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절차와 제도 경멸…극우정당이 더 위험하다”

고정애 2024. 10. 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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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정치학자 도나텔라 델라 포르타가 보는 극단주의 정당
도나텔라 델라 포르타 교수는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극우 정당의 부상에 대해 “ 아직 정점에 이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진 델라 포르타]
“유럽연합(EU) 정치에선 광대들에게 천장이 존재해, 이들이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얻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분석한 게 2021년이다. ‘광대’는 극우 정당을 지칭한다. 빠르게 부상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자기 무능으로 무너진다고 봤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렸다. 정치적 풍경은 예상과 다르다. 최근 오스트리아에서 극우 정당이 1당을 차지하는 등, EU 국가 대부분에서 극우 정당이 확장하고 있다. 연정 형태로 집권한 곳도 적지 않다. 〈그래픽 참조〉

세계적 정치학자인 도나텔라 델라 포르타 피렌체 고등사범학교 정치사회대학 창립학장은 이런 흐름에 대해 “현재 진행형인 도전이고 아직 정점에 이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내년 열리는 세계정치학회 서울총회 기조연설자로 참여하는 그와 최근 e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극좌 정당보다 극우 정당이 위험하다고 보는데,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극우 강세는 진행형, 아직 정점 도달 안 해

Q : EU에서 극단주의 정당들이 강세다.
A : “정치학자들이 예상했던 것과 달리, 유권자들이 정치스펙트럼의 중앙으로 자연스럽게 수렴하는 경향은 없다. 유럽에서 중도우파 정당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사이, 새로운 극우 정당이 등장하거나 기존 정당들이 급진화됐다. 이들 정당은 외국인 혐오적 프레임과 반이민주의적 시각을 전달하곤 한다. 서구의 백인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유색인종으로 대체된다는 음모론적 시각으로 난민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이들의 영향력은 의제 설정 능력에서도 드러난다. 중도우파만 아니라 중도좌파 정당들도 지지자를 되찾기 위해 반이민 입장을 채택하고 있다. 극우 정당이 집권하지 않더라도 이들의 부상으로 외국인 혐오적 서사와 반이민 정책, 더 나아가 인종차별 내러티브가 확산하고 있다.”

Q : 프랑스에선 좌파 블록 내에서 극좌파가 힘을 얻었다.
A : “중도좌파 정당들이 노동계급의 쇠퇴를 극복하려고 중산층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며 오른쪽으로 이동, 정치스펙트럼 좌측에 공백이 생겼다.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하는 사회운동이 촉발되었고 이런 시위를 직접 대변하지 않았지만, 좌파의 새로운 정당들이 이런 주장을 지지하면서 중도좌파에 실망한 유권자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았다. 주류 정당에 실망해 투표하지 않던 유권자의 일부, 특히 연속적 위기에서 성장한 젊은 유권자들에게도 호소력을 가졌다. 프랑스의 장 뤽 멜랑숑이 그 결과다.”(※실제 얼마전 프랑스 총선에서 멜랑숑이 이끈 좌파연합이 182석(전체 577석)으로 1위를 차지했다.)

Q : 극단주의 정당들의 위세가 이어질까, 아니면 지금이 정점일까.
A : “나는 유럽에서 극좌파가 위험하다고 보진 않는다. 사회적 권리를 옹호할 뿐, 정치적 또는 시민적 권리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극좌파는 스페인·포르투갈·그리스 등에서 정부에 참여했거나 하고 있다. 극우 정당은 다르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정책을 펼 뿐 아니라 사회통합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는 인종차별적 메시지를 낸다. 도널드 트럼프나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를 예로 들자면, 민주주의에 대한 위험은 자유 언론, 독립적인 사법부, 활발한 시민 사회 등 민주적 절차와 제도를 경멸하는 데서 나온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비자유주의를 조장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Q : 하지만 극우로 분류되는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는 우려했던 것보다 집권 후 안정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극우 정당들이 ‘유독하다(toxic)’는 건 주류의 시각 아닌가.
A : “나는 EU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 극우 정당의 일관된 특징이라고 보진 않는다. 이들은 EU의 경제정책에 만족하고 있다. 유럽 국경을 강화해 이민을 막아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EU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극우 정당들은 EU와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할 거다. 내가 멜로니의 정당을 극우로 분류하는 건, 시민적 권리와 사회적 권리를 축소하려 해서다. 반이민·인종차별적 담론 외에도 강력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지지하며 사회적 보호조치를 삭감하고 자유시장을 강조한다. 오르반의 비자유적 민주주의 모델을 추종하면서 언론과 사법부 등 민주적 책임기관을 공격하고 있다. 시위할 권리에 대한 매우 가혹한 조치가 취해졌다.”

Q : 극우 정당의 부상이 세계화로 인한 양극화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A : “세계화는 여러 의미를 갖는다. 사회과학에선 글로벌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코스모폴리탄적 시각을 창출하는 데 중요하다고 분석한다. 극우파는 이에 맞서 국수주의와 배타주의를 발전시키고 있다. 여러 극우 지도자들이 차별받는 집단에 대한 공포와 적대감을 높이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 세계화는 국가와 시민이 시민권을 구현하고 시장이 만들어낸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개입하는 걸 포기하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는 불안과 좌절을 야기하며 주류 정당의 위기, 더 나아가 서구 민주주의의 정당성 위기로 즉각 연결된다.”

Q : 민주주의가 성숙한 국가들에서 외려 민주주의를 걱정하게 된 건 의외다.
A : “과거 정당은 시민들에게 참여의 통로를 제공, 대의기관 내에 시민들의 요구를 중재하고 민주적 책임성을 보장했다(※선거를 통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미). 대중 정당의 쇠퇴로 이 메커니즘이 약화했다. 또한 대의민주주의에서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이 다수결이긴 하지만, 토론, 아이디어 교환, 집단정체성 성장을 통해 민주주의가 성숙해왔다는 걸 상기하게 된다. 이른바 숙의민주주의다.”

Q : 현재 정치를 이끄는 에너지는 숙의보단 분노·두려움이 더 큰 것 같다.
A : “‘유동적 근대성’(liquid modernity)에 의한 분노와 두려움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분노와 두려움이 집단적 저항을 일으키고 가장 소외된 집단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유동적 근대성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제기한 개념으로, 현대사회는 과거의 견고했던 사회적 원리들이 녹아버려 불확실하고 예측이 어려우며 위험한 시대이고 개인도 다른 사람과 유대 관계를 맺기도, 일관된 정체성을 확립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델라 포르타 교수가 본 분노와 두려움이 선용된 사례는 반긴축 시위나 페미니스트 운동과 환경 운동, 가자 전쟁 반대 시위 같은 것들이다. 프랑스 총선에서 극우 정당의 승리가 예상되자 유권자들이 나서 좌절시킨 것도 사례로 들었다. “반대로 선동주의 정치가에 의해 멀쩡한 사람도 쉽게 동원되곤 한다”고 했더니 그는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합리적인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에게 한국 상황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팬덤을 기반으로 한 지도자들이 정치 지형을 결정하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며 상대에 대한 극단적 증오가 일상화되는 현상을 두고서다.

억압보단 급진화 막을 공간·정책 필요

Q : 이 또한 포퓰리즘의 하나로 볼 수 있나.
A : “그렇다. ‘셀러브리티(celebrity) 정치’ 모델을 기반으로 지도자들이 대규모 추종자를 구축하는 건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현상이다. 트럼프나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매우 특정한 형태의 포퓰리즘을 구축했다. 포퓰리즘은 종종 성공하기도 하지만, 매우 취약한 형태의 권력이다.”

Q : 왜 취약한가.
A : “매우 개인화된 형태의 권력으로, 매스미디어 전략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구조화된 조직 형태의 구축 없이는 공고히 하기 어렵다. 이런 조직 형태는 지도자들의 자아도취적 성격과 충돌하게 된다. 충성스러운 친구들로 자신을 둘러싸지만 이내 이들이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는 극우 정당의 위협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선 ‘급진화를 막을 공간과 정책’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억압은 거의 효과가 없고 오히려 중요한 민주적 가치를 부정하고 신뢰를 떨어뜨리고 시민들을 소외시킬 위험이 있다. 나는 현재로선 극좌로부터 위험을 보지 못하며 외려 이들은 요구와 행동 방식도 완화했다. 그러나 극우에 대해선 인종차별과 ‘타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에 반대함으로써 민주적 가치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범죄가 발생하면 사법부가 개입해야 하지만 지식을 증진하고 극우의 표적이 되는 집단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당은 극우와 동맹을 맺는 것뿐만 아니라 극우 담론을 모방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2025 세계정치학회(IPSA) 서울총회= IPSA는 세계 정치학자들의 대표적 학술대회로, 서울에서 열리는 건 1997년에 이어 28년 만이다. 정치적 양극화와 포퓰리즘, 미·중 경쟁과 전쟁의 위험, 기후변화와 팬데믹 등 주요 글로벌 현안을 다룬다.

도나텔라 델라 포르타. 피렌체에 있는 고등사범학교 정치학 교수이자 사회운동연구소 소장. 유럽·중동·아시아·라틴아메리카의 민주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참여를 연구한 ERC(유럽연구위원회)의 주요 프로젝트인 ‘민주주의를 위한 동원’을 이끌었다. 2011년 정치사회학 분야의 탁월한 업적에 수여되는 마테이 도건(Mattei Dogan) 상에 이어 2021년 자연과학·공학·인문 사회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업적을 이룬 학자에게 주는 훔볼트 연구상을 받았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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