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절반만 성공한 ‘마녀’ 유니버스의 확장
늘 먹던 그 맛이다. 서늘하고, 어둡고, 자극적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박훈정 유니버스’의 모든 요소를 총망라한 디즈니+ 신작 [폭군]이 지난주 공개됐다. [마녀] 시리즈 스핀오프로 알려져 기대를 모은 이번 작품은 과연 감독 특유의 ‘맛’을 살린 채 세계관을 넓히는 데 성공했을까?
국정원 소속 최 국장(김선호)이 이끌던 ‘폭군 프로젝트’가 미국 정보기관에 빼앗길 위기에 놓였다. 마지막 샘플이 담긴 금고의 운송 정보를 얻은 최 국장은 전직 국정원 요원 연모용(무진성)을 통해 금고 기술자 채자경(조윤수)에게 의뢰를 맡긴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자경, 하지만 그가 얻은 건 약속된 거액의 현찰이 아닌 모용의 배신이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자경은 복수를 위해 모용을 찾아나선 한편, 샘플의 행방을 두고 최 국장과 미국 정보요원 폴(김강우), 국정원, 그리고 살인청부업자 임상(차승원)까지 합세하게 된다.
박훈정 작품만의 매력은 [폭군]에서도 빛을 발한다. 차갑고 어두운 톤은 작품의 누아르적인 요소를 한층 강화했고, 화려한 액션과 매력적인 캐릭터로 극에 ‘보는 재미’를 더했다. 전작들에서 다소 무리수로 다가왔던 유머는 빈도를 줄이고, 극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요소로 적절히 활용했다.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마녀] 시리즈의 팬들에게 다양한 재미를 안겨주는 동시에, 스핀오프인 만큼 굳이 전작들을 보지 않더라도 큰 지장이 없다는 게 돋보인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얼굴’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마녀] 시리즈의 김다미, 신시아와 [귀공자]의 강태주처럼 [폭군]을 이끌 주인공으로 조윤수를 캐스팅한 감독의 안목이 제대로 통한 듯하다. 조윤수는 자칫하면 낯간지러울 수 있는 ‘이중인격 살인청부업자’라는 채자경의 인물 설정과 난이도 높은 액션 시퀀스를 소화해 확실한 임팩트를 남겼다.
다른 배우들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김선호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최 국장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면모를 뽐냈고, 김강우는 [귀공자]에 이어 능구렁이 같은 악역을 맡아 극에 활기를 더한다. 특히 차승원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정중하면서도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전직 요원/현 살인청부업자 임상 역을 정말이지 맛깔나게 그려내 존재감을 과시했다.
매력적인 작품임에도 기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뺏으려는 자와 지키는 자, 초인적인 힘(혹은 빌런이 뒤쫓는 무언가)을 지닌 순수한 주인공, 개그 캐릭터까지. 이제껏 박훈정 감독의 작품에서 봐왔던 설정들이 그대로 답습되는 바람에 [폭군]에서 신선함을 느끼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좋게 말해 ‘본인이 잘하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일지 몰라도, 반대로 말하면 자가복제에 불과한 셈이다.
작품의 전개 속도 또한 아쉽다. 모든 인물이 한자리에 모인 최종화를 제외하면 각 에피소드가 캐릭터 소개 위주로 흘러가는 탓에 전개가 느리고 지루하다는 인상을 느낄 여지가 충분하다. 기존 계획대로 영화로 제작되었다면 몰라도, 첫 에피소드가 승부처인 드라마이기에 인물들의 매력을 느끼기도 전에 하차한 인원도 제법 될 것이라 예상한다. 총 4개 에피소드 중 3화에 들어서야 비로소 폭군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윤곽이 잡힌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마녀] 시리즈의 팬들이야 폭군 프로젝트가 ‘초인 양성 프로젝트’임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겠지만, 모르는 입장에선 작품이 불친절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분명 [폭군]은 기존 세계관에 매력적인 캐릭터와 설정을 추가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폭군 바이러스와 전작들에서 언급된 ‘오리지널’의 상관관계, ‘구자윤과 소녀, 채자경의 전투력 대결’처럼 팬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로 인해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팬의 시선일 뿐, 이전부터 아쉬웠던 부분들이 개선되지 않은 채 매번 같은 스토리로 세계관만 확장되는 것 같다는 우려도 일리 있는 지적이다. 과연 다음 작품에서는 ‘신선한 얼굴’뿐 아니라 ‘스토리의 신선함’도 느낄 수 있을지, 일단은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다.
테일러콘텐츠 / Zapzee 에디터 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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