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는 없고, 몇 달 새 1억이 뛰는데”···집값 공포에 ‘풀대출 서울 자가’ 선택하는 30대
“지금 안 사면 더 비싸져” 패닉 매수 심화
30대 표심 ‘흔들’…“공급 신호부터 달라”

직장인 김모씨(35)는 결혼식을 1년이나 남겨뒀는데 최근 서둘러 집을 샀다. 지난 4월 서울 은평구의 준신축 9억원대 아파트를 매수했다. 주택담보대출 한도인 6억원까지 빚을 졌다. 결혼해서 어디 거주할지 미리 봐뒀는데, 전세 매물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매수를 결심했다.매월 원리금 300만원 가량을 갚아가야 하는 게 부담이 되지만, 매달 200만원 안팎 월세를 내는 것보단 집을 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는 “지금 사지 않으면 결혼할 때는 더 오를 것 같았다”며 “임장을 보는 몇개월 동안 1억이 오르는 걸 보면 지금 사야 한다는 위기감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아파트 매수자 10명 중 절반 가량이 3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 30대가 서울 아파트 매수 시장의 ‘큰 손’이 됐다. 2020년부터 30대와 40대의 매수 비중은 엎치락뒤치락했지만 올해 들어서 30대 매수 비중이 가파르게 확대되는 추세다. 전세는 없고 월세는 비싸고, 직장이 밀집한 서울·수도권의 신규 주택 공급 전망도 불투명해진 환경에 지금 사지 않으면 더 비싸게 집을 사야 한다는 불안 심리가 퍼진 탓이다. 이들의 불안은 최근 서울시장 선거의 30대 표심 변화로도 이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올해 한국부동산원의 서울 아파트 연령대별 매수자 통계를 보면, 올해 1월만 해도 30대 비율은 32.6%였으나 2월 40%를 찍고 3월 43.4%를 넘어 지난 4월 45.8%까지 올라왔다. 서울 아파트 매수자 10명 중 절반가량이 30대라는 뜻이다.
반면 40대 매수자 비율은 올해 1월 25.1%였고, 4월 26.5%로 거의 비슷했다. 지난해 4월 40대 매수자가 33.3%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1년새 40대 매수자가 현격히 쪼그라들었고 30대는 확연히 늘어났다.
30대의 아파트 매수세를 가장 빠르게 느끼는 이들은 공인중개사들이다. 서울 광진구의 A 공인중개사는 “예전엔 자녀도 없는 젊은 부부가 집 보러 오는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젊은 부부가 많다”며 “계약서를 작성할 때 비로소 매수자 연령대가 30대 초중반 정도란 걸 알고 내심 놀란 적이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30대의 ‘폭풍 매수’ 배경에는 전세 ‘가뭄’으로 ‘반강제 매수’ 또는 지금 안 사면 더 오를 것이라는 ‘포모(FOMO·기회 상실 공포) 매수’가 자리 잡고 있다.
김씨는 특히 지난달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15억원 이하 아파트값 상승세에 대해 젊은 세대의 실수요가 유입됐기 때문이라면서 “그렇게 걱정할 부분이 아니다”라는 발언에 분노했다. 그는 “너무 화가 났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집을 사고 싶어서가 아니라 전세 매물이 없어서 내몰린 것”이라고 말했다.
“5·9 정책(다주택자 중과 부활) 때문에 매물은 줄어드는데 수요가 몰리면서, 집주인이 호가를 던지면 다급한 신혼부부들은 그거라도 잡아야 하니 잡는 겁니다.”
전·월세난은 이미 지표로도 확인된다.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지난해 5월부터 100을 넘어서 지난 4월 109.5를 기록했다. 전세 기간을 사실상 4년(2+2년)으로 늘린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영향이 미쳤던 2021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세수급지수가 100보다 크면 전·월세 수요가 공급보다는 많다는 뜻이다.
전세 매물이 부족하다 보니 전세가는 올해 들어 매달 0.5% 넘게 올라 지난 4월엔 0.82% 상승했다. 월세가도 0.73% 올랐다.

결혼 3년차인 박모씨(38)는 최근 ‘포모’를 강하게 느끼고 있다. 집을 사려고 지난해 여름부터 임장을 다니다가 배우자의 임신으로 매매를 미루게 됐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시행되면 집값이 좀 내려가지 않을까 기대감도 조금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집값이 더 오르는 걸 보면서 그는 “지금 서울에 깃발을 꽂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다는 포모가 왔다”고 말했다.
올해 초 서울 강남권과 한강벨트의 아파트값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시행 발표 영향으로 한때 하락했으나 강북권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가팔랐다. 특히 5월 9일 이후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시행되면서 올 초 하락했던 강남권마저 최근 들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국면이다.
서울은 아니지만 전세난에 시달리다 경기 수원에 9억원대 아파트를 매수한 이혜진씨(31)는 원래 집을 살 생각이 없었다. 눈여겨봤던 한 아파트의 전세 매물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20여개였는데 올초가 되니 단 한 건도 없는 걸 보면서 매매를 결심했다. 그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을 두고 “평균적으로 강남의 집값이 내려간 건 맞지만, 강남은 어차피 우리가 살 지역이 아니라서 전혀 와닿지 않는다”며 “결국 30대가 살만한 지역은 다 올랐기 때문에 탁상행정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집을 사기 위해 결혼을 결심한 30대도 있다. 김모씨(34)는 맞벌이 부부가 아니면 매수가 불가능한 서울 집값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눈여겨보던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의 8억원대 아파트가 지난해 연말 12억원까지 폭등하는 걸 보면서 조급함을 느끼고 있다. 그는 결혼식 날짜도 잡기 전인데도, 임장부터 다니고 있다. 그는 30대 실수요자의 불안감을 달래줄 수 있는 정부의 핀셋 대책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좀 기다리면 공급이 될 거야’ 이런 시그널이라도 줬으면 좋겠는데, 다주택자만 잡으려고 하니까 집값만 오르지 않냐”고 말했다.
이처럼 ‘패닉 바잉’ 30대의 불만이 지난 6·3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투표로 표출됐다는 분석도 있다. 오 시장 측은 선거 내내 ‘부동산 지옥’을 슬로건으로 걸었다. 당시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에서 서울 30대 유권자 51.1%가 오 시장을, 44.2%가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실제로 서울 아파트 상승세가 다시 본격화된 5월9일을 기점으로 여론조사상 30대 표심 변화를 찾을 수 있다. 서울 아파트는 5월9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전후해 다주택자 매물이 급감하면서 다시 상승세가 본격화됐다.
KBS·한국리서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일 기준 4월25~27일만 해도 30대 지지율은 오 시장 30%, 정 후보 36%였다. 하지만 5월11~14일엔 각각 40%, 28%로 반전돼 막판까지 오 시장 우위가 유지됐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정부가 공급을 늘리고 있고, 늘어날 것이라는 ‘신호’를 강하게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는) 가격이 떨어지는 걸 원한다지만 공급 물량을 없애는 정책을 폈다”며 “서울에 신규 택지로 10만호 공급 등 정부가 구체적인 공급 신호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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