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쓰레기통’ 된 농촌, 산업폐기물 분쟁 현장을 가다

고령·제천 이오성 기자 2024. 10. 3.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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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폐기물이 농촌으로 몰려든다. 도시의 하수구는 산업화의 길을 따라 농촌지역으로 향한다. 대기업과 사모펀드도 폐기물 처리업에 눈독을 들인다. 국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석산 개발이 끝난 뒤 산업폐기물 매립장으로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경북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에 위치한 석산의 모습. ⓒ시사IN 조남진

화장실 없는 집이 없듯, 하수구 없는 도시는 없다. 우리가 쓴 더러운 물이 흘러가는 하수구는 도시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그런데 도시에는 오폐수가 흐르는 하수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온갖 쓰레기와 폐기물이 배출되는 ‘보이지 않는 하수구’도 있다. 이 하수구는 도시를 벗어나 지역의 곳곳으로 뻗어 있다. 채석을 마무리한 석산, 산업단지, 심지어 문 닫은 골프장이나 뒷산 인삼밭에도 이런 하수구가 들어서려 한다.

아무도 이런 하수구 근처에서 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악취와 오염 때문만이 아니다. 어떤 하수구는 그곳에 사는 주민과 무관하다. 일회용 주사기부터 인체에 해로운 폐석면까지, 하수구에서 나오는 온갖 쓰레기와 오염물질 가운데 지역 주민이 만들어낸 건 없다. 멀리 큰 도시와 공단에서 만들어낸 산업폐기물이다. 게다가 하수구 들어서는 일이 주민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진행된다면?

도시의 산업 쓰레기는 농촌을 아우성치게 만든다. 주민들의 항의와 업체의 소송이 잇따르는 분쟁 현장이 된다. 찬성과 반대가 갈리면서 지역 공동체는 붕괴되고, 주민은 평생을 살아온 고향의 변모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이렇게 도시의 쓰레기는 ‘지역 소멸’을 가속화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시사IN〉이 농촌으로 몰려드는 산업폐기물 문제를 취재했다. 농촌 지역 난개발과 환경오염에 관한 법률적 지원을 하고 있는 공익법률센터 ‘농본’의 협조를 얻어 전국의 산업폐기물 매립장, 소각장 현황 등을 취합하고, 분쟁 지역을 취재했다. 각각의 사례는 지역 언론 등을 통해 단편적으로는 알려졌지만, 지역 안에만 머무른 채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분쟁의 양상은 제각각이지만, 이는 결국 농촌 공동체 전체의 문제다.

‘위험 출입금지.’

진입을 막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취재진은 인근에 차를 세우고 등산로도 없는 산길을 올랐다. 경북 고령군 주민 곽상수씨(창녕환경운동연합 의장)가 앞장섰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산길을 오르자마자 왜 곽씨가 반바지를 입은 사진기자에게 “긴 바지 없느냐?”라고 물었는지 이해가 갔다. 가시나무 수풀을 헤치며 산길을 헤맨 끝에 발아래 거대한 잿빛 풍경이 펼쳐졌다. 경북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의 석산 개발 현장이었다. 도로에서 약 700m, 면사무소 소재지로부터 1㎞ 거리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출입금지’ 표지판 뒤에 딴 세상이 있었다.

석산 개발은 1997년부터 시작됐다. 암석을 폭파하는 다이너마이트의 굉음과 분진, 건축자재를 옮기는 트럭의 행렬로 이 지역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대구에서 레미콘 사업 등을 하는 A 업체는 석산 개발 종료를 앞두고 일거양득의 계획을 세웠다. 석산을 채굴한 자리에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조성하기로 했다. 지하 15.5m, 지상 30m 규모로 하루 처리량은 260t이다. 매립하려는 폐기물 중에는 폐석면, 폐유 등 지정폐기물도 포함됐다.

매립장 예정지는 낙동강과 직선거리로 750m다. 낙동강수계법상 하천 1㎞ 내에는 유해시설을 만들 수 없다. 2021년 6월 A 업체는 대구지방환경청에 매립장 조성을 위한 사업계획서를 냈지만 반려됐다. ‘침출수 유출로 대규모 수질오염 사고 우려가 매우 높다’라는 이유였다. 폐기물 매립장에서 발생하는 ‘침출수’란 고체 폐기물이 물리적·화학적 작용을 일으키면서 액체화한 오염물질을 말한다.

매립장 용도변경은 ‘땅 짚고 헤엄치기’

주민들이 대책위원회를 꾸려 시설 건립에 반대했지만, 업체는 뜻을 꺾지 않았다. 환경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업체는 소송 과정에서 폐기물 시설 유치에 찬성한다는 주민들 명단을 법원에 제출해 마을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대책위원회가 주민들을 일일이 접촉해 그 진의를 캐물었고, 명단에 이름을 올린 주민들 상당수는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합의서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대책위원회 측은 “업체가 합의 대상 주민들에게 지정폐기물 매립장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거나, 산업단지가 조성된다는 등 다른 이유를 들어 동의를 받았다”라는 의견을 법원에 제출했다.

3월14일 서울 종로 SK본사 앞에서 ‘산업폐기물 처리의 공공성 확보’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시사IN 신선영

이 과정에서 업체가 딸기 작목반에 1000만원 등 주민들에게 돈을 지급한 사실이 알려졌다. A업체 대표이사는 과거 석산 개발 때부터 분진 피해 등에 의한 작물 피해 보상금을 지급해왔는데, 이번에도 그런 보상금일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법원은 2023년 1심에 이어 올해 7월 2심에서도 업체 측의 소송을 기각했다. 그러나 지난 8월 해당 업체는 대법원 판단까지 받아보겠다며 상고장을 제출했다. 그렇게 폐기물 처리장 조성을 둘러싼 갈등이 4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마을은 흉흉해졌다. 돈을 받고 합의서에 도장을 찍은 사람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주민들 사이에서 번졌다. 만에 하나 업체 측과 물밑에서 합의한 주민이 더 있을 경우 반대 동력이 흔들릴 수 있는 일이었다. ‘외부 세력’이 있다는 말도 지역 정치인과 유지 사이에서 나왔다. 환경운동연합 일을 하는 곽상수씨 등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을 이장까지 맡고 있는 고령군 주민이다. 그는 “1심, 2심 소송에서 업체가 패했음에도 환영 현수막 하나 걸지 못할 정도로 마을 분위기가 조심스럽다”라고 말했다.

석산 개발 종료 후 산업폐기물 처리장으로 용도변경’ 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는 사업 아이템이다. 산지관리법상 석산 개발은 종료 후 복구가 원칙이지만, 매립장으로 용도를 변경하면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된다. 산을 파서 돈을 번 뒤, 그 자리에 다시 유독성 폐기물을 매립해 또 돈을 벌 수 있다. 전북 ‘익산 쓰레기 산’의 경우 석산 개발 후 그 자리에 유해 폐기물을 불법 매립해 사회적 논란이 컸지만, 매립장 허가를 얻으면 처리비용까지 벌며 그런 사업을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현재 고령군 쌍림면,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전남 보성군 벌교읍 등에서도 석산 개발 부지에 산업폐기물 매립장과 소각장 건설이 추진 중이다.

경북 고령군은 대구광역시와 접하고 있지만 인구는 3만명에 불과하다. 경북 내 22개 시군 가운데 다섯 번째로 인구가 적다. 대도시와 가까우면서도 인구밀도가 낮다는 지정학적 조건이 고령군의 쓰임새를 결정지었다. 1990년대부터 대구 산업단지 등에 있던 주물공장이 이곳 고령군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80개가 넘는 고령군 내 주물공장에서는 ‘주물사’라고 불리는 폐기물이 하루 수백t씩 발생했다. 주물사에는 결정형 유리규산이라는 1급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 쇳물을 녹이는 과정에서는 특유의 악취와 금속 분진도 발생한다. ‘유해물질 백화점’이라고 불리는 주물공장의 환경오염 피해에 수십 년 동안 시달려온 고령군 주민들에게 새로운 폐기물 시설은 악몽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낙동강 생태계에도 큰 영향 미칠 것”

현재 고령군에서는 모두 4곳에서 폐기물 처리장 관련 분쟁이 진행 중이다. 개진면 폐기물 매립장, 월성산업단지(월성산단) 내 폐기물 매립장, 다산면 의료폐기물 소각장, 쌍림면 산업폐기물 소각장 등을 둘러싼 분쟁들이다. 그 결과 고령군 내에 산업·의료 폐기물 처리시설에 반대하는 마을 대책위원회 6개와 이를 아우르는 공동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곽상수씨는 이렇게 말했다. “폐기물 시설 관련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달리 보면 그나마 사업 추진 정보가 주민들에게 일찍 알려졌다는 말도 된다. 정말 심각한 건 아무도 모르게 사업이 진행되다가 막판에 주민들에게 알려지는 상황이다.”

고령군 다산면의 월성산단 사례가 그렇다. 사업이 추진된 지 10년이 넘은 이 산단은, 현재 산업단지 공사는 지지부진한데 폐기물 매립장 공사만 속도를 내고 있다. 문제는 이곳에 전국 각지의 산업폐기물을 반입할 수 있는 매립장이 생긴다는 사실을 사업 추진 후 8년이 지난 2022년 말에야 주민들이 제대로 인지했다는 점이다.

공사 시행사 측은 10년 전인 2014년 주민설명회에서 이런 사실을 설명했다는 입장이다.그러나 주민들은 당시 소수 주민만 참석한 채 주민동의 절차가 진행됐고, 산단 내에서 발생한 폐기물만 매립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주민들은 반대대책위를 꾸렸지만 관련 절차가 모두 진행된 만큼 돌이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취재진은 월성산단 인근 주민들과 함께 공사 현장을 찾았다. 공사 부지 옆으로 난 가파른 산길을 10여 분 오르자 66만7971㎡(약 20만 평)에 달하는 대규모 산업단지 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산단 부지는 아직 기초공사도 채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폐기물 매립지 공사는 이미 70% 이상 진행된 상태였다. 약 4만860㎡(약 1만2000평) 면적에 지하 37m, 지상 14m 규모다. 하루 처리량은 180t이다. 환경오염 염려가 큰 지정폐기물 비율이 23%를 차지한다.

경북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에 조성 중인 월성산업단지. 산단 조성공사는 지지부진하지만 산업폐기물 매립장은 속도를 내고 있다.ⓒ시사IN 조남진

낙동강은 산단이 있는 다산면을 말발굽 모양으로 감싸며 흐른다. 매립장에서 약 1.7㎞ 떨어진 곳에는 고령군과 성주군민에게 물을 공급하는 광역 취수장이 있다. 500m 거리에는 한국수자원공사 노천 정수시설이 있다. 이 때문에 마을 주민은 자칫 침출수가 누수될 경우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염려한다. 공사 시행사 측은 “폐기물 매립장 추진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합법적으로 진행했고, 산업단지 내에 자체 폐수처리 시설을 만드는 등 주민들이 염려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한 2차전지 재활용업체가 월성산단 내 부지 일부를 매입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2차전지, 즉 폐배터리 재활용은 공정 과정에서 폐수와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한다. 이런 업체가 산단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업종변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 고령군 측은 업종변경 신청이 들어오면 공식 절차에 따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종열 월성산단 지정폐기물 반대 주민대책위원장은 “폐기물 매립장에 이어 폐배터리 재활용업체까지 들어오면 주민이 못 사는 것은 물론이고 낙동강 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이승준 부경대 식품영양학과 교수팀이 고령군 내 가정집 수돗물을 분석한 결과 기준치를 초과하는 녹조 독소가 검출돼 지역에서는 낙동강 수질오염에 대한 염려가 큰 상황이다.

산업폐기물은 왜 농촌으로 몰려들까. 돈이 되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산업폐기물(사업장·건설·지정·의료폐기물)이 전체 폐기물 가운데 87.6%를 차지한다. 개인이 배출하는 생활폐기물은 12.4%에 불과하다. 생활폐기물은 ‘발생지 책임 원칙’ 아래 지자체가 처리하지만 산업폐기물은 그렇지 않다. 폐기물 처리 대부분을 민간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게다가 인허가만 받으면 전국 어디에든 사업장을 지을 수 있고, 전국의 산업폐기물을 반입할 수 있다. A 업체가 고령군에서 매립장 인허가를 받으면 대구는 물론 서울, 부산 등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가리지 않고 반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업이 공개하지 않는 한 폐기물 처리 단가가 얼마인지 정확한 수치를 알 수는 없다. 회계·경영컨설팅 업체인 삼정KPMG가 2022년 펴낸 ‘ESG 시대, 폐기물 처리업의 주인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주요 폐기물 처리업체의 평균 기업가치가 2017년 대비 2020년에 200%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폐기물 발생량은 계속 느는 데 비해 처리시설이 부족함에 따라 관련 기업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산업폐기물 처리시설이 가장 많은 지역은?

대기업과 사모펀드도 폐기물 처리업에 뛰어들고 있다. 태영과 외국계 사모펀드 KKR이 5대 5 지분으로 설립한 ‘에코비트’가 대표적이다. 전국 곳곳에 산업폐기물 매립장과 의료폐기물 소각장 등을 운영하는 자회사를 둔 에코비트는 지난해 매출액 6744억원, 영업이익 1100억원을 기록했다. 태영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에코비트는 최근 또 다른 사모펀드에 팔렸는데, 매각금액이 무려 2조700억원이었다. SK에코플랜트(옛 SK건설)도 산업폐기물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충남 공주시와 예산군, 경남 사천시 등에서 직접 또는 자회사를 통해 산업폐기물 매립장, 소각장 조성 등을 추진 중이다.

2021년 7월 전북 익산시 낭산면에 위치한 ‘쓰레기 산’의 모습. 석산 개발 후 폐기물을 매립했다. ⓒ시사IN 조남진

경남 사천시 대진일반산단에서는 시공사인 SK에코플랜트가 지난 1월 ‘2차전지 리사이클링 복합단지’ 조성을 위한 투자의향서를 제출하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오염 가능성이 높은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인 데다 폐기물 처리장이 포함돼 있어 주민들이 격렬히 반대한다. 올해 3월14일 서울 종각 SK빌딩과 여의도 태영빌딩 앞에서는 산업폐기물 시설에 반대하는 전국 각지 주민들이 모여 항의 집회를 열기도 했다.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인허가 과정이 진행 중이고 주민과의 협의가 필요한 사업 초기 단계이므로 향후 사업이 본격화하면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라고 말했다.

공익법률센터 ‘농본’의 하승수 변호사는 “산업폐기물 매립장에서 큰 이익을 올릴 수 있다 보니 산업단지와 묶어서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추진하는 행태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산업단지 내 폐기물 매립장은 인허가를 받기 쉽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령군의 또 다른 산단의 경우 산단 운영은 적자인데 매립장에서 연간 수백억 원대 이익을 올리고 있다.

〈그림 1〉을 보자. ‘농본’에서 전국 산업폐기물 관련 분쟁 현황을 정리한 내용이다. 2024년 8월 현재 전국 27곳이다(강원도 영월군에서도 분쟁이 발생했으나 아직 실태 파악이 부족해 제외했다).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둘러싼 분쟁이 14건으로 가장 많고, 소각장 관련 분쟁이 8건이다. 산업단지와 폐기물 처리장을 함께 추진하면서 불거진 사례도 3건이다. 전기를 생산하는 SRF(고형폐기물) 발전소의 경우 재활용 시설로 분류되지만 대기오염이 발생하므로 주민에게는 소각시설이나 다름없다.

광역별로 분쟁 건수를 보면 경북이 8건으로 가장 많고, 충남이 6건, 경기도가 5건이다. 경기도 연천에서는 문 닫은 골프장 부지에 폐기물 매립장이, 경북 안동시에서는 인삼밭이던 땅에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추진되고 있다. 국책사업으로 떠들썩했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주민들 역시 폐기물 매립장 문제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림 1〉은 현지 주민이 농본에 법률 지원 등을 요청한 사례를 정리한 내용이므로 실제 분쟁 사례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산업폐기물 문제를 취재하면서 근원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이미 가동 중인 산업폐기물 매립장과 소각장이 어느 곳에 몇 군데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지역별 폐기물 발생량은 쉽게 알 수 있지만 그 폐기물을 처리하는 시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대개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이들 시설 상당수는 우리가 모르는 극심한 갈등 끝에 들어섰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환경공단이 해마다 집계하는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이라는 자료가 있다. 이 중 ‘폐기물 처리업체 현황’에서 각각 폐기물 종류별, 처리 단계별로 나뉘어 있는 소재지 자료를 취합하면 〈그림 2〉와 같은 지도가 나온다. ‘전국 산업폐기물 소각 및 매립 처리업체 지도’다(https://waste.sisain.co.kr에서 우리동네 산업폐기물 처리장 위치를 볼 수 있습니다). 처리업체와 처리시설의 소재지는 거의 동일하고 한 업체가 같은 곳에서 여러 시설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어 실제 폐기물 시설의 수는 이보다 더 많다. 화력발전소 등에 설치된 자가처리시설도 이번 통계에서는 제외했다.

산업폐기물 처리시설이 가장 많은 지역은 경북으로 31곳이었다. 그다음이 경기도로 28곳이었다. 충남이 21곳으로 뒤를 이었다. 앞서 설명한 분쟁지역 현황과 거의 일치했다. 이미 폐기물 처리시설이 들어선 지역에 또다시 새 사업이 추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반면 서울, 대구, 제주에는 처리시설이 한 곳도 없었다.

경북 내에서 시군별로 보면 구미와 경주가 9곳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로 포항이 5곳, 고령이 3곳이었다. 관광도시로 알려진 경주시의 수치가 의아해 보이지만 포항·울산과 맞닿은 안강읍, 강동면, 천북면, 외동읍 등 외곽 지역에 폐기물 매립시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충남의 경우 천안시 외곽에 6곳이 몰려 있었는데 사업장 폐기물 소각장이 5곳,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1곳이었다. 나머지 처리시설은 당진, 서산 등 산업단지가 발달한 해안도시에 분포했다.

침출수 유출, 파악조차 되지 않아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경기도를 살펴보자. 안산이 눈에 띈다. 공단이 발달한 안산이 7곳으로 가장 많고 화성이 6곳이었다. 안산시의 경우 모두 소각시설이었고, 단원구 공단지역에 위치했다. 화성시에는 소각장이 4곳, 매립장이 2곳 있는데 경기도 내에서 유일하게 폐기물 매립장이 있는 곳이다. 소각장은 모두 읍면 지대에 있고, 매립장은 향남읍 발안공단에 있다. 발안공단은 인구밀집 지역인 동탄신도시와는 직선거리로 20㎞ 가까이 떨어진 곳이다.

수집·운반 과정에서 세균 감염과 소각 과정에서 발암물질 발생 우려가 큰 의료폐기물 처리시설은 어디에 있을까.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의료폐기물이 전체의 절반을 훨씬 넘는데, 전국 14개 소각장 중에서 11개가 비수도권에 위치해 있다. 경기도의 3개 소각장 역시 연천, 포천, 용인의 농촌지역에 있다. 도농복합지역이 많은 경기도는 폐기물 처리의 수혜자이자 피해자임을 알 수 있다.

이 지도가 말하는 바는 뚜렷하다. ‘산업화의 그늘’이자 ‘도시와 농촌의 불평등’이다. 폐기물 처리시설은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산업화가 진행된 곳 위주로 집중됐고, 같은 행정구역이라도 농촌지역에 밀집했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도시의 하수구’는 산업화의 길을 따라 농촌지역으로 뻗어 있다고.

충북 제천시 왕암동의 매립장. 전국에서 산업폐기물이 몰려들어 2년 만에 포화상태가 되었다.ⓒ시사IN 조남진

충북 제천시 왕암동 바이오산업단지 안에는 이상한 곳이 있다. 얼핏 보면 넓은 잔디 공원 같은데 곳곳에 거대한 파이프가 꽂혀 있다. 입구 앞에는 ‘국가기반보호시설’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제천역에서 차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이곳은 산업폐기물 26만t이 묻혀 있는 종료 매립장이다. 파이프는 수명이 다한 매립장에서 발생하는 가스를 뽑아내는 시설이다.

이곳 역시 산업단지를 계획하면서 함께 조성된 매립장이다. 2006년 영업을 시작한 이 매립장은 사업 중간에 소유주가 바뀌면서 처리 용량을 늘렸는데 지역 환경청과 충북도청이 이를 허가해줬다. 이후 전국 각지에서 산업폐기물이 몰려들며 매립 연한이 15년인 매립장은 영업 2년 만에 포화상태가 됐다. 업체는 단기간에 큰 이익을 얻었고, 매립장은 2010년 사업이 종료됐다.

‘환경 재앙’은 매립장 운영 직후부터 시작됐다. 2006년 7월 폭우 때 빗물과 악취를 차단하는 에어돔이 붕괴되면서 침출수 6만t이 유출됐다. 하천에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끔찍한 악취가 발생해 인근 아파트 주민과 산단 노동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매립이 종료된 이후 2012년 12월에 폭설로 또다시 에어돔이 무너지면서 침출수가 대량 방출됐다. 2차 에어돔 붕괴 직후 사후관리 책임을 맡은 업체의 부도로 이곳 매립장은 장기간 방치됐다. 얼마나 많은 침출수가 유출됐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에어돔 붕괴 이후 주인도 관리자도 없이 방치된 매립장은 결국 2022년에야 세금 98억원을 들여 폐쇄됐다. 문제는, 지금도 침출수가 주변 하천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점이다. 올해 1월 지역 언론 〈단비뉴스〉 보도에 따르면 매립장 주변 수질검사 결과 염소이온, 페놀 등 유해물질이 기준치보다 200~920배 높게 검출됐다. 현재 매립장 주변에서는 침출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저류시설’ 공사가 진행 중이다.

매립장 추진 중단된 강릉, ‘운’이 좋았다

제천 왕암동 사례는 산업폐기물 처리장 시설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여파가 얼마나 오래, 그리고 고통스럽게 계속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2000년대 초반부터 왕암동 폐기물 매립장 문제를 제기해온 김진우 전 제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업체의 욕망과 행정 당국의 관리 소홀이 빚어낸 참사”라고 말했다.

충북 제천시의 매립장은 운영이 종료되었지만 아직도 침출수가 흘러나온다는 지적이 있다. 침출수 제거를 위한 저류지 공사가 진행 중이다. ⓒ시사IN 조남진

최근 산업폐기물 매립장 추진이 중단된 곳이 있다. 태영그룹 계열사인 태영동부환경이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에 추진하던 매립장이다. 태영그룹이 워크아웃 상태에 들어가면서다. 주문진 해수욕장에서 4㎞ 떨어진 곳에 매립 용량이 904만t에 달하는 대규모 매립장을 짓는다는 계획이었다. 이곳에서도 주민들이 강력한 반대운동을 펼쳐왔다.

현황 파악을 위해 반대대책위에서 활동하는 김성수씨(강릉시민행동 공동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언론에서 우리 문제를 다룰 때 조심해줬으면 좋겠다. 우리를 반대 투쟁에 승리한 영웅의 사례로 다뤄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았다. 만약 태영이 경영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면 이 사업은 중단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역에서 기업을 상대로 싸우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업체가 사업을 중단하거나 행정소송에서 패했다 해도 상황이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판단으로 해당 사업이 최종적으로 무산됐다 해도 땅을 소유한 업체는 이후 사업계획을 변경해 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얼마든지 재추진할 수 있다. 한번 폐기물 사업지로 점찍힌 지역의 주민은 내내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지난 2월28일 농림축산식품부가 최근 5년간 귀농·귀촌한 6000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귀농귀촌 실태조사’에 따르면, 도시민들은 귀농하는 이유로 ‘자연환경이 좋아서(30.3%)’ ‘농업의 비전 및 발전 가능성을 보고(22.3%)’를 꼽았다. 도시민이 귀농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산업폐기물 문제 때문에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비틀어본다. 행복한 농촌은 저마다의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농촌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다. 산업 쓰레기 문제를 공론의 장에 끌어올리지 못하면 욕망의 침출수는 도시에서 농촌으로 계속 흘러갈 것이다.

※ 산업폐기물 문제를 둘러싼 해법을 살펴보는 후속 기사가 이어집니다.

※ 인터랙티브 사이트 waste.sisain.co.kr에서 우리동네 산업폐기물 처리장 위치를 확인해 보세요. 

고령·제천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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