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뇌과학] 자면서 짧게 뒤척일 때 기억이 정리된다

어렸을 때부터 머리를 땅에 두기만 하면 잠을 잘 자곤 했기에, 수면 부족으로 고생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 40대에 접어들자 느껴진 큰 변화는 매우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누워도 잠이 들지 않고 머릿속에 여러 상념이 오가기 일쑤였다. 잠을 자더라도 깊게 자지 못했다는 느낌이 많아지고 한두번은 꼭 깨어서 잠에 다시 못 든 날들도 많아졌다. 잠을 자는 것이 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투를 벌이는 것과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이런 밤이 지나간 다음 날은 아침부터 몸과 머리가 무겁고 생각은 구름이 가득 낀 듯 뿌옇기 마련이다.
늦게 자고 자주 깨는 바람에 수면의 ‘양’을 채우지 못한 것 아닌가 싶었다. 연구라는 직업은 경력이 쌓여갈수록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더욱 많은 생각과 고민을 요구하고 있었으므로, 내 몸에는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와 체력적 부담이 늘어만 가는 듯 했다. 그래서 일부러 일찍 잠자리에 들어 수면시간을 늘려보려 노력하지만, 잠이 들지 않아 뒤척이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운이 좋아 일찍 잠들어 오래 잠이 들었다 하더라도 항상 다음 날의 활력이 보장되지는 않았다. 성인 남성의 평균 권장 수면시간인 7-8시간을 채웠다 하지만 3-4시간 잔 날과 비교하면 다음 날 아침은 다를바가 없었던 적이 많다.
내가 제대로 자고 있는 것이 맞을까. 그런 궁금증이 커지던 차에, 몇 년전 스마트워치를 활용해 수면 시간 및 수면 주기를 대략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면 상태에는 각성 상태와 달리 뇌에서 서로 다른 파형의 활성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데, 그 차이에 따라 크게 ‘비렘 수면(non-REM sleep)’이라 불리는 깊은 수면, 그리고 ‘렘 수면(REM sleep)’이라 불리는 얕은 수면의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
렘수면은 몸은 마비상태이지만 뇌활성은 활발하며 급속한 안구운동(rapid eye movement; REM)을 보이는 특징을 보인다. 비렘수면은 반대로 뇌활성이 매우 낮고 대신 몸은 마비상태가 아닌 가끔 뒤척거리는 상태다. 비렘 수면과 렘수면이 반복되는 것을 ‘수면 주기’라 부르며, 이것이 3-4회 반복된 뒤에 깨어나면 ‘잘 잤다’라고 느끼게 된다.

스마트워치는 심박수, 호흡, 움직임, 혈류량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최소한 얕은 잠과 깊은 잠을 얼마나 취했는가, 그리고 그들의 주기적 변화를 모니터링 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의 상태는 전날 밤 수면 주기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수면의 ‘양’이 적더라도 수면의 ‘질’, 수면 주기가 적절히 지켜진 다음 날은 훨씬 개운하게 깨어나고 몸 상태도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수면 주기가 적절히 지켜지면 당연히 그에 비례해 깊은 잠의 시간이 길어진다. 깊은 잠에 해당하는 비렘수면은 몸의 휴식기일 뿐만 아니라 전날 학습한 정보를 기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다음 날 최적의 몸과 머리 상태를 만드는 데 중요하다.
비렘수면 동안에는 느린 파형의 뇌파와 ‘수면방추(sleep spindle)’라 불리는 약간 빠른 파형의 뇌파가 반복되는 특징이 나타난다. 느린 파형의 뇌파가 나타나는 시간 동안은 뇌활성이 낮고 느리게 반복되는데, 이때 불필요한 정보들이 사라지고 중요한 정보들만 남기는 ‘정보의 정리’가 이루어진다고 생각된다.
또한 느린 파형의 뇌파가 반복되는 중간에 수면방추 및 ‘미세각성(micro-arousal)’이라는 흥미로운 현상이 발생한다. 미세각성은 뇌파가 빨라지면서 깊은 잠을 자다가 몸을 뒤척이는 상태가 짧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이러한 수면방추 활성과 미세각성은 수면의 방해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수면의 질을 높이고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버드 의대 제프리 엘렌보겐 교수 연구팀이 2010년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평소에 잠을 자는 동안 수면방추가 자주 관찰되었던 사람들이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잠을 잘 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대로 노인이나 기억력 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서는 수면방추가 덜 관찰된다고 한다. 이처럼 미세각성 및 수면방추가 수면과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들이 깊은 잠을 자는 동안 발생되고 유지되는지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편이었다.
최근 로체스터대학 마이켄 니더가드 교수 연구팀은 뇌 속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이라 불리는 신경전달물질의 주기적 농도 변화가 미세각성 상태 및 수면방추 발생을 직접 조절한다고 밝히고 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노르에피네프린은 중뇌의 일부인 청반(locus coeruleus; LC)에서 분비되며, 각성효과가 있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따라서 각성 기간 동안 뇌 속 농도가 가장 높지만 수면에 접어들면 점차 감소하는 특징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반복되는 수면 주기 중 가장 깊은 잠에 해당하는 비렘수면 기간 동안의 노르에피네프린 농도는 상대적으로 얕은 잠에 해당하는 렘수면보다 오히려 높다는 것이다. 이처럼 각성작용이 있는 노르에피네프린이 깊은 잠을 자는 동안 농도가 증가하는 이유와 무슨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다.
니더가드 교수 연구팀은 살아있는 생쥐의 수면 주기 동안 노르에피네프린을 분비하는 LC의 활성도와 그에 따른 노르에피네프린 분비량이 수면 주기처럼 특정 패턴을 갖고 증감하는 것을 발견했다(위 그림). 비렘수면 기간 동안 노르에피네프린의 농도는 미세하지만 규칙적인 주기(약 30초)를 갖는 증감 패턴을 보인다. 비렘수면 동안 느린 파형의 뇌활성이 지속되다가 노르에피네프린 농도가 감소함에 따라 비교적 높은 활성인 수면방추가 발생하고, 노르에피네프린 농도가 점차 반등하면 미세각성이 유도된다.
이처럼 비렘수면 동안 노르에피네프린은 규칙적으로 증감함에 따라 깊은 잠과 미세각성의 주기적 반복을 유도하게 되는데, 노르에피네프린 농도 변화가 급격히 커지게 되면 렘수면으로 접어들게 되고, 어느 순간 급격히 높아져서 유지가 되면 각성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아래 그림)

그렇다면 인위적으로 노르에피네프린의 증감 정도를 변화시키면 수면 상태나 수면방추 발생량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광유전학적 기법을 활용해 노르에피네프린 분비 신경세포들의 활성을 인위적으로 조절했다. 비렘수면 동안 낮았던 노르에피네프린 증감 진폭을 일부러 높이면 비렘수면은 수면방추 빈도가 증가하다가 렘수면으로 전환되었지만, 비렘수면 동안 노르에피네프린 농도의 주기적 증감 진폭을 매우 낮추면 수면방추 빈도는 현저히 감소한 상태로 비렘수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뇌 속 노르에피네프린 농도의 주기적 변화 크기에 따라 비렘수면과 렘수면의 반복 주기가 결정되며, 비렘수면 중간에 발생하는 수면방추가 이를 통해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위적으로 노르에피네프린 증감 진폭을 변화시켜서 유도된 수면 상태나 수면방추는 다음 날 기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생쥐를 대상으로 두 가지 서로 다른 물체를 학습하게 하고 다음 날 전 날 학습한 물체들을 기억하게 하는 과제(novel object recognition test)를 수행하면 수면에 의한 기억 형성 변화를 측정할 수 있다.
니더가드 교수 연구팀이 발견한 바에 따르면, 노르에피네프린 증감 진폭을 증가시켜 수면방추가 많아지게 된 생쥐는 전 날 학습한 물체들에 대한 기억이 증가했다. 하지만 노르에피네프린 증감 진폭을 감소시켜 수면방추가 낮아지게 처리된 생쥐는 기억력이 감소한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는 비렘수면 동안 발생하는 수면방추들이 전 날 학습한 정보를 기억장소에 저장하는데 필수적인 뇌활성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준 것이다. 그 과정에서 노르에피네프린 주기적 농도 변화가 수면방추 발생 조절을 통해 전날 학습한 정보를 뇌속에 저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게 깊은 잠을 자는 동안 미세하게 뒤척이는 수면 패턴이 사실 정상적인 수면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정보를 장기 기억으로 만드는 과정임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수면방추는 어떻게 기억을 촉진한다는 것일까.

기억은 학습 정보가 뇌로 유입될 때 활성화되는 신경세포 및 신경세포들간 연결도가 선택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일컫는 ‘장기시냅스강화’ 과정을 통해 저장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4년 미국 애리조나대 브루스 맥노튼 연구팀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동물의 해마에서는 각성 시 학습한 정보에 해당하는 신경활성이 수면 시간동안 재생(replay)된다고 한다.
수면방추와 같은 활발한 뇌활성이 발생할 때에는 각성 상태와 유사하게 뇌의 혈류량과 산소 소모량이 증가하며 장기시냅스 강화 및 장기기억 형성에 필수적인 단백질 합성도 증가하므로, 비렘수면 동안의 수면방추 활성들은 깨어 있을 때 학습한 정보에 해당하는 신경활성들이 재생되어 ‘자동학습’이 되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 수면이 방해 받아 다음 날 기억력에 영향을 받는 것도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수면 주기 조절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에 의한 것일까. 그럴 가능성이 있다. 스트레스 등과 같은 자극은 교감신경계를 활성화 시켜서 노르에피네프린의 과도한 분비를 촉진할 수 있다. 니더가드 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적용해본다면, 각성 시 과하게 분비되어 체내에 여전히 남아 있는 노르에피네프린들은 깊은 잠에 드는 것을 지체할 뿐만 아니라 노르에피네프린 농도의 진폭을 변화시켜 수면 주기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노르에피네프린의 체내 농도가 증가하는 한편 노르에피네프린 수용체의 민감도가 떨어진다고 하므로,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수면주기가 무너지고 깊은 잠 대신 얕은 잠이 늘거나 자주 깨어나는 것이 노화에 따른 뇌 속 노르에피네프린 농도 진폭 변화 감소에 의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늘어난 불면과 얕은 수면은 아마도 일상 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잠을 자기 전까지 아직 해소되지 않아 생겨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기 전에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해보기로 한다.

※참고자료
-Reactivation of Hippocampal Ensemble Memories During Sleep (MATTHEW A. WILSON AND BRUCE L. MCNAUGHTON, SCIENCE 5172, 1994.) https://doi.org/10.1126/science.8036517
-Spontaneous brain rhythms predict sleep stability in the face of noise, Current Biology, 2010, https://doi.org/10.1016/j.cub.2010.06.032
-Memory-enhancing properties of sleep depend on the oscillatory amplitude of norepinephrine, Nature Neuroscience, 2022 https://doi.org/10.1038/s41593-022-01102-9
※필자소개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신경혈관단위체 연구그룹에서 근무 중이며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인지과학전공 겸임교수다. 현재 생쥐 모델을 활용해 학습과 기억을 조절하는 세포간 상호작용의 분자 기전을 연구하고 있으며, 뇌 속 기억 형성 및 변화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는 저술 작업도 같이하고 있다.
[박형주 한국뇌연구원 한국뇌연구원 신경혈관단위체 연구그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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