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슨 색 입지?’…선거날마다 반복되는 ‘투표 패션’ 고민
정치적 양극화가 만든 피로감…‘위험 요소’ 차단 심리 작용했다
선거철 옷 색깔 눈치 싸움, 공인과 정치권 태도가 중요

선거기간 공인의 옷차림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선거일에 ‘무채색 선거 패션’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며 어느 한 쪽으로 오해받기 싫다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선거날 빨간색·파란색 피한다는 시민들
2일 세계일보 취재진과 만난 직장인 최모(27)씨는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투표소가 아닌 옷장 앞에서부터 근심이 깊어졌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어떤 후보에게 표를 던질지도 고민이지만, 당장 어떤 색의 옷을 입고 나갈지가 최씨의 숙제다. 그는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선거일에도 빨간색이나 파란색 등 특정 정당을 연상시키는 옷을 피할 생각이다. 투표소 안팎에서 특정 정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결국 흰색 옷을 고른 최씨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연예인들이 선거기간 옷 색깔로 난감해하고 조심하는 것을 보면서 ‘무채색 옷'을 입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같은날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에서 만난 직장인 이모(28)씨는 “선거 당일 어떤 색의 옷을 입을지 의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 성향이 다른 집단 간 대립이 갈수록 격화되는 것 같다. 선거 당일 흰색 옷을 입어야겠다”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온라인에서도 주목할 만한 일화가 공개됐다. 지난달 29일 한 누리꾼은 자신의 블로그에 “사전투표 당시 공무원 두 명이 분홍색 티셔츠를 입은 시민에게 ‘투표소 근처에 색깔이 뚜렷한 옷을 입고 서성이지 말아달라’ 요청하는 모습을 봤다”며 “해당 시민이 분홍색 옷을 입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답했지만, 공무원은 ‘주민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고 이동을 권고했다”고 적었다.
1일 엑스(X·옛 트위터)에서 이용자 B씨는 “만약 흰색을 정당색으로 지정하면 투표일에 입고 갈 옷이 전무할 것”이라며 불편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이 발현되는 가장 큰 이유로 ‘정치적 양극화’를 꼽는다. 양 집단의 단순한 의견 차이가 이제는 서로를 적대시하는 문화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특정 정치 집단으로 분류되거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낸다는 오해를 받는 상황을 경계하게 된다. 실제 정치적 의도와 무관하더라도 불필요한 갈등이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사전에 ‘위험 요소’를 차단하려는 심리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선거일 옷차림을 두고 신중해지는 현상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사람보다 드러내지 않으려는 사람이 훨씬 많다”며 “선거 당일 외양이나 옷차림을 의식하는 행동은 일종의 자기 검열이자, 사회적 갈등을 피하려는 중립성 유지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SNS 확산도 한가지 축으로 꼽힌다. 김중백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SNS 활성화로 인해 의도치 않은 오해를 사는 상황이 많아져 공인이 아닌 일반인 유권자도 조심하는 경향이 늘어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성과 관련된 시각도 흥미롭다. 김 교수는 “미국은 ‘스윙스테이트(경합주)’를 제외하면 지역적 정치색이 비교적 분명히 구분돼 있어 개인이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분위기지만, 한국은 조금 다르다”며 “한국은 좁은 국토 면적 내에서도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서 살아가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을 드러냈을 때 그것에 대해 비판을 하고 민감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건강한 선거 문화로 가기 위해서는 공인의 역할과 정치적 양극화의 완화가 중요하다고 제언한다.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인물은 ‘동조심리’로 인해 대중에게 파급력이 있어 선거기간 동안 각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임 교수는 “‘색’은 우리의 동조심리를 나타내는 가장 선명하고 대표적인 특성”이라며 “공인이라면 선거기간 특정 정당을 연상할 수 있게끔 상징성을 가지는 특정 색을 표현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회적 긴장’이 필요해 공인에게 적용되는 잣대는 어느 정도 엄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선거기간 정치적 오해를 피하고자 시민들마저 피로함을 느끼는 상황에 대해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교수는 “언론에서 비치는 정치인들의 적대적 대립이 시민들에게까지 투영되면서 사회 분위기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며 “기존 정치인들이 생각이 다르더라도 상대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완화하면 시민들도 덜 예민해진다”고 지적했다.
손유나·방승민 인턴기자 sonyu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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