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아트 빌리지가 된 충북 청주 여행
청주에는 가볼 만한 골목이 두 곳이나 있다. 대성로122번길과 수암골목이다. 대성로122번길은 예술을 테마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고 수암골목은 드라마 ‘카인과 아벨’, ‘제빵왕 김탁구’ 등의 촬영지로 알려지며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게다가 갖가지 벽화가 그려져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마을 꼭대기에서는 청주 시내도 훤히 내려다보인다.
골목에는 ‘당산 생각의 벙커’라는 곳도 있다. 원래 방공호로 지어진 것인데, 빈 공간인 채로 남았다고 했다. 이곳 역시 공사 중이었다. 아마 전시실이나 공연장으로 재탄생하지 않을까. 가을이면 다시 찾아도 되지 않을까, 어떤 낭만 가득한 풍경을 보여줄지 기대하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면 건너편으로 푸른 잔디밭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반려견과 함께 뛰어노는 아이도 있고 도시락을 가져와 피크닉을 하는 연인들도 보인다. 공남문이 입구 격인데, 공남문 천장에는 남쪽의 왜구를 물리치겠다는 염원을 담아 남쪽을 관장하는 주작을 그려 넣었다. 공남문 보루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이며 청주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방금 지나온 입구의 잔디밭도 펼쳐져 있다. 보루에 올라서 보면 상당산성이 성을 방어하기 아주 좋은 반면, 적군들은 성을 함락하기 쉽지 않은 천혜의 요새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원래 이곳에는 백제시대부터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임진왜란 때 일부 고쳤고 1716년(숙종 42년) 사각으로 다듬은 화강암으로 석성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옛 모습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어 최수종 주연의 드라마 ‘대조영’, ‘태왕사신기’ 등 다양한 사극을 촬영했다.
수암골을 십여 년 전 찾은 적이 있다. 전국의 골목을 취재한답시고 이곳저곳 삼각대를 메고 열심히 쏘다닐 때였다. 당시의 취재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 질 무렵까지 촬영을 하고 땀에 푹 절은 몸으로 주차해 놓은 차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좁은 골목으로 평상이 하나 나와 있었는데 그 평상에 TV를 갖다 내놓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수박을 나눠 먹으며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수박 한 조각을 건네주셨고, 나는 그 수박을 먹으며 평상에 앉아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어느 아저씨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가 수암골 극장이요. 상영시간은 해질 때부터 밤 10시까지. 저기 시내에 보이는 ‘대한생명’ 간판이 딱 10시에 꺼지거든. 그때면 텔레비전 끄고 자러 들어가요.”
그 수박이 너무 달고 맛있었다는 걸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고 나는 수암골에 다시 왔다. 마을 앞에 자리하고 있었던 ‘삼충상회’는 그 자리에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당시만 해도 수암골에서 유일한 가게였던 걸로 기억한다. 가게 간판이 짙은 푸른색이었는데 그 사이 색이 많이 바랜 것 같다. 십 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가게 옆에 그려진 골목 지도도 그대로지만 색이 바래고 희미해졌다.
본격적으로 수암골을 알린 건 ‘제빵왕 김탁구’다. 이 드라마가 뜨면서 마을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직도 마을 중턱에는 당시의 빵집으로 등장했던 ‘팔봉제빵점’이 있는데 여전히 영업하고 있다. 드라마에 나왔던 빵이 ‘보리봉빵’으로 팔리고 있는데, 보리를 발효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하나 사 먹어 보니 맛이 달콤하면서도 구수했다.
“교수들일랑 학생들이 떼 지어 몰려와서는 그림을 그리더라고. 담벼락이고 전봇대고 대문이고 화분이고 가리지를 않더구만. 허허.”
한 어르신이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벽화골목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찾기 시작했다.
골목은 30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지만, 이 골목 저 골목 벽화를 구경하며 기웃거리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간다. 전문가들이 그린 벽화라서 그럴까, 전국의 흔한 벽화마을과는 그림 수준이 다른 것 같다. 마을 꼭대기에는 전망대도 마련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청주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수암골은 원래 해방 후 일본과 중국에서 들어온 동포들이 터를 잡은 곳이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울산 23육군병원 앞에 천막을 치고 살던 피란민들이 청주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커졌다. 수암골이 자리한 ‘수동’이라는 지명은 옛날 수용소 터를 가리키던 명칭이다. 당시에는 보기 드물게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한 장 한 장 찍어 집을 지었다고 한다. 판자로 얼기설기 만든 집과는 달랐다. 하지만 달동네는 달동네라서 물도 물지게로 져다 날라야 했고 연탄도 마을 아래에서부터 지게에 실어 왔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 공동화장실을 사용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을도 집의 모양도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사는 사람들은 많이 바뀌었다. 전쟁이 끝나자 수암골에 자리 잡았던 피란민들 대부분은 수암골을 떠났다.
굳이 벽화가 아니더라도 수암골 골목길이 풍경은 놀랍다. 전깃줄 수백 가닥이 얽히고설킨 전봇대가 서 있고 사람 한 명이 지나기에도 힘겹게 보이는 좁은 길도 있다. 집 앞에는 파와 상추를 심어놓은 화분이 놓여 있다. 화분도 알록달록하게 색칠했다. 대문 너머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리고 골목 담벼락에는 양철 보일러 환기구가 버젓이 드러나 있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아이가 골목길을 뛰어가기도 한다. 오후 네 시 무렵이면 적당히 기울어진 부드러운 햇살이 의자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새소리며 구름 그림자가 의자 위에 슬며시 내려앉고 사철나무 그림자도 넌지시 찾아와 의자를 기웃거린다.
“에구구… 뭐 찍을 게 있다고 이 높은 곳까지 와서 고생이랴. 이거 좀 드세요.”
아주머니가 건네준 물그릇에는 얼음도 동동 떠 있었다. 시원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라도 한바탕 쏟아졌으면 했지만 그날따라 하늘은 유독 맑았고 햇살이 따가웠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물그릇을 비우고 골목에 서서 시간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일상적인 여행의 매력은 이런 것이 아닐까. 처마 그늘에 서서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에 눈부셔하는 일, 바람이 빨래를 말리는 일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 어디선가 들려오는 졸리운 고양이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 주민에 내어준 시원한 물 한 그릇에 고마워하는 일…. 익숙한 이 모든 풍경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일.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50호(24.10.1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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