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 패배’ 피한 尹, ‘金 여사 해법’ 촉구한 韓에 여전히 진땀

박성의 기자 2024. 10. 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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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지킨 거대 양당…한동훈과 이재명, ‘영남·호남 리더십’ 확인 
尹, 한숨 돌렸지만 ‘바닥 지지율’ ‘명태균 리스크’로 여전한 위기
선거 다음 날 ‘쇄신’ 11번 외친 韓…尹·韓 독대 두고 여권 내 전운 고조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반전도, 이변도 없었다. 10·16 재보궐선거에서 거대 양당은 텃밭을 사수했다. 국민의힘은 최대 격전지로 떠올랐던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와 인천 강화군수 선거에서 승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남 곡성군수와 영광군수 선거에서 같은 야당인 조국혁신당과 진보당의 거센 도전을 따돌리며 제1야당의 체면을 지켰다. 각자의 안방을 지키면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리더십 타격은 피하게 됐다.

지난 4·10 총선에서 108석만 건지는 참패 이후 2연패를 우려했던 윤석열 정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다. 여권이 가장 우려했던 '강서 재보궐 악몽'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였지만 가까스로 텃밭을 지켜내며 최소한의 체면치레를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용산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집권 세력이 재보선 패배를 모면했지만, 바닥권 지지율과 김건희 여사 리스크 등으로 여전히 국정 동력 상실 위기의 늪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필리핀·싱가포르 국빈 방문 및 한·아세안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10월11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환영 나온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김건희 특검법' 매직넘버 8은 안전할까

특히 '게이트급 의혹'으로 일파만파 사태가 커지고 있는 이른바 '명태균 폭로' 논란은 김건희 리스크와 겹쳐지며 여권을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정치 컨설턴트를 자임하는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폭로전에 여권이 연일 휘청거리고 있는 게 벌써 한 달째다. 무엇보다 명씨가 지난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때 윤석열 당시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여론조사를 조작했다는 의혹은 정치권의 블랙홀로 떠올랐다. 들춰진 의혹이 만에 하나라도 사실이면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중대 범죄행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용산의 설득력 없는 해명도 사태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실이 관련 의혹을 명쾌하게 반박·해명하지 못하면서 김 여사 문제는 국정 최대 리스크로 부상했다. 이에 연일 김 여사 문제를 정조준하고 있는 한동훈 대표와 윤 대통령 간 독대가 정국 향방의 기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대표는 이번 선거의 의미를 '여당과 정부가 변화하고 쇄신할 기회'로 해석하고 있다. 당장 한 대표는 선거 다음 날인 10월17일 공개적으로 김 여사와 관련된 대통령실 참모들의 인적 쇄신과 김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 의혹 규명 협조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 대표는 이날 공개 최고위에서 16분간 발언하며 '쇄신'이란 단어를 11차례나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용산을 향해 쇄신과 개혁을 강하게 요구할 경우 '윤·한 갈등' 재현과 당내 계파 갈등이 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이 10월17일 세 번째로 재발의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여권의 대응도 윤·한 관계의 변수로 꼽힌다. 10월4일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재표결에 부쳐진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여당 내에서 최소 4표의 이탈표가 나왔는데, 만약 윤·한 갈등이 다시금 발발한다면 법안 재표결 통과를 위해 필요한 여권의 이탈표 매직넘버인 '8표'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10·16 재보궐선거는 군수·구청장 4명을 뽑는 '미니 선거'였다. 그럼에도 여야는 총선에 버금갈 만큼 사력을 다했다. 이번 재보궐선거가 총선 이후 민심을 가늠해볼 첫 시험대로 인식되면서다. 여기에 양당의 텃밭을 위협하는 변수가 등장하며 선거 열기가 더해졌다. 민주당 안방인 전남 영광과 곡성에는 조국혁신당이 '대안 정당'을 외치며 대항마로 나섰다. 국민의힘이 강세인 부산 금정은 야권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여론조사가 박빙을 이뤘다.

10·16 재보궐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10월10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장세일 영광군수 후보가 전남 영광군 터미널사거리에서 차량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패장은 없었다…서로 지킬 곳 지켜

양당 모두 악재까지 떠안았다. 국민의힘은 선거운동 기간 증폭된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으로 애를 먹었다. 김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명태균씨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자 논란이 부산 민심에 영향을 미칠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읽혔다. 민주당은 선거 막판 김영배 의원의 설화가 논란을 불렀다. 김 의원은 이번 선거가 전임 부산 금정구청장이 뇌출혈로 숨지면서 치러지게 됐는데도 "국민의힘이 원인을 제공한 혈세 낭비"라고 언급했다가 여권으로부터 "패륜적 언행"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국정감사라는 대형 이벤트가 있는데도 각 당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가 자당 후보를 돕기 위해 선거운동 현장에 직접 뛰어들며 총력전을 펼쳤다. 이재명 대표가 낮은 국정 지지율을 지적하며 "2차 정권 심판" "선거 치료" 등의 구호로 민주당 후보를 지원하자, 한동훈 대표는 "이번 재보선은 지역민들 삶을 누가 개선시킬 것이냐 정하는 것"이라며 '정권 심판론'에 '민생'으로 맞불을 놨다. 특히 한 대표는 김 여사 논란을 의식한 듯 대통령실 내 '한남동 라인'(김 여사 측근이라 의심받는 비선 인사들) 정리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개표 결과 재보궐선거의 완벽한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양당 모두 안방을 사수하는 데 성공했고, 상대의 텃밭을 탈환하는 데는 실패했다. 민주당은 관심을 모았던 '호남 대전'에서 혁신당에 압승을 거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남 곡성군은 조상래 민주당 후보가 55.2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도전자로 나선 박웅두 조국혁신당 후보는 35.85%의 득표율로 고배를 마셨다. 전남 영광군에서는 장세일 민주당 후보가 41.08%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2위는 이석하 진보당 후보(30.72%)로, 반전을 노렸던 장현 조국혁신당 후보(26.56%)는 3위에 그쳤다.

국민의힘도 강세 지역이었던 인천 강화군과 부산 금정구를 모두 지켜냈다. 인천 강화군에서는 박용철 국민의힘 후보가 50.97%의 득표율로 한연희 민주당 후보(42.12%)를 따돌리며 당선증을 손에 쥐었다. 최대 격전지로 부상했던 부산 금정구도 개표 결과 예상외로 '싱거운 승부'가 펼쳐졌다. 윤일현 국민의힘 후보(61.03%)가 김경지 민주당 후보(38.96%)를 압도적 격차로 따돌리며 압승을 거뒀다.

'집토끼' 유권자들의 강한 지지, '산토끼' 유권자들의 여전한 반감을 확인한 거대 양당 대표는 선거 이후 모두 "민심을 받들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동훈 대표는 개표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든 10월16일 오후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 뜻대로 정부·여당의 변화와 쇄신을 이끌겠다"며 "어려운 상황에서 주신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표는 선거 결과가 나온 뒤 페이스북에 "민심을 받들어 정권의 퇴행을 막고 국민의 삶을 지키는 데 더욱 앞장서겠다"고 적었다.

한동훈, 독대 테이블에 '김 여사' 올린다

여당이 전통적인 보수 강세 지역인 금정(구청장)·강화(군수)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용산은 크게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다. 최근 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동시에 침체된 가운데, 만약 보수 텃밭 민심이 돌아섰다면 '조기 레임덕'(권력 누수)을 넘어 '데드덕'(권력 공백)에 대한 우려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부산에서 승리하더라도 '살얼음판 승부'가 펼쳐졌다면 정권 위기론이 확산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우려됐던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했다.

그러나 여권 내에선 미묘한 긴장감이 읽힌다. 일각에선 한동훈 대표와 이재명 대표가 무승부를 거둔 이번 재보궐선거가 윤 대통령에겐 그리 달갑지 않은 상황이란 해석이 나온다. 우선 용산으로선 거야를 이끄는 이재명 대표의 존재감이 더 커졌다는 게 걸림돌이다. 호남에서 혁신당 후보가 승리하거나 민주당 후보와 박빙의 대결을 펼쳤다면, '이재명 리더십'에는 타격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호남 민심이 조국 대표 대신 이재명 대표를 택하면서, 이 대표는 명실상부한 야권의 제1 대선주자 입지를 재확인했다.

한 대표가 부산에서 승전보를 올린 것 역시 윤 대통령에겐 딜레마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만약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금정·강화 중 1곳이라도 패했다면 '한동훈 위기론'이 확산할 수밖에 없었고, 그를 견제해온 친윤계(親윤석열)가 득세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 대표는 당권을 잡은 후 치른 첫 시험에서 준수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친윤계가 아닌 친한계(親한동훈) 목소리에 더 힘이 실리게 된 셈이다.

한 대표가 선거 후 일성으로 '변화와 쇄신'의 대상을 당뿐만이 아닌 정부라고 못 박은 점도 용산으로선 불편한 대목이다. 이번 재보궐선거 기간에 한 대표는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와 관련해 '한남동 라인' 등 대대적인 인적 청산과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부 기조 변화를 요구했다. 일각에서는 한 대표가 선거 기간 동안 정무적으로 산토끼를 잡기 위해 일시적으로 이런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주장도 내놨지만, 한 대표는 선거 다음 날 바로 김 여사의 외부 활동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런 점을 감안해, 여권 핵심 관계자들은 김 여사와 한 대표, 윤 대통령과 한 대표 사이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분석을 제기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정부와 여당은 '오월동주'(적대 관계에 있으나 뭉쳐야 하는 관계)가 아닌 '일심동체'"라면서도 "대통령과 당대표가 더 자주 소통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그 둘 사이를 가로막는 누군가, '한동훈은 적'이라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민심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다음 주 초 윤 대통령과 독대를 앞둔 가운데, 한 대표는 김 여사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집중적으로 언급할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윤 대통령이 한 대표의 요구를 전격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만약 '윤·한 독대'가 빈손으로 끝날 경우 당정 갈등뿐 아니라 당내 계파 갈등도 심화할 전망이다. 10월16일 선거에서 반전도, 이변도 없게 만든 당정이 독대에서는 반전과 이변의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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