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발 '훈풍'이 SK그룹 전반의 체력 회복 기대를 키우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AI 메모리 수요 확대를 등에 업은 SK하이닉스의 호실적이 그룹 계열사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반도체 시설 투자와 소재·인프라 사업을 중심으로 일부 계열사는 직접적인 수혜를 보고 있다.
다만 이 같은 효과가 SK㈜의 재무 여력 확대나 부진 계열사 지원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지배구조와 배당 경로, 계열사 간 지원 규제 등을 고려하면 그룹 전반의 재무 대응력으로 전환되는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반도체 밸류체인 올라탄 에코플랜트
SK하이닉스 중심 반도체 업황 회복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를 받은 계열사는 SK에코플랜트다.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시설 투자가 확대되면서 대형 공사 수주가 이어졌다. 2024년∼2025년에는 SK㈜로부터 반도체 소재 관련 계열사 지분까지 넘겨받으며 SK하이닉스와의 사업 연계성은 한층 깊어졌다.
실적 개선도 이를 반영한다. SK에코플랜트의 연결 매출액은 12조1916억원으로 전년 대비 39.6%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3159억원으로 39.8% 늘었다. 반도체 밸류체인 중심의 체질 개선이 실적 턴어라운드로 이어진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 1기 구축공사(기본도급액 4조5802억원), M15 Ph-3 프로젝트(3조1325억원), 용인 FAB 1기 지원시설 건설공사(1조7677억원) 등 SK하이닉스가 발주한 대형 공사들의 수주잔액만 수조원 규모에 달한다. 주요 매출처 가운데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도 전체 매출의 72.8%로 집계됐다. SK하이닉스 투자 사이클이 SK에코플랜트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확인된다.
수혜는 일부 다른 계열사로도 번지는 모습이다. SK㈜의 AX(디지털 전환 사업) 부문은 2025년 들어 SK하이닉스향 매출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도 한국중부발전과 함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내 집단에너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SK하이닉스 호황이 건설뿐 아니라 IT 서비스, 에너지 인프라 영역으로도 확산되는 모습이다.
스퀘어 거쳐야 하는 하이닉스 현금흐름
SK하이닉스 호황은 일부 계열사의 매출과 수주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SK그룹 전체의 재무 부담을 완화하는 직접적인 현금흐름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여러 제약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제약은 지분구조다. SK㈜는 SK하이닉스를 직접 지배하지 않는다. SK텔레콤에서 인적분할된 SK스퀘어가 SK하이닉스 지분 20.07%를 보유하고 있고, SK㈜는 SK스퀘어 지분 32.14%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단순 계산하면 SK㈜가 간접적으로 누리는 SK하이닉스의 경제적 지분은 6.45%에 불과하다.

이 구조 탓에 SK하이닉스에서 발생한 이익이 SK㈜의 현금흐름으로 곧바로 연결되기 어렵다. SK하이닉스가 배당을 실시하면 SK스퀘어가 1차로 수취하고 이후 SK스퀘어가 다시 배당하거나 별도의 방식으로 자금을 배분해야 비로소 SK㈜로 현금이 흘러든다.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이 SK스퀘어의 순자산가치와 투자 여력을 높이는 효과는 분명하지만 SK㈜의 가용 현금으로 연결되는 폭은 지분율과 SK스퀘어의 배당정책에 의해 이중으로 걸러질 수밖에 없다.
배당 확대 기대도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는 2025~2027년 주주환원 정책에서 고정배당을 주당 12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렸지만, 기존에 추가 배당 재원으로 활용하던 연간 잉여현금흐름의 5%는 재무건전성 강화에 우선 투입하기로 했다. 청주 M15X 증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 HBM·AI 메모리 수요 대응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는 만큼 현금의 상당 부분은 배당보다 생산능력 확충과 기술 경쟁력 유지에 배분될 가능성이 크다.
공정거래법이 막은 '직접 지원'의 길
계열사 간 직접 지원도 간단치 않다. 특히 SK하이닉스가 부진 계열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을 취득하는 방식은 지주회사 체계상 제약이 크다. 공정거래법은 일반지주회사 체제에서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 단계별로 국내 계열회사 주식 보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손자회사가 예외적으로 국내 계열회사 주식을 보유하려면 발행주식 전부를 취득하는 구조 등 까다로운 요건을 갖춰야 한다.
자금 대여 역시 자유롭지 않다. 공정거래법 제45조 제1항 제9호는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가지급금·대여금·인력·부동산·유가증권 등을 제공하거나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해 지원하는 행위를 부당지원행위로 규정한다.
SK하이닉스가 부진 계열사에 자금을 빌려주는 방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시장금리·담보·만기·상환 가능성 등 거래 조건이 독립된 제3자 거래와 비교해 합리적이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지원행위 심사지침도 자금을 상당한 규모로 제공하거나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하는 경우 지원행위로 볼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SK하이닉스의 현금을 부진 계열사에 우회 지원하는 방식이 부당지원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의미다.
SK그룹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 호황이 일부 계열사에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맞지만 이는 사업적 연계 효과에 가깝다"며 "그룹 전체의 재무 리스크를 직접 낮추는 효과와는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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