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떠난 지 100일, 장례도 못 치른 이유 [취재후]
알루미늄 전극 제조 공장에 나가는 젊은이가 어린 신부와 함께 이웃에 세를 들어 살았다. 그는 열처리 탱크가 터질 때 현장에 있었다. 젊은이의 몸은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렸다.
…
우리는 사랑이 없는 세계에서 살았다. 배운 사람들이 우리를 괴롭혔다. 그들은 책상 앞에 앉아 싼 임금으로 기계를 돌릴 방법만 생각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1978
1978년 출간된 '난쏘공'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도시 하층민의 고통을 담아낸 소설입니다. 46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에 '난장이'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2024년 6월 24일, 경기도 화성의 '아리셀' 공장에서 리튬 전지가 폭발했습니다.
23명이 숨졌는데, 18명은 타국에서 온 이주노동자였습니다.
시신 훼손이 심해 신원 확인을 마치는 데만 78시간이 걸렸습니다.
고용노동부와 경기남부경찰청의 수사 결과, 불법 파견받은 신규 인력 53명이 충분한 안전교육 없이 위험한 공정에 투입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 결과 불량률이 3배 가까이 급증했지만, 방위사업청 납기를 맞추기 위해 평소 생산량 2배 가까운 수준으로 공장이 돌아갔습니다.
■ 장례도 치르지 못한 사연
총체적 부실이 원인이 된 '인재', 그로부터 100일이 지났습니다.
아리셀과 합의를 마친 유족들도 있지만, 일부 가족들은 여전히 거리에 나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리셀 참사와 같은 중대 재해를 막을 재발방지책을 내놓으라고,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뒤에야 적절한 배상 문제를 논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고 강순복 씨 남편 허헌우 씨도 아내의 장례를 미뤄가며 100일째 거리로 나왔습니다.
■ "국회마저 외면"한 아리셀 참사
유족들은 "아리셀도, 아리셀의 모기업인 에스코넥도, 고용노동부도 우리를 외면했다"고 절규했습니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참사였습니다.
하지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지난달 30일 전체회의에서 의결한 국정감사 증인·참고인 35명 가운데 아리셀 관계자는 없었습니다.
난장이와 같은 모습이었을 지도 모를 아리셀 참사 유족의 하루를 KBS 취재진이 따라가 봤습니다.
영상편집: 김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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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기자 (212@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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