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농사와 농촌에 관한 이야기 (7)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맺으리." 이호우 선생의 '살구꽃 핀 마을'이다.

지난 시절 농촌 웬만한 집엔 크든 작든 장독대가 있고, 장독대 위에는 흰 정화수 그릇 얹혀 있지 않은 집이 별로 없었다. '살구꽃 핀 마을'이었다. 첫새벽 우물에서 길어온 물을 정화수 그릇에 담아 장독대 위에 올려놓고, 새 목숨 내려주시기를 비는 할머니, 어머니 모습은 그 시절을 상징하는 '살구꽃 피는 마을'이었다.농사에는 많은 일손이 든다. 그 일손을 하늘의 칠성님께 빌어 구하려는 것이다.

하늘 별님께 사람 생명 내려주시기를 비는 신앙은 저 무지막지한 폭력이 단죄한 '미신'이 아니라, 서역의 초기 기독교 문화 영향으로 생긴 생명사상이었다.

고대 민족 고조선, 부여, 고구려가 중국 문화와 교류하기 훨씬 앞서서 살았던 곳은 알타이산맥에 가까운 알타이 지방이었다. 지금의 내몽골에서 서북쪽으로 가서 알타이산맥을 넘어 남시베리아로 들어가는 길을 통해서 서역과 교류하는 통로가 있었다.

이 길을 통하여 이집트, 초기 기독교 문화가 전해졌다. 이때 초기 기독교는 '영지주의(Gnosticism)', 즉 개인의 영적 체험으로 절대신과 소통하는 신앙 형식이 주류였다. 종교 지도자, 교회, 성경이 나타나기 전이었다. 개인의 영적 체험을 존중하는 습속은 우리 고대 민족에게도 전해졌다.

개인의 영적 체험은 누구나 가능한 것이 아니어서, 이를 체험한 사람이 직접 무리를 이끌거나, 기존 지도자의 스승 또는 조언자였다. 우리 고대 민족 역사 속의 웅녀가 그 증거다. 웅녀가 낳은 아들이 단군인데,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 까닭은 모계사회, 모권사회였기 때문이다.

인류학에서 모권사회를 '가모장제·家母長制·matriarchy'라 하는데, 뒷날 이 제도의 영향을 받은 혼인 방식이 데릴사위제도이고, 남자가 여자 사는 집으로 들어가서 부부가 되는 것이 '부가서류제·婦家婿留制'다.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 하늘의 별님에 생명을 구하는 칠성(七星)신앙이 생겨났는데, 이것은 초기 기독교 신앙의 특징이기도 한 다신교(多神敎)의 한 갈래로 보고 있다.

하늘의 북두칠성이 생명을 주관하는 신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 신을 삼신할망(매)이라 불렀다. 북두칠성은 생명의 바다인 미리내(은하수)의 별 하나를 땅 위에 사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에 응당하여 생명을 내려주신다. 긴 자루가 달린 바가지처럼 생겼다.

우리 옛사람들은 하늘에 그 많고 많은 별마다 생명 한 개씩 들어 있다고 믿었다. 별 하나, 나 하나라고 믿고 살았다.

사람이 살다가 죽어 주검을 관속에 넣는데, 관의 밑바닥을 칠성판이라 부른다. 칠성에서 온 생명은 다시 별로 돌아가는데, 별로 데려가는 것이 칠성판이라고 믿은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돌아갈 별이 있는 셈이다. 그 별은 하나님이 다스린다고 믿었다. 그렇게 별에서 온 사람이 농사를 짓고, 농촌을 이루고, 가정과 나를 세워 살았다. 이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정동주 시인·동다헌 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