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통이 없는 브랜드가, 헤리티지를 장착하는 법 - 큐비츠
정부에서 안경을 무료로 나눠주면 어떨까요? 이런 정책이 실제로 영국에서 시행됐어요. 영국의 NHS(National Health Service)가 시민의 볼 권리 진작을 위해 7가지 안경을 대량 생산해 무료로 나눠준 거예요. 1948년부터 1992년까지 무려 40년 넘게요.
무료 안경 치고는 디자인이나 퀄리티가 나쁘지 않아 인기가 높았어요. 그래서 1990년대까지는 단체 사진을 찍으면 같은 안경을 쓴 사람을 발견하는 게 예사였죠. 사회 전반에 준 혜택의 총합은 올라갔지만, 안경을 팔던 장인과 상인들은 이 시기를 버티지 못하고 스러져 갔어요.
혜택만큼이나 부작용도 커 NHS는 결국 무료 배포를 중단했어요. 하지만 무료 정책으로 인해 망가진 산업의 오랜 공백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이 상황을 대기업이 메우기 시작했죠. 그렇게 현재 영국 안경 시장의 70% 이상을 스펙세이버스, 부츠, 비전 익스프레스, 테스코 등 대기업이 차지했어요.
어느 정도 산업이 회복되자 시장의 틈새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틈을 ‘큐비츠’가 파고 들었죠. 시대와 상황의 변화 속에서 큐비츠가 포착한 기회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그 기회를 어떻게 잡았을까요?
📍 브랜드도 진화합니다. 이번 런던 위크에서는 <퇴사준비생의 런던>에서 소개했던 매장, 공간, 브랜드, 기업 등의 그동안의 변화를 업데이트 해봅니다.
큐비츠 미리보기
• 비스포크를 다시 말하다
• #1. 안경은 초점이다
• #2. 안경은 과학이다
• #3. 안경은 얼굴이다
• 철학이 만드는 헤리티지
수트는 신사의 갑옷이다. (The suit is a modern gentleman’s armour.)
<킹스맨(Kingsman)>은 영화를 통해 맞춤형 수트에 대한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어요. 단지 첩보 요원용으로 특수 제작한 수트여서만은 아니에요. 몸에 맞게 칼맞춤한 수트가 언제 어디서나 신사의 자신감을 지켜주기 때문이죠. 하지만 수트 하나만으로 주인공들의 신사다움이 완성될 수는 없어요. 수트를 빛내줄 조연들이 필요해요.
그래서 <킹스맨>에는 수트뿐 아니라 셔츠, 넥타이, 구두, 시계, 심지어 우산에 이르기까지 영국을 대표하는 비스포크* 브랜드들이 총출동해요. 헌츠맨 앤 선즈(Huntsman & Sons), 턴불 앤 아서(Turnbull & Asser), 드레익스(Drake’s), 마틴 니콜스(Martin Nicholls) 등 모두 비스포크의 메카 새빌로(Savile row) 거리의 강호들이에요.
*비스포크: ‘Been spoken for’에서 유래해, 고객이 말하는 대로 만들어주는 한 사람만을 위한 주문형 맞춤 서비스를 뜻해요.
온라인 럭셔리 쇼핑몰인 미스터 포터(MR PORTER)는 이 브랜드들을 모아 ‘킹스맨의 옷장’ 컬렉션을 출시하며 화제를 뿌리기도 했어요. 이례적으로 킹스맨 컬렉션만을 위한 팝업숍을 열고, 인기에 힘입어 시즌 2를 선보일 정도로 화제를 이어갔죠. 이렇듯 <킹스맨>은 브리티시 헤리티지를 만천하에 알리며 런던이 자타공인 비스포크 강국임을 상기시켰어요.
런던이 모든 비스포크를 장악하고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취약한 분야가 있어요. 바로 안경이에요. 본래 비스포크 안경도 탄탄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으나 NHS(National Health Service)의 무료 안경 배포 정책이 생긴 후부터 힘을 잃기 시작했어요. 이 정부기관에서는 시민의 볼 권리 진작을 위해 1948년부터 1992년까지 40여 년간 7가지 안경을 대량 생산해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 줬죠.
무료 안경 치고는 디자인이나 퀄리티가 나쁘지 않아 인기가 높았어요. 그래서 1990년대까지는 단체 사진을 찍으면 같은 안경을 쓴 사람을 발견하는 게 예사였어요. 사회 전반에 준 혜택의 총합은 올라갔지만, 안경을 팔던 장인과 상인들은 이 시기를 버티지 못하고 스러져 갔어요.
혜택만큼이나 부작용도 커 NHS는 결국 무료 배포를 중단했어요. 하지만 무료 정책으로 인해 망가진 산업의 오랜 공백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이 상황을 대기업이 메우기 시작했죠. 그렇게 현재 영국 안경 시장의 70% 이상을 스펙세이버스(Specsavers), 부츠(Boots), 비전 익스프레스(Vision Express), 테스코(Tesco) 등 대기업이 차지했어요.
상황이 바뀌자 오히려 소비자들의 고민만 더 늘었어요. 안경테 디자인의 종류가 늘어나 수백 가지 안경 더미들 속에서 눈을 둘 곳을 잃기 때문이죠. 안경 끼고 벗기를 반복하면서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져요. 얼굴과 어울리는지, 착용감이 좋은지, 가격은 얼마인지, 어떤 색상이 있는지 등을 여러 안경테들과 비교하는 와중에 진이 빠져 버려 안경점 주인이 추천하는 무난한, 혹은 유행하는 안경테로 떠밀리듯 선택하게 돼요. 매일 사용하는 필수품에다 평균 100파운드(약 15만 원) 이상 소요되는 중대한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것이 최선인가’하는 의문이 들죠.
비스포크를 다시 말하다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안경 맞추는 경험을 총체적으로 리뉴얼하겠다는 사명 하에 탄생한 비스포크 안경점이 있어요. 바로 ‘큐비츠(Cubitts)’예요. 2014년에 <가디언(The Guardian)>이 올해의 스타트업으로 선정하고, 2016년에 스타트업 어워즈(Startups Awards)에서 올해의 리테일 비즈니스상(Retail Business of the Year)을 수여하는 등 꾸준하게 이목을 집중시키는 곳이죠. 비스포크 매장으로는 드물게 영국 전역에 16개(2023년 6월 기준)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