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7년 만에 포효…정규리그 1위 확정
이범호 기아(KIA) 타이거즈 감독은 아침에 눈을 떠 휴대 전화를 확인했다. 시간은 정확히 오전 9시17분이었다. ‘오늘 뭔가가 이뤄지지 않을까’ 싶었다. 이날은 9월17일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전조였을까.
기아는 이날 인천 에스에스지(SSG) 랜더스와 방문 경기에서 0-2로 졌다. 하지만 이에 앞서 2위 삼성 라이온즈가 두산 베어스에 4-8로 패하면서 매직 넘버 ‘1’이 지워졌고 2024 KBO리그 정규리그 우승이 확정됐다. 남은 경기에서 삼성(75승60패2무)이 모두 승리해도 기아(83승52패2무)를 넘어설 수 없다.
기아의 정규리그 우승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기아는 2017년 정규리그 1위에 오른 데 이어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를 물리치고 타이거즈 구단 창단 11번째 우승을 거머쥔 바 있다. ‘KIA 타이거즈’로는 2009년, 2017년에 이어 3번째 정규리그 정상이다.
기아는 시즌 전 엄청난 풍파를 겪었다. 팀이 스프링캠프로 떠나기 직전인 1월 말, 후원 업체로부터 억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김종국 감독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개막 두 달을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사령탑 없이 시즌 준비를 시작한 기아는 2월 중순 이범호 타격코치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기아 수뇌부는 어수선한 선수단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해서는 내부 승진이 가장 나은 선택으로 봤다. 1981년생인 이범호 감독은 1980년대생으로 최초로 프로야구 지휘봉을 잡았다. 이 감독은 귀를 열고 선수단과 소통하면서 팀을 차근차근 안정화시켰다. 그리고, 초보 사령탑으로 당당히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타이거즈에서 뛴 선수 출신(2011~2019년)으로 기아를 정규리그 1위로 이끈 최초의 사령탑도 됐다.
기아는 4월9일 최초로 1위로 발돋움했고, 6월 한때 삼성에 잠깐 1위를 내줬으나 이후에는 계속 1위 자리를 고수했다. 1위 자리를 위협받을 때면 오히려 더 응집력을 발휘해서 꿋꿋하게 1위를 수성했다.
기아의 정규리그 우승은 선발진이 붕괴한 상황에서 얻은 결과물이다. 시즌 초 제임스 네일, 윌 크로우, 양현종, 이의리, 윤영철로 선발진을 꾸렸는데 이들 중 크로우, 이의리, 윤영철이 전열에서 이탈했다. 에이스 역할을 하던 네일 또한 8월 말 엔씨(NC) 다이노스와 경기 도중 맷 데이비슨의 타구에 맞아 턱 관절이 골절돼 시즌 아웃됐다. 그나마 국내 투수진 중 맏형 격인 양현종이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주면서 리그 최다 탈삼진 기록 등을 달성했다.
선발진이 흔들렸지만 중간계투진은 튼튼했다. 전상현, 곽도규, 장현식, 최지민 등이 시즌 10홀드 이상을 거두면서 허리에서 틀어막았다. 마무리 정해영 또한 잠깐 부상으로 빠져 있기도 했으나 팀의 30세이브(2승3패)를 책임지면서 뒷문을 잠갔다. 당당히 ‘호랑이 소방수’로 자리 잡았다.
타선에서는 프로 3년차 김도영이 만개했다. 김도영은 4월 월간 10홈런-10도루 기록을 최초로 달성하는 등 팀이 시즌 초반 선두권으로 도약하는 데 발판을 마련했다. 스무살의 나이에 최연소 30홈런-30도루를 기록하기도 했다. 김도영은 박재홍, 에릭 테임즈에 이어 3할-30홈런-30도루-100득점-100타점의 대기록도 달성했다. 40홈런-40도루까지 바라보는 그는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0순위로 꼽힌다.
리그 최고령 타자(1983년생)인 최형우는 고빗길마다 홈런 등을 터뜨려 주면서 숨통을 트여줬다. 팀 내에서 김도영에 이어 결승타를 가장 많이 기록했다. 백업포수였던 한준수(25)가 활약하면서 김태군과 함께 전략적 활용도가 높아진 것도 고무적이었다. 이외에도 이우성, 최원준, 김선빈 등이 제 몫을 다했다. 시즌 초반 선수들이 부상으로 신음할 때 서건창 또한 ‘잇몸’ 역할을 충실히 했다.
성적이 나면서 광주 구장도 팬들로 넘쳐났다.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는 시즌 최다 매진을 기록하면서 홈 100만 관중을 일찌감치 넘어섰다.
이제 기아는 한국시리즈로 직행해 통합 우승을 노리게 된다. 턱관절 수술을 받은 네일이 포스트시즌에 등판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참고로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우승을 놓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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