스로 먹지 못해서, 관리가 없다면 회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전했다.

내 판정에 주인은 침묵했다. 그러더니 주인은 이야기했다. 그러면 오늘밤만 지금처럼 삼교대로 똑같이 밤샘 수액까지 맞히며 고생해 주시고, 내일 저녁까지 치료가 끝나면 그때 데리고 돌아가겠다. 내가 집에서 며칠 더 분유를 억지로라도 먹여보고 말이 정말 안 되겠으면 거기서 외부수의사를 통해 안락사 조치 하겠다고 했다. 바로 포기하지 않고 이틀만 더 관리해 달라는 비장한 주인에게 나는 더 이상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야간관리 실장님은 마지막날까지 정말 정성을 다해 분유를 매시간 입에 흘려 넣어 주었고, 나는 비틀거리는 앙상한 망아지를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보냈다.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다.

망아지를 포기하고 집으로 보냈지만 여전히 생사가 궁금했다. 주인이 밤에 여전히 먹여주는지, 어미를 못 따라다니고 혼자 벽만 뱅뱅 도는지 너무 궁금해서 퇴원 3일 후, 팔로업 전화를 걸어보았다. 버튼을 누르기 전 혹시나 비보가 전달될까 봐, 괜히 주인 마음을 내가 긁을까 봐 걱정되었다.

“말이 좀 괜찮은가 해서 연락드렸어요 마주님.”
“아. 아직 잘 있어요. 어쩔 때는 젖도 스스로 빠는 것 같어. “

깜짝 놀랐다. 주인은 긍정적인 분이어서, 젖을 물고만 있는걸 혹시 스스로 빤다고 생각하는지 살짝 의심이 될 만큼, 산송장 같았던 망아지가 며칠 만에 상태가 좋아졌다는 소식이 놀라웠다. 나는 그날 점심 상태점검을 핑계로 왕진을 갔다. 말 상태를 직접 보고, 밤새 내내 관리해 준 입원실장님께도 영상을 찍어 보여주고 싶었다.

출처: 김아람

주인의 말은 맞았다. 여전히 우리가 매일 처방하는 조제 수액을 하루종일 충실히 맞히며, 낮밤으로 젖을 짜서 먹인 결과 말은 정말 활력이 제법 나아졌고, 한참 걸리지만 젖을 스스로 찾아서 물기도 했다. 갈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이나, 최악의 고비는 넘긴 것으로 보였다. 며칠 전 압박감에 휘둘려 말을 포기하라고 평가했던 나 자신이 너무 미안했다.

”마주님, 이 말은 결국 마주님이 살렸네요. 감사합니다. “

주인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옆의 목장주인도 어서 처리하라고 맨날 뭐라 하는데, 그래도 살아있는 걸 어떻게 죽여. 그냥 낮밤으로 젖을 짜서 먹였지.”

그 이후 나는 반성을 정말 많이 했다. 수의사의 냉정한 예후 판단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 원래 나는 생의 확률이 낮아도, 언제까지 돈과 시간을 퍼부어야 하는지 가늠이 안된다 해도, 뭐라도 해보고 싶은 쪽에 치우친 사람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반려동물이 아니고 경제적 동물인 말에게, 가치 결정을 위한 적정선을 주인에게 제시해야 하는 게 현실이었고, 나도 그에 맞는 적당한 사람이 돼 가고 있었다. 시간 끌고 치료 연장하다 말이 죽으면, 심지어 돈도 내지 않는 주인들까지 여럿 겪다 보니, 나는 점차 변했고, 지금 이 분의 속마음을 살펴보지 못했다.

며칠 후 주인은 오늘에야 망아지 출생등록 했다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약을 처방받으러 들르셨다. “망아지는 제가 아니고 마주님이 살린 거예요. 감사합니다. 마주님.”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그럼에도 망아지 편에 서주신 마주의 자세에 나는 큰 배움을 얻었고, 나는 다음 번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백명 중에 한 명은 나 같은 기울기의 인간이 있어도 되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망아지를 포기하며 내보냈던 그날, 옆 방에 막 입원한 또 다른 말의 미래를 바꾸었다.

젖 못 빠는 망아지의 예후 불량 판정을 내뱉은 날, 내 기력은 거의 소진되었다. 그즈음 바로 옆방에는 며칠째 변이 안 나와서 고생하다 결국 응급수술로 배를 열어서 내장의 문제를 해결한 어미말이 입원해 있었다. 수술이 깔끔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고, 수술 다음날부터 밥 달라고 온종일 설치며 기력도 좋았다. 옆방의 기약 없는 앙상한 망아지와 달리, 이 말은 식욕도 존재감도 넘쳤다.

하지만 수술 며칠 후부터 극도의 탈수증상과 함께 갑자기 엄청난 물설사를 시작했다. 변비가 오래되면서 장의 일부가 수술 전부터 이미 손상되었고, 장상피세포가 회복이 안돼서 설사를 유발하는 술후 합병증이었다. 수액을 쏟아부으며 탈수를 교정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또 기나긴 야간치료가 시작되었다. 말이 크니 낮밤으로 들어가는 약도 엄청났다.

약을 들이부어도 물총 설사양은 바닥을 흥건히 적실만큼 많았고, 일주일이 지나니 엉덩이 살까지 다 빠지며 뼈만 앙상해졌다. 그 와중에 생후 1개 월령 된 딸린 망아지는 잘 나오지도 않는 어미젖만 물고, 분유병 급여를 완전히 거부해서 망아지 역시 점점 마르고 힘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일주일 남짓, 또다시 판정의 시간이 돌아왔다. 약장을 거덜낼만큼 수액이 들어갔는데, 설사는 여전하고 탈수는 교정이 안되고, 얼굴과 다리 부종은 심해지고, 경정맥에 염증도 왔고, 말의 잇몸 점막은 책에서나 볼법한 건조한 검붉은 색이었다.

결국 나는 주인에게 또 예후불량 및 퇴원을 통보했다. 입원관리자도 퇴근시키고 말은 내일 아침 가져가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내 발걸음이 도무지 안 떨어졌다. 밤샘수액 끊으면 어찌 될지 뻔해서, 결국 나는 집에 안 가고 수액을 직접 주며 하루라도 편하게 있다 가길 바랐다. 조용한 입원실에서 가만히 수액을 주다가 평소에 안 쓰는 약까지 뜯어서 수액과 섞어서 천천히 투여해 보았다.

출처: 김아람

몇 시간이 지났고, 이제 집에 가려 하는데 갑자기 또 응급 전화가 왔다. 응급수술이 필요한 케이스였다. 나는 어차피 아직 내가 병원에 있으니 데리고 오라고 전했고, 수술팀원을 야밤에 소집했다. 한 시간쯤 지나서 팀원도 하나둘 도착하고, 이어서 말 수송차도 새까만 밤중에 도착했다. 그런데 수송차를 여니 말이 쓰러져 있었다. 심장은 이미 멈춰 있었고 우리는 돌이킬 수 없었다.

컴컴한 밤을 뚫고서 어렵게 말을 데려온 관리자들과, 기꺼이 콜에 응해준 진료진 여러 명은 허무하게 담배만 몇 대 피우다가 다시 돌아갔다. 한바탕 그 소동을 마치다 보니, 밤이 몹시 늦었다. 돌이켜보면 죽은 말은 산 말의 야간 치료시간을 벌어주었고 입원말은 수액과 치료제제를 제법 충분히 맞았다. 이른 아침 다시 검사 결과를 보니 다행히 어젯밤 약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아주 아주 희미한 희망 한 점이 보였다. 나는 이번에는 다른 것들에 영향받지 않고, 오로지 말의 수의학적 상태만 생각해 보기로 결심했다. 심플해졌다. 이른 아침이지만 마주에게 전화했다.

“오늘 아침에 데려가시기로 하셨죠. 그런데 말 상태에 대해 제가 조금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오시면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주에게 일단 나는 몸속의 필수 성분까지 설사로 계속 빠지고 있는 전신 증상의 총체적 문제를 알렸다. 입원 며칠 더 한다고 바로 나아지진 않을 거라고 말했다. 거의 마른 젖일지라도 망아지가 여전히 의존하고 있고, 약 치료를 종일 지속하면 또 하루씩은 버틴다 했다. 장상피가 앞으로 회복이 될지 보장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며칠만이라도 입원 연장을 의뢰한다면 나는 치료할 용의가 있으며, 그게 망아지에게라도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어제의 내 통보를 뒤엎었다.

주인은 어차피 팔자라며 그러면 이삼일만 더 치료해 보자고 동의했다. 나는 시간을 벌었다. 물줄기 같은 설사는 어쩔 때는 조금 형태가 보이는 것 같아서 안심하다가도 또다시 악화되기도 하며 야속하게 호전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장상피세포 회복이 더디니 몸 밖으로 알부민이 자꾸 빠져나가서 다리는 붓고 젖도 안 나오고 탈수 교정이 여전히 되지 않았다. 잇몸 색깔은 핑크빛이 아니라 검붉은 색깔이었고, 목에 위치한 혈관에 염증까지 생겨서, 미세 혈관이 뺨까지 노장돼서 뼈만 남은 말이 한마디로 만신창이처럼 보인다. 여전히 종종 다리를 긁고 배를 쳐다보며 아파하는 통증도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며칠간의 추가 연장전에서 적극적인 약물 치료에도 불구하고 나는 큰 성패를 보지 못했다. 말은 동일한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몹시 미세한 차이를 생각했다. 희망회로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일단 말이 아직 통증이 있음에도 밥을 먹고, 염증수치는 더 오르지 않고, 알부민 수치는 최악이긴 하지만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있었다. 체중 역시 더 떨어지지는 않았다. 물설사가 멎을 만큼 장상피세포가 속히 회복되고 전신 증상이 개선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출처: 김아람

내 마음은 생의 확률이 51%, 사의 확률이 49%라 생각했으나 객관적 확신이 없어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망아지는 덕분에 시간을 벌어서 이제는 알아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뼈만 남은 쇠약한 어미말에게 추가 약을 처방하고 긴 터널을 이제는 스스로 걸어가 보라고 내보냈다.

일주일이 흘렀다. 전화를 해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늘 용기가 나지 않는다. 성적표를 보는 것 같다. 굳이 떠들출 필요도, 책임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그런데 나는 전화기만 보고 있다. 무지하게 신경이 쓰였지만 무심한 척 결국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지난번 ㅇㅇ이가 퇴원 후 어떤가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마음속 카운트다운이 열린다. 3.. 2.. 1.... 벌렁벌렁.
"아. 잘 있습니다."
"네??? 살아있다고요? 증상은요? 설사는 멈췄나요? 이제 젖은 나와요?"

질문을 한 네댓 개 따발총으로 쏘다가 정신을 차렸다. 맘 같아서는 당장 가보고 싶지만 체면을 차렸다. 하지만, 기쁨도 한시적이었다. 수개월 후 그 말은 갑자기 떠났다고 했다. 겨우 물을 얻어서 자랐던 가뭄 속 수국이 바스락 거리며 사라지는 그 모습까지 다 보고, 또 다시 후회를 남기고서야 끝이 났다.

출처: 2024, '가닿음으로', 김수오 사진작가 사진전에서 만난 작품

어쩔 땐 가혹하기도 하다. 잘되든지, 못되든지 딱 두 개로만 승패는 결정 난다. 그 중간의 온갖 스토리와 좌절과 헤맴과 노력들은 사실 보이지 않고 완전히 사라진다. 스포츠 선수도 그런 느낌일까? 정치인도 그런 느낌일까? 오로지 '승'만이 내 가치를 증명해 주는 세상 속에서 나 혼자 땅 파는 것 같은 지지부진하고 기나긴 삶을 사는 것 같은 사람은 분명 이 세상에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이야기조차도 '승'이 아니었다면 감히 꺼내지 못했을 것이고, 나는 내 안의 겹겹이 쌓은 그 수많은 '패'로 끝난 수많은 종이 조각들로 내 인생을 채워가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결과'가 좋아야 '과정'을 살펴 봐주는 세상 속에서 한 번쯤은 결과를 종이로 가리고 '과정' 이야기라도 그냥 쓰고 싶었다. 아니 언젠가는 정말 그 땀내 나는 지지부진함을 각 잡고 한번 써보고 싶다.

과정에 최선을 다 했음에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면, 미련을 두지 않으며 그건 하늘의 뜻이라고 여겨야 하는 게 늘 쉽지 않다. 결과에 실망한다기보다는,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후회가 날 더 괴롭힌다. 만약 최선에 대한 기준점이 존재한다면, 그건 자기 자신이 설정하는 시지프스의 바위 같은 존재인 것만 같다.

지지부진하고 땀내나는 모습으로 바위를 위로 굴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 성과도 없는 것 같고, 때로는 의미도 희망도 없는 것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혹은 내가 그 사람이라면, 상대에게 혹은 나에게 딱히 해법은 제시하지 못하겠다. 삶은 때로는 명쾌하지 않다. 그저 굴릴 뿐이다.

출처: 김아람

* 위의 사진들은 이 글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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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소개 : 수상한 말수의사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다가가는 게 망설여지는 한 인간의 고군분투기

글쓴이: 김아람
말 많은 제주도에서 사는 20년 차 말 수의사입니다.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를 공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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