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테슬라에 이어 현대자동차까지 잡아내며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파죽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테슬라와 22조 8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계약을 체결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국내 완성차 대기업인 현대차의 8나노 자율주행 칩 수주까지 따내며 글로벌 자동차 반도체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다.
17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현대자동차가 자체 개발을 추진 중인 자율주행용 칩을 8나노 공정으로 양산하는 계약을 수주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2028년까지 개발을 완료하고 2030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어, 삼성전자의 차량용 반도체 파이프라인이 중장기적으로 탄탄하게 구축됐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삼성전자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기술력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국내 반도체 생태계 강화와 공급망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전략적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율을 대폭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밝혀온 바 있다.
이번 수주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에게도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TSMC에 밀려 시장 점유율 확대에 어려움을 겪어온 삼성 파운드리가 차량용 반도체라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한 셈이다. 특히 자율주행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차량용 고성능 칩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테슬라와 현대차라는 양대 고객을 동시에 확보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와 차세대 고성능 인공지능 칩 공급 계약을 맺으며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 계약은 총 22조 7648억원 규모로, 삼성 파운드리 사업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2조원의 안정적인 매출이 보장되는 구조로, 파운드리 사업의 재무 안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는 이번 8나노 칩 개발을 통해 자율주행 기술의 핵심인 센서 데이터 처리, 실시간 판단, AI 기반 주행 알고리즘 구현 등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게 된다. 기존에는 엔비디아 같은 해외 업체의 솔루션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자체 설계한 칩으로 차별화된 자율주행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력이 단순한 일회성 거래가 아닌 장기적인 파트너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현대차가 2028년 개발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다양한 테스트 칩과 파일럿 생산이 이뤄질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차 간의 기술 협력이 더욱 긴밀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차량용 반도체 시장 공략을 위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이스라엘의 차량용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인 발렌스 세미컨덕터와도 협력을 발표했다. 발렌스는 자율주행과 전동화 기술에 필요한 고성능 반도체 설계 전문성을 보유한 기업으로, 삼성전자는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차량용 반도체 포트폴리오를 더욱 확장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급속한 보급으로 연평균 10% 이상의 고성장이 예상되는 황금시장이다. 시장조사업체들은 2030년까지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가 1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대의 전기 자율주행차에는 약 3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탑재되며, 특히 고성능 AI 칩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8나노 공정 기술은 성능과 전력 효율, 생산 비용 면에서 최적의 균형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더 미세한 공정으로 갈수록 성능은 향상되지만 제조 난이도와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8나노 공정은 자율주행에 필요한 충분한 연산 능력을 제공하면서도 양산성과 수율 면에서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현대차그룹은 반도체 내재화 전략의 일환으로 지난 2021년부터 자체 반도체 설계 조직을 강화해왔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계 센터를 설립하고 전문 인력을 대거 영입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했다. 이러한 준비 작업이 이번 삼성전자와의 협력으로 구체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는 이번 계약이 한국 반도체 생태계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와 반도체 제조사 간의 국내 협력 모델이 만들어지면서, 관련 부품 소재 기업들과 설계 전문업체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강국과 자동차 강국의 시너지가 본격화되는 신호탄”이라며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현재 3나노 공정의 양산 안정화에 집중하는 동시에, 2나노 이하 차세대 공정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회사 측은 “다양한 공정 기술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고객사의 요구에 맞는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며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 수주 소식에 증시도 화답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이틀 연속 상승세를 보였으며, 관련 부품 소재 기업들의 주가도 동반 상승했다. 투자자들은 파운드리 사업의 실적 개선 기대감과 함께 중장기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이번 협력은 단순히 두 기업 간의 거래를 넘어, 한국이 미래 자동차 산업의 핵심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로 빠르게 전환하는 가운데, 반도체 자체 설계와 생산 능력은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2030년 양산을 목표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삼성전자는 테슬라와 현대차라는 두 거대 고객을 기반으로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이를 시작으로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러브콜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