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오직 메이저리그 하나만 바라보며 마이너리그 마운드를 지켜온 고우석이, 연장전 최대 위기 상황에서 퍼펙트 피칭으로 시즌 첫 승을 낚아챘다.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고우석의 꿈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국내 무대에서 세이브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그는 2025시즌을 앞두고 마이애미 말린스의 스프링캠프 초청을 받아 빅리그 도전의 첫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운명은 가혹했다. 캠프 도중 오른손 검지 골절이라는 뜻밖의 부상을 당한 것이다. 재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59로 건재함을 증명했지만, 그 직후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등 뒤에서 날아든 통보는 그가 품은 메이저리그의 꿈을 꺾지 못했다. 고우석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다시 마운드에 올랐고, 2025시즌을 마친 뒤에는 LG 트윈스로부터 복귀 제안을 받았다. 당시 LG는 마무리 자원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고우석은 팀의 간판 마무리로 활약했던 친정팀 출신이었다. 복귀 가능성을 점치는 시선이 적지 않았지만 그는 지난해 12월 디트로이트와 재계약을 택하며 단호히 선을 그었다. 꿈을 향한 집착이 아니라 자신의 공이 통한다는 확신이 만들어낸 결정이었다.
2026년 3월에는 WBC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무대를 밟았다. 3경기 3⅔이닝 1실점(비자책) 투구로 세이브왕 시절의 위용을 국제 무대에서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시즌 초반에는 트리플A에서 2경기 평균자책점 20.25의 처참한 부진으로 더블A 강등이라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고우석은 무너지지 않았다. 더블A에서 8경기 평균자책점 0.66이라는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하며 스스로 재승격의 기회를 만들어냈다.

국내 야구 팬들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고우석이 복귀를 거절한 배경이다. 유영찬의 부상으로 LG 불펜이 흔들리는 시점에, 세이브왕 경력의 친정팀 마무리 자원이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단순한 선택 그 이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고우석은 21일(한국시간) 오하이오주 톨레도 피프스서드필드에서 열린 트리플A 더블헤더 1차전, 인디애나폴리스 인디언스와의 맞대결에 구원 등판해 시즌 첫 승을 기록했다. 2-2 동점이 유지된 가운데 돌입한 연장 8회초는 더블헤더 규정상 무사 2루에서 시작하는 승부치기 상황이었다.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장면에서 고우석은 팀의 다섯 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선두타자 로니 시몬을 상대로는 풀카운트 접전 끝에 시속 150.4km 하이패스트볼을 꽂아 헛스윙 삼진을 뽑았다. 다음 타자 에스멀린 발데스는 3볼-1스트라이크의 불리한 볼카운트 속에서도 유격수 땅볼로 처리했다. 마지막 타일러 캘리한에게는 볼카운트 2볼-2스트라이크 이후 몸쪽으로 파고드는 127.2km 커브를 결정구로 꽂아 세 번째 아웃을 잡았다. 16구, 세 타자, 무실점. 완벽한 이닝이었다.

톨레도는 8회 말 타일러 젠트리의 끝내기 안타로 3-2 역전승을 거뒀고, 고우석은 자연스럽게 구원승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이날 호투로 트리플A 재승격 이후 4경기 연속 무실점을 이어갔고, 시즌 평균자책점은 3.24에서 2.89로 하락했다. 더블A 기록을 포함한 올 시즌 마이너리그 통합 평균자책점은 14경기 1승 1패 2세이브, 1.57이다.
연장 승부치기는 일반 이닝보다 심리적 압박이 훨씬 크다. 주자가 이미 나가 있는 상태에서 등판하는 투수는 자신이 만들지 않은 위기를 처리해야 하고, 단 하나의 실책이 곧바로 득점으로 이어진다. 그 상황에서 고우석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구위가 아니라 카운트 관리와 구종 선택에서의 냉정함이었다. 3볼-1스트라이크로 몰린 두 번째 타자를 유격수 땅볼로 잡아낸 장면이 특히 그렇다. 대부분의 투수는 볼카운트가 불리해지면 스트라이크를 욕심내다 장타를 허용하거나, 지나치게 소심해져 볼넷을 내준다. 고우석은 그 어느 쪽도 아닌 길을 선택했다. 유격수 방향 땅볼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결과에 가깝다.

한국 야구 팬들의 시선이 톨레도로 쏠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단순한 해외파 선수의 고군분투가 아니라, 확신과 선택의 서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고우석의 사례는 KBO 출신 투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잡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데이터를 제공한다. 과거 해외 진출 선수들의 상당수는 적응 실패나 부상으로 조기 귀국을 택했다. 고우석은 골절 부상과 방출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두 차례 겪고도 마이너리그 시스템 안에서 자신을 재건했다. 이는 실력의 문제이기 이전에 태도와 선택의 문제다.
마이너리그 통합 ERA 1.57은 콜업을 논하기에 충분한 숫자다. 디트로이트 불펜 상황과 로스터 구성이 변수로 남아 있지만, 성적 측면에서 고우석은 더 이상 기회를 기다리는 선수가 아니라 기회를 요구할 수 있는 수준에 와 있다.
두 번의 거절, 한 번의 강등, 수차례의 위기. 고우석은 그 모든 장면을 지나 지금 가장 좋은 공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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