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도’ 떠나 ‘고수익’으로… 필수의료 빨아들이는 ‘개원가 블랙홀’

권도경 기자 2024. 9. 2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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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된 A 씨는 지난해 응급실을 떠났다.

의료계는 매년 150명 안팎으로 배출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중 30%가량이 응급실 대신 개원가로 향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동안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비롯한 필수의료 전문의들은 응급·중증질환을 치료하는 특성상 다른 진료과보다는 개원을 많이 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응급의학과, 심장혈관흉부외과 등 필수의료 전문의들이 피부미용, 탈모, 가정의학 등 분야에서 병·의원을 여는 경우가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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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자원 기형적 배분‘부작용’
“개원총량제 등 제도보완 시급”
성형외과·성형외과·성형외과…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응급실을 떠나 미용 의료 분야 등에서 개원에 나서는 사례가 급증하는 가운데 2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역 사거리의 한 빌딩에 개인병원들이 몰려 있다. 윤성호 기자

6년 전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된 A 씨는 지난해 응급실을 떠났다. 며칠 간격으로 밤을 새우며 진료해도 보상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민·형사 소송 등 사법리스크에 항상 노출되는 근무환경도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현재 A 씨는 같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선배가 개원한 한 의원에서 피부미용 등을 시술하고 있다. 그는 “요 몇 년 새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응급실을 많이 떠났는데 상대적으로 연차가 낮은 전문의들일수록 개원가행을 많이 고민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2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개설한 의원 수는 2022년 12월 기준 149곳에서 2024년 7월 192곳으로 1년 7개월 만에 약 29% 증가했다. 의료계는 매년 150명 안팎으로 배출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중 30%가량이 응급실 대신 개원가로 향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0년간의 교육과정을 거쳐 배출된 필수의료 전문의들이 개원가로 대거 유출되면서 의료자원 배분이 왜곡되고 사회적 손실도 큰 만큼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비롯한 필수의료 전문의들은 응급·중증질환을 치료하는 특성상 다른 진료과보다는 개원을 많이 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응급의학과, 심장혈관흉부외과 등 필수의료 전문의들이 피부미용, 탈모, 가정의학 등 분야에서 병·의원을 여는 경우가 급증했다. 고난도·고위험에 시달리는 필수의료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서 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개원가행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필수의료 인력 부족현상과도 직결된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인천시의료원장)은 “응급실 의사의 이탈은 필수의료 붕괴와도 맞물려 있다”며 “응급실 의사들이 중증도에 따라 분류한 환자를 제때 회생시키려면 신경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흉부외과 등 배후 진료과가 받쳐줘야 하는데 지금은 배후 진료과 의사마저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필수의료 전문의 이탈을 막기 위한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법으로 거론되는 건 독일이 도입한 개원총량제다. 독일은 각 지역 개인병원 수를 진료과목별로 제한하고 이를 통해 필수의료 인력을 관리한다. 현재 독일은 인구 1000명당 수술 전문의가 한국(0.71명)보다 2배 이상으로 많은 1.47명에 달한다. 진료면허제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의사면허를 받아도 일정 기간 수련을 거쳐야 병원을 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미국, 일본, 영국 등 주요 국가에서 법제화됐다. 조 회장은 “지역사회에서 1차 의료기관인 병·의원이 제 역할을 한다면 경증환자가 응급실에 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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