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수요 정체로 전동화 계획을 수정하는 곳들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에도 뚝심있게 계획을 밀어붙이는 곳들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현대차그룹으로, 산하 브랜드들에 세운 계획에 대한 수정 없이 꾸준하게 전동화 계획을 진행하며 예정했던 대로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그동안은 현대차그룹 산하 브랜드 중 대부분이 세단과 SUV의 중간 정도인 크로스오버나 SUV 형태로 제품을 선보여왔는데, 이번에 기아에서 처음으로 전기 세단 EV4를 출시했다. 츌시에 앞서 실물을 미리 공개했다고는 하지만 화려한 행사 없이 제품을 출시해 조금 의아하기도 했는데, 이번에 시승회가 마련되어 직접 실물을 살펴보고 실력을 확인해보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E-GMP 플랫폼 최초의 준중형(C 세그먼트) 세단으로 출시된 EV4는 흔히 떠올리는 세단의 정석적인 모습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보통 세단하면 3박스 형태의 디자인을 생각하지만, EV4는 루프 라인이 거의 뒷문 근처까지 이어지는 2박스 형태의 디자인인데다 이후로는 큰 각도 변화 없이 완만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세단보다는 해치백이나 왜건의 느낌이 더 강하게 드는 편이다.


전면부 디자인은 세로형 주간주행등 옆으로 헤드라이트를 배치했는데, 최근 모델들이 라이트바로 좌우 라이트를 이어 넓어보이게하는 것과 달리 EV4는 라이트바가 없지만 보닛과 범퍼 사이 틈새로 좌우 라이트가 이어지도록 해 비슷한 효과를 냈다. 후면에서 눈에 띄는 요소 중 하나는 루프 양 끝단에 배치한 스포일러로, 공기역학을 고려해야 하는 전기차인 만큼 기존 내연기관 세단과 다른 차별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차량의 크기는 전장 4,730mm, 전폭 1,860mm, 전고 1,480mm에 휠베이스 2,820mm, 무게는 스탠다드가 1,745~1,760kg, 롱레인지가 1,835~1,850kg(사양 별 차이있음)이다.




실내는 최근 기아 제품들이 추구하는 방향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계기판과 공조장치 제어부,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을 하나로 이은 와이드 디스플레이와 중앙 송풍구 상하로 배치된 단축메뉴 버튼과 공조장치 주요 기능 조절용 레버를 배치했는데 전체 디자인을 해치지 않는 형태로 구성되어 깔끔한 실내 모습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좌우 앞좌석 사이로 보통 콘솔 박스를 배치하지만 EV4는 이를 없앤 대신 슬라이딩 테이블을 배치해 필요에 맞춰 쓸 수 있다. 그리고 마치 콘솔박스 뚜껑처럼 생긴 부분은 뒤로 펼쳐 사용할 수 있어 이동 중 간단하게 음식을 먹거나 노트북 등으로 작업할 때 편리하다. 기존과는 다른 디자인으로 이 주변에 배치되는 버튼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고 시트 관련 버튼들은 도어 레버 옆으로 옮겼는데 디자인을 일치시켜 어색함 없이 잘 어우러진다.



앞 시트는 릴랙션 컴포트 시트로 운전자와 동승자 모두 편안하게 탈 수 있고, 뒤 시트는 6:4 폴딩이 가능해 필요에 따라 접어내려 짐을 적재할 수 있다. 하지만 뒷좌석 폴딩 기능은 어지간해선 쓸 일이 없겠다 싶은 것이 트렁크 공간이 외관에서 보는 것보다 상당히 넓다. 루프 스포일러부터 테일게이트까지가 모두 적재공간인데다 뒤 시트가 수직이 아닌 뒤로 기울어진 형태이기 때문에 적잖이 들어가는 편. VDA 기준 490L로 이 정도면 그랜저보다도 약간 큰 정도다.

EV4는 2개 사양으로 출시된다. 기본형인 스탠다드와 주행거리를 늘린 롱레인지 2종이고, 여기에 스포티함을 더하는 디자인 요소가 추가되는 GT-라인이 더해진다. 스탠다드는 58.3kWh, 롱레인지는 81.4kWh의 리튬이온 배터리가 탑재되는데, 인증받은 전비는 스탠다드와 롱레인지 모두 5.8kWh, 주행거리는 스탠다드가 354km, 롱레인지는 533km(모두 17인치 휠 기준)이다. 어떤 용도로 쓰더라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을 수준인데, 실제 주행은 어떨까?

이번 시승에선 전비왕 선발대회를 함께 진행한다고 한다. 자동차 기자들 중 워낙 고수가 많다보니 1등을 노리는 건 어림도 없지만, 그만큼 전비에 자신 있으니 진행하는 것일 터. 그렇다고 전비를 높이기 위해 특별히 노력을 하기보단 흐름에 맞춰 달리는 쪽을 선택했다. 시내 구간을 지나 고속도로에 오르자마자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기능을 켜고 앞차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주행 보조 기능에 대해서야 긴 말이 필요할까. 고속도로 주행보조 2를 비롯해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차선 유지 보조 2, 차로 이탈방지 보조, 스티어링 휠 그립 감지, 운전자 주의 경고 등 다양한 기능들이 갖춰져 있다. 특히 운전자 주의 경고의 경우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놓는 것 뿐만 아니라 스티어링 휠 뒤에 배치한 운전자 전방 주시 경고 카메라를 통해 전방 도로 상황이 아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에 대해서도 경고를 보내 안전 운전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안전운전에 큰 도움이 된다. 조금 불편하다고 기능을 꺼놓는 멍청한 일은 하지 않기를.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지방도를 달리기 시작하다보니 정체 구간이 나타난다. 아무래도 전방 교차로의 신호때문인 듯 한데, 내연기관 차량이었다면 연비를 떨어뜨리는 악조건이었겠지만, 굴러가지 않아도 전기 소모가 없는 전기차에선 크게 신경쓰이는 부분이 아니다. 조금 답답한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음악을 들으며 최대한 느긋하게 달리기 위해 애쓰다 보면 어느새 정체구간을 빠져나와 여유롭게 달릴 수 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해 확인한 전비 기록은 7.8km/kWh로, 정체 구간과 고속 구간을 모두 경험했음에도 기대 이상의 전비를 기록했다. 고속도로에서도 최적의 전비를 뽑아내는 속도가 아닌, 흐름에 맞추기 위해 ACC를 100km/h 정도로 맞추고 달렸음을 생각하면 상당한 수준. 물론 예상했던 대로 1위 기록은 아니었고 공식 1위 기록은 8.8km/kWh였는데, 비공식적으로는 9km/kWh를 넘긴 사람도 있다고 하니 EV4의 엄청난 경제성에 놀라게 된다. 요즘 1kWh를 충전하는데 완속 기준 300원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인데, 1kWh당 300원으로 가정하면 1km를 달리는데 38.4원, 경제적으로 운전하기 위해 조금만 노력하면 그보다 낮은 금액으로 달릴 수 있다. 물론 이 금액은 충전 사업자가 기본 표기한 금액이고 여기에 각종 카드할인까지 더하면 훨씬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출발지로 되돌아갈 시간. 이제부터는 아까 못다한 성능 테스트를 해볼 시간이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된 짧은 와인딩 코스에서 앞서가는 차량을 추월하기 위해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자 상체가 시트에 푹 파묻힐 만큼 강력한 가속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무게도 기존 전기차들보다 가벼우니 핸들링이 꽤나 빠른 편. 그리고 세단답게 코너를 돌아나오는 과정에서도 번잡스런 움직임 없이 바로 자세를 바로잡기 때문에 다음 커브를 준비할 여유가 생긴다. 짧은 코스였지만 은근한 재미를 맛봤더니 서킷에서 타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다행히 기아에서 고성능 모델인 EV4 GT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리면 서킷에서 EV4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기차의 여러 장점 중 하나는 낮은 유지비용에 있다. 특히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은 유류비는 전기차를 타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부분. 그런 전기차 중에서도 압도적인 전비를 보여주는 EV4라면 시내용이든, 장거리 이동용이든 모두가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보여줄 것이다. 여기에 이렇다할 소모품 교체도 거의 없는 전기차, 합리적인 선택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유일한 답안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