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아트 빌리지가 된 충북 청주 여행

2024. 10. 13.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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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로122번길과 수암골목을 걷다

청주에는 가볼 만한 골목이 두 곳이나 있다. 대성로122번길과 수암골목이다. 대성로122번길은 예술을 테마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고 수암골목은 드라마 ‘카인과 아벨’, ‘제빵왕 김탁구’ 등의 촬영지로 알려지며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게다가 갖가지 벽화가 그려져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마을 꼭대기에서는 청주 시내도 훤히 내려다보인다.

‘청주의 몽마르트르’로 불리는 대성리 122번길
청주에 대성로122번길이라는 곳이 있다. 충북도청 후문에서 당산공원을 지나 청주향교까지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약 900미터의 언덕길이 이어지는데, 이차선 도로 양옆에는 자그마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 옆으로 작은 골목이 실핏줄처럼 퍼져 나간다. 사람들은 이곳을 ‘청주의 몽마르트르’라고 부르기도 한다. 거리극 공연과 노상 음악회, 크고 작은 전시회며 축제, 플리마켓 등이 열리기 때문이다.
낭만 골목의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이곳은 원래 오래된 빈집과 휑한 공터만 있던 곳이었는데,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문화예술’이라는 새 옷을 입기 시작, 지금은 청주에서 가장 낭만적인 골목으로 불린다. 내심 기대가 컸다.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지명인 ‘몽마르트르’를 빌려 왔으니 도대체 얼마나 예쁜 곳일까. 하지만 골목 초입에 도착한 순간, 그 기대는 아쉬움으로 바뀌고 말았다. 골목 곳곳이 공사 중이었기 때문. 망치 두드리는 소리와 전기톱 소리, 드릴 소리로 가득했다.
길에는 조선시대에서 일제 강점기 그리고 현재에 이르는 시간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건물들이 모여 있었다. 가장 유명한 건물은 ‘우리예능원’이다. 1924년 충북금융조합 사택으로 건립된 독특한 일·양 절충식 양식을 지닌 등록문화재다. 1950~1960년대에는 청주 YMCA회관 등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쓰이다가 1980년대부터 우리예능원으로 자리매김 후 지금까지 음악교육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골목에는 ‘당산 생각의 벙커’라는 곳도 있다. 원래 방공호로 지어진 것인데, 빈 공간인 채로 남았다고 했다. 이곳 역시 공사 중이었다. 아마 전시실이나 공연장으로 재탄생하지 않을까. 가을이면 다시 찾아도 되지 않을까, 어떤 낭만 가득한 풍경을 보여줄지 기대하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했다.

청주의 몽마르뜨르 ‘대성로 122번길’에 위치한 우암산다방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웅장한 상당산성
지금은 수암골 가는 길이다. 벽화가 예쁜 골목이다. 가기 전, 상당산성에 잠깐 들렸다. 상당산성은 청주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상당산 능선을 따라 높이 4~5미터의 성곽이 4.2킬로미터나 구불구불 이어진다. 성곽길을 모두 둘러보려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주차장에 차를 대면 건너편으로 푸른 잔디밭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반려견과 함께 뛰어노는 아이도 있고 도시락을 가져와 피크닉을 하는 연인들도 보인다. 공남문이 입구 격인데, 공남문 천장에는 남쪽의 왜구를 물리치겠다는 염원을 담아 남쪽을 관장하는 주작을 그려 넣었다. 공남문 보루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이며 청주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방금 지나온 입구의 잔디밭도 펼쳐져 있다. 보루에 올라서 보면 상당산성이 성을 방어하기 아주 좋은 반면, 적군들은 성을 함락하기 쉽지 않은 천혜의 요새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상당산성의 모습
상당산성의 정확한 축성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원정이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는 궁예가 쌓았다는 내용도 나온다. 또 『선조실록』에는 임진왜란 때 충청도병마절도사로 온 원균이 축조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원래 이곳에는 백제시대부터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임진왜란 때 일부 고쳤고 1716년(숙종 42년) 사각으로 다듬은 화강암으로 석성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옛 모습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어 최수종 주연의 드라마 ‘대조영’, ‘태왕사신기’ 등 다양한 사극을 촬영했다.

‘대조영’ ‘태왕사신기’ 등을 찍은 상당산성
오랜만에 찾은 골목
우리나라에서 도시 속 마을 중에 ‘골’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대부분 달동네라고 보면 된다. 산 중턱 비탈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수암골도 그런 곳이다. 우암산 서쪽 자락 비탈에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모여들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수암골을 십여 년 전 찾은 적이 있다. 전국의 골목을 취재한답시고 이곳저곳 삼각대를 메고 열심히 쏘다닐 때였다. 당시의 취재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 질 무렵까지 촬영을 하고 땀에 푹 절은 몸으로 주차해 놓은 차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좁은 골목으로 평상이 하나 나와 있었는데 그 평상에 TV를 갖다 내놓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수박을 나눠 먹으며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제빵왕 김탁구’로 유명해진 수암골
“아휴, 이제 촬영 다 끝났어요? 여기 뭐 찍을 게 있다고 와서 이렇게 고생을 하시는 겨? 여기 와서 수박 하나 드시고 가.”

한 아주머니가 수박 한 조각을 건네주셨고, 나는 그 수박을 먹으며 평상에 앉아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어느 아저씨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가 수암골 극장이요. 상영시간은 해질 때부터 밤 10시까지. 저기 시내에 보이는 ‘대한생명’ 간판이 딱 10시에 꺼지거든. 그때면 텔레비전 끄고 자러 들어가요.”

그 수박이 너무 달고 맛있었다는 걸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고 나는 수암골에 다시 왔다. 마을 앞에 자리하고 있었던 ‘삼충상회’는 그 자리에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당시만 해도 수암골에서 유일한 가게였던 걸로 기억한다. 가게 간판이 짙은 푸른색이었는데 그 사이 색이 많이 바랜 것 같다. 십 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가게 옆에 그려진 골목 지도도 그대로지만 색이 바래고 희미해졌다.

‘제빵왕 김탁구’에 등장한 팔봉제빵점
수암골도 드라마에 몇 번씩 나왔다. 소지섭과 한지민이 주연한 드라마 ‘카인과 아벨’ 촬영지로 널리 알려지며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극 중 초인(소지섭)과 영지(한지민)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터전으로, 애틋한 사랑이 싹튼 곳으로 소개됐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수암골을 알린 건 ‘제빵왕 김탁구’다. 이 드라마가 뜨면서 마을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직도 마을 중턱에는 당시의 빵집으로 등장했던 ‘팔봉제빵점’이 있는데 여전히 영업하고 있다. 드라마에 나왔던 빵이 ‘보리봉빵’으로 팔리고 있는데, 보리를 발효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하나 사 먹어 보니 맛이 달콤하면서도 구수했다.

수암골 곳곳에 골목 벽화가 그려져 있다, 수용소 터와 피난민들의 정착지였던 수암골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달동네에서 벽화마을로
빵으로 허기를 달래고 골목을 걸었다. 골목 벽화도 지금은 색이 많이 바랬다. 하기야 2007년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그려진 것이니 15년이 훌쩍 넘었다. 당시 이홍원 화백을 비롯한 충북민족미술인협회 회원, 충북 민예총 전통미술 위원회 회원 작가, 청주대, 서원대 학생들이 ‘추억을 골목 여행’이라는 주제로 서민들의 생활을 담을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교수들일랑 학생들이 떼 지어 몰려와서는 그림을 그리더라고. 담벼락이고 전봇대고 대문이고 화분이고 가리지를 않더구만. 허허.”

한 어르신이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벽화골목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찾기 시작했다.

골목은 30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지만, 이 골목 저 골목 벽화를 구경하며 기웃거리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간다. 전문가들이 그린 벽화라서 그럴까, 전국의 흔한 벽화마을과는 그림 수준이 다른 것 같다. 마을 꼭대기에는 전망대도 마련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청주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낡은 벽마저 오브제가 되는 수암골
처음 수암골을 찾았을 때, 그러니까 전국의 골목을 찍는다고 전국을 쏘다닐 때, 그땐 무슨 열정으로 그렇게 열심이었을까. 일출을 찍는다고 핫셀블라드(중형 카메라)를 들고 태백산도 뛰어오르던 시절이다. 지금 그 사진들은 전부 (12테라바이트의 외장하드에) 고이 잠자고 있다. 굳이 꺼내 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래도 그 시절,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의 미욱한 삶이나마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다. 빈둥대며 요령을 부렸을 그 시절의 나를 후회하고 있었을 테지.

수암골은 원래 해방 후 일본과 중국에서 들어온 동포들이 터를 잡은 곳이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울산 23육군병원 앞에 천막을 치고 살던 피란민들이 청주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커졌다. 수암골이 자리한 ‘수동’이라는 지명은 옛날 수용소 터를 가리키던 명칭이다. 당시에는 보기 드물게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한 장 한 장 찍어 집을 지었다고 한다. 판자로 얼기설기 만든 집과는 달랐다. 하지만 달동네는 달동네라서 물도 물지게로 져다 날라야 했고 연탄도 마을 아래에서부터 지게에 실어 왔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 공동화장실을 사용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을도 집의 모양도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사는 사람들은 많이 바뀌었다. 전쟁이 끝나자 수암골에 자리 잡았던 피란민들 대부분은 수암골을 떠났다.

지도가 그려진 길을 지나 골목길을 올라가면 벽화를 하나둘 만날 수 있다. 연꽃이 그려진 벽, 익살스런 호랑이가 그려진 벽, 암탉이 병아리를 데리고 가는 그림이 그려진 담장도 있다.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있고, 시원한 바다가 그려진 담장, 발레리나가 그려진 벽도 있다. 꽃잎이 새겨진 계단은 통째로 들어내 가고 싶을 생각이 들게 할 만큼 예쁘다. 녹슨 철 대문과 쓰러질 듯 서로 기대선 담벽들, ‘근면·자조·협동’ 표어 따위들이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길은 어떻게든 서로 만난다.

굳이 벽화가 아니더라도 수암골 골목길이 풍경은 놀랍다. 전깃줄 수백 가닥이 얽히고설킨 전봇대가 서 있고 사람 한 명이 지나기에도 힘겹게 보이는 좁은 길도 있다. 집 앞에는 파와 상추를 심어놓은 화분이 놓여 있다. 화분도 알록달록하게 색칠했다. 대문 너머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리고 골목 담벼락에는 양철 보일러 환기구가 버젓이 드러나 있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아이가 골목길을 뛰어가기도 한다. 오후 네 시 무렵이면 적당히 기울어진 부드러운 햇살이 의자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새소리며 구름 그림자가 의자 위에 슬며시 내려앉고 사철나무 그림자도 넌지시 찾아와 의자를 기웃거린다.

잔상이 오래 남는 수암길 골목의 풍경
시원한 물 한 그릇으로 남을 골목
수암골을 찾은 날은 정말 무더웠다. 기온은 35도를 넘나들고 있었다. 몇 발짝 뗐을 뿐인데도 땀이 쏟아졌다. 잠시 길가 그늘에 서서 땀을 식히고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커다란 양은그릇에 물을 담아 건넸다.

“에구구… 뭐 찍을 게 있다고 이 높은 곳까지 와서 고생이랴. 이거 좀 드세요.”

아주머니가 건네준 물그릇에는 얼음도 동동 떠 있었다. 시원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라도 한바탕 쏟아졌으면 했지만 그날따라 하늘은 유독 맑았고 햇살이 따가웠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물그릇을 비우고 골목에 서서 시간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일상적인 여행의 매력은 이런 것이 아닐까. 처마 그늘에 서서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에 눈부셔하는 일, 바람이 빨래를 말리는 일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 어디선가 들려오는 졸리운 고양이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 주민에 내어준 시원한 물 한 그릇에 고마워하는 일…. 익숙한 이 모든 풍경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일.

어느 골목 여행 원고를 쓰며 “골목길을 벗어나면 골목길의 잔상이 남는다”라고 썼던 기억이 있다. 어떤 골목은 창문 하나로 기억되고, 어떤 골목은 어슴푸레한 가로등 불빛으로 기억된다. 어떤 골목은 담 아래 뿌려진 붉은 장미꽃잎으로 남고, 어떤 골목을 떠올리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귓전에 맴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잔상들은 이제 거의 사라지고 없다. 다녀왔다는 기억조차 희미해졌다. 뭔가 그립다는 희미한 감정만 남아 있다. 언젠가 이 풍경도 그렇게 되겠지. 벽화가 시간에 조금씩 닳아 마침내 사라지듯 말이다. 어느덧 그리운 것들이 점점 늘어나는 나이다. 나중엔 그리운 것들만 남겠지, 끝내는 그리운 것들만 남겠지. 나는 골목 쪽으로 뒤돌아보며 마지막 셔터를 눌렀다.
청주 여행 정보 | ‘상당집’의 두부전골, ‘효순이네칼국수’의 칼국수가 유명하다. 상당산성은 막걸리가 유명하다. 수암골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마을이 가까워지면서 ‘카인과 아벨 촬영지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을 앞에는 차 5~6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50호(24.10.1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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