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벌타 드롭은 찬스? 디 오픈선 ‘지옥’ 떨어진다

요행수를 바란 선수에게 허락되는 건 골프화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잡초가 무성한 ‘잔인한 드롭존(Drop Zone)’행이다. 영국 북아일랜드 포트러시의 로열 포트러시 골프클럽(파71)에서 진행 중인 메이저 골프 대회 제153회 디 오픈(The Open Championship)은 출전 선수에게 끊임없이 인내와 도전을 요구한다. 해안가를 따라 형성된 울퉁불퉁한 페어웨이와 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억센 러프, 시시각각 변하는 바닷바람이 선수들을 괴롭힌다.
여기에 하나 더, 선수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디 오픈만의 드롭존 규칙이 있다. 올해 디 오픈엔 약 29만명의 관중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주최 측은 코스 곳곳에 임시 관중석을 설치했다. 마지막 18번홀 그린 뒤에 설치된 대형 관중석(grand stand)과 그린 사이 러프에는 여느 골프 대회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드롭존이 몇 개 설치됐다. 길고 질긴 잡초와 고사리 같은 양치류 식물로 뒤덮여 드롭존을 알리는 ‘D.Z.’ 표지판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린을 지나친 공이 관중석과 너무 가까이 붙어 정상적으로 샷을 하기 어려울 때 선수들은 벌타 없이 드롭존으로 이동해 다음 샷을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드롭존이 여느 골프장의 러프보다 훨씬 악조건이라 홀에 가까이 붙이기는커녕 그린 위에 공을 올리는 것부터 걱정해야 할 판이다.

R&A(영국왕립골프협회)와 USGA(미국골프협회)가 공동 제정한 골프 규칙에 따르면, 대형 관람석이나 천막, 스코어 보드, TV 중계 타워 같은 ‘움직일 수 없는 일시 장애물(TIO·Temporary Immovable Obstructions)’ 때문에 스탠스나 스윙에 방해를 받는다면 벌타 없이 구제를 받을 수 있다. 이때 홀컵과 가깝지 않은 방향으로 클럽 한 개 길이 내에 공을 드롭하거나 대회 주최 측이 마련한 특설 구역(드롭존)에서 플레이한다. 디 오픈을 주관하는 R&A는 선수들이 두 가지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했는데, 홀컵 반대 방향은 관중석으로 막혀 있기 때문에 선수들은 드롭존에서 플레이할 수밖에 없다.
이번 대회 개막을 앞두고 연습 라운드 때 드롭존 상태를 확인한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극악무도하다(diabolic)” “고약하다(nasty)” “악랄하다(brutal)”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 디 오픈이 드롭존 환경을 유례없이 까다롭게 조성한 것은 미스샷을 한 선수가 무벌타 드롭으로 유리한 결과를 얻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R&A는 미국 골프닷컴에 “그랜드 스탠드 쪽으로 공을 보내는 게 탈출구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통상적으로 PGA(미 프로골프) 투어를 포함해 대다수 골프 대회는 관중석 근처로 떨어진 공을 구제하기 위해 러프라도 어렵지 않은 라이에 드롭존을 만든다. 어프로치 샷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선수들은 “짧은 것보다는 관중석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길게 치는 게 낫다”는 전술로 홀을 공략한다. 실제로 지난 4월 열린 LPGA(미 여자프로골프) 투어 메이저 대회 ‘셰브론 챔피언십’ 18번홀(파5)에선 상당수가 긴 클럽으로 투온을 시도했고, 그린을 훌쩍 지나쳐 관중석까지 갔어도 어렵지 않게 세 번째 샷을 홀컵에 붙여 버디를 잡았다. ‘일단 (홀컵을) 지나가는 게 좋다’는 식으로 공략하니 그린 앞 워터 해저드가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당시 골프 해설가 브랜들 챔블리는 “메이저 대회 마지막 홀을 이렇게 플레이하는 것을 보는 것은 곤욕”이라고 선수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올 1월 DP 월드투어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에서는 농구에서 백보드를 이용하듯 관중석 벽을 맞힌 공이 그린에 안착하기도 했다. R&A는 디 오픈 18번 홀에서 이런 식의 플레이가 나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잔인할 정도로 드롭존을 어렵게 만든 것이다.
골프 팬들은 디 오픈의 까다로운 드롭존 설치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R&A의 이번 결정이 다른 대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어려운 드롭존 때문에 선수들의 경기 전략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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