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식에게 돈을 보태 주는 부모가 바라는 것은 대단한 보답이 아닙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새집에 초대받아 따뜻한 밥 한 끼 함께 먹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 작은 바람마저 외면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부모의 서운함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올해 일흔하나가 된 김순덕 씨는 남편 장복동 씨와 함께 전북 전주의 오래된 2층 단독주택에서 45년째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평생 시청 앞에서 작은 도장 가게를 운영했고, 순덕 씨는 그 옆에서 열쇠를 깎고 손님을 맞으며 살림을 꾸렸습니다.
부부에게는 아들 하나가 있었습니다. 마흔둘의 아들 현수는 전주 시내의 한 중견 기업에 다니고, 며느리 유나는 초등학교 교사였습니다. 손자 둘을 키우는 아들 내외는 결혼 후 10년 동안 시내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며느리 유나는 살갑게 굴지는 않았지만 예의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명절이면 꼬박꼬박 음식을 해 왔고, 시부모 생일에는 빠짐없이 케이크를 사 들고 왔습니다. 다만 말수가 적고 속을 잘 드러내지 않아, 순덕 씨는 가끔 며느리의 마음을 알 수 없어 답답할 때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며느리는 친정과 사이가 유난히 각별했습니다. 주말이면 손자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는 날이 많았고, 친정어머니와는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를 한다고 했습니다. 순덕 씨는 그럴 때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손님처럼 다녀가고, 친정은 제집처럼 드나드는구나.'
작년 겨울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남편 복동 씨가 새벽에 2층 화장실에 가다 계단에서 미끄러져 엉덩이뼈에 금이 갔습니다. 한 달 넘게 입원했다 퇴원하던 날, 며느리는 병원에 와서 퇴원 수속을 도와준 뒤 "어머님, 그 집 계단은 너무 위험해요"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순덕 씨는 그 말이 왠지 '이제 늙었으니 조심하라'는 핀잔처럼 들려 서운했습니다.

올봄, 아들이 저녁을 먹으러 와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엄마, 아버지. 저희 이사 가려고요. 애들도 크고 집이 너무 좁아서요. 그런데 이사 비용이랑 중개 수수료, 새집에 필요한 것들까지 하니까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서..."
순덕 씨는 아들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남편을 쳐다봤습니다. 남편 복동 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얼마나 모자라냐." "한 700만 원 정도요. 유나가 처음엔 부모님께 손 벌리지 말자고 했는데, 제가 그냥 말씀드려 보겠다고 했어요."
다음 날 복동 씨는 도장 가게를 정리하며 모아 둔 돈에서 700만 원을 찾아 아들에게 건넸습니다. 노부부의 통장에서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손자들이 넓은 집에서 뛰어놀 수 있다면 아깝지 않았습니다.
며느리는 그날 밤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돈 허투루 쓰지 않을게요. 이사 끝나고 꼭 제대로 인사드릴게요." 평소보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았지만, 순덕 씨는 그저 며느리가 고마워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 뒤로 며느리는 이상하게 자주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어머님, 요즘 무릎은 어떠세요?", "아버님은 밤에 화장실 몇 번 가세요?", "어머님 좋아하시는 꽃이 뭐였죠?" 순덕 씨는 갑자기 왜 이런 걸 묻나 싶었지만, 며느리가 돈을 받고 나서 미안해서 그러는가 보다 하고 대충 대답했습니다.

한 달 뒤, 아들 내외는 이사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이사 날에도, 그다음 주에도 아들 내외는 새집 주소조차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순덕 씨가 "집은 어떠냐, 한번 가 봐야지" 하고 물으면 아들은 "아직 정리가 덜 돼서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순덕 씨는 동네 미용실에서 우연히 며느리의 사촌 시누이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보여 주며 말했습니다. "어머, 사모님. 지난주에 유나네 집들이 다녀왔어요. 집 정말 예쁘게 해 놨더라고요. 사모님도 다녀오셨죠?"
휴대전화 화면에는 며느리의 집들이 사진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환하게 웃는 며느리와 아들 옆으로 며느리의 친정 부모님, 친정 언니네 식구, 학교 동료 교사들까지 거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식탁에는 잡채와 갈비찜, 케이크가 놓여 있었습니다.
순덕 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아... 네... 그럼요." 겨우 대답하고 미용실을 나섰지만, 다리가 후들거려 버스 정류장 의자에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버스 창밖으로 지나가는 거리 풍경이 눈물에 번져 보였습니다. 순덕 씨의 머릿속에는 며느리가 친정 식구들과 웃으며 찍은 사진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700만 원을 받을 때는 "꼭 제대로 인사드리겠다"던 며느리였습니다. 그 인사가 고작 이것이었나 싶어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집에 돌아온 순덕 씨는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여보, 우리가 700만 원이나 보태 줬는데... 사돈은 부르고 우리만 안 불렀대요. 우리가 그렇게 부끄러운 시부모예요? 늙고 초라해서 사람들 앞에 내놓기 싫었던 거예요?"
평소 무뚝뚝한 남편도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복동 씨는 담배를 끊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날 밤 마당에 나가 한참을 서성였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돈 받아 갈 때는 고맙다고 해 놓고, 집들이에는 우리만 빼놔? 내가 현수 놈한테 전화해서 따져야겠소."
순덕 씨는 남편을 말렸습니다. "그러지 마요. 며느리 입장도 있겠지요. 괜히 전화했다가 우리만 속 좁은 시부모 되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순덕 씨는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며느리가 집들이에 시부모만 쏙 빼놓았다는 사실이 가슴에 대못처럼 박혔습니다.
그 뒤로 순덕 씨는 아들의 전화를 받아도 목소리가 퉁명스러워졌습니다. 아들이 "엄마, 무슨 일 있어요?" 하고 물어도 "아니다, 바쁘다" 하고 끊어 버렸습니다. 서운함은 날이 갈수록 쌓여 갔습니다. 순덕 씨는 혼자서 몇 번이나 '그 돈을 주지 말걸' 하고 되뇌었습니다.
동네 경로당에 가서도 순덕 씨는 말수가 줄었습니다. 친구들이 "아들네 새집은 가 봤어?" 하고 물으면 "아직 정리 중이래" 하고 얼버무렸습니다. 사돈은 다녀왔다는 그 집에 정작 돈을 보탠 시부모는 주소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차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늙은 시어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난 어느 토요일 아침, 아들이 집 앞으로 차를 몰고 왔습니다. "엄마, 아버지. 오늘은 저희 집에 같이 가요. 유나가 꼭 모시고 오래요." 순덕 씨는 가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남편이 "그래도 한번 가 보자"며 팔을 잡아끌었습니다.
차는 시내가 아니라 노부부의 집에서 겨우 10분 거리인 새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습니다. 순덕 씨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얘, 너희 회사도 학교도 시내인데 왜 이렇게 먼 데로 이사를 왔니?"
아들은 대답 대신 엘리베이터 없이 들어갈 수 있는 1층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현관에는 문턱이 없었고, 벽에는 손잡이가 길게 달려 있었습니다. 며느리 유나가 앞치마를 두른 채 달려 나와 시부모의 손을 잡았습니다.
순덕 씨는 며느리의 손을 엉거주춤 잡으면서도 얼굴을 펴지 못했습니다. 두 달 동안 쌓인 서운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사돈은 진작 다녀갔다며?' 하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삼켰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오셨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며느리가 안내한 방의 문에는 작은 나무 문패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 문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방'.

방 안에는 낮은 침대 두 개와 안마의자, 바닥에 미끄럼 방지 매트가 깔려 있었습니다. 욕실에는 앉아서 씻을 수 있는 의자와 안전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창가에는 순덕 씨가 평소 좋아하던 제라늄 화분이 놓여 있었습니다.
순덕 씨가 어리둥절해 서 있자 며느리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습니다.
"어머님, 작년 겨울에 아버님이 2층 계단에서 미끄러지셨잖아요. 어머님 무릎도 점점 안 좋아지시고요. 그 집 계단을 보면서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서 남편이랑 상의해서 부모님 댁 가까운 1층 집으로 이사했어요. 주말마다 오셔서 쉬시고, 나중에 힘드시면 언제든 들어오셔서 같이 사시라고요."
"주신 700만 원은 이 방 손잡이 달고, 문턱 없애고, 욕실 고치는 데 썼어요. 집들이 때는 공사가 덜 끝나서... 어설픈 방을 보여 드리기 싫었어요. 완성되면 제일 먼저 두 분만 따로 모시고 싶었거든요. 말씀을 못 드려서 많이 서운하셨죠? 죄송해요, 어머님."

순덕 씨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두 달 동안 며느리를 원망하며 밤마다 흘렸던 눈물이 한꺼번에 부끄러움으로 바뀌었습니다. 늙고 초라해서 부르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귀한 손님이라 가장 마지막에, 가장 완벽하게 모시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아가... 내가 너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아니... 이 못난 시어미가 네 마음도 모르고..." 순덕 씨는 며느리의 손을 붙잡고 아이처럼 울었습니다. 며느리도 시어머니를 끌어안고 함께 울었습니다.
남편 복동 씨는 아무 말 없이 방 안의 손잡이를 한참 동안 쓰다듬었습니다. 평생 남의 도장을 새기며 살아온 거친 손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짧게 말했습니다. "좋은 사람 데려왔구나."
그날 점심, 며느리는 직접 끓인 청국장과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고사리나물, 노릇하게 구운 조기를 상에 올렸습니다. 손자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양옆에 앉아 재잘거렸습니다. 순덕 씨는 숟가락을 들며 말했습니다. "이게 진짜 집들이구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집들이 밥이다."

윤정은의 소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에는 마음에 묻은 얼룩을 깨끗이 빨아 주는 세탁소가 나옵니다. 가족 사이의 서운함도 그렇습니다. 오해라는 얼룩은 혼자 끌어안고 있을수록 짙어지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거짓말처럼 씻겨 나갑니다.
서운한 마음이 들 때 바로 등을 돌리기보다 한 번만 더 기다려 보는 것, 그리고 한 번만 먼저 물어보는 것. 그 작은 여유가 평생 쌓아 온 가족의 정을 지켜 줍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자식의 마음을 판단하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날 저녁, 노부부는 며느리가 챙겨 준 반찬 통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10분이면 오가는 거리에 아들네가 산다는 사실이 이렇게 든든할 줄은 몰랐습니다. 순덕 씨는 2층 계단을 오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이 계단도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 창밖으로는 늦가을 노을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출처 :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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