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올리브영 페스타 행사장을 둘러보던 중 가장 먼저 발길이 멈춘 곳은 '올리브영 K뷰티 에딧' 매대였다. 20일부터 미국 전역 580여개 세포라 매장에 설치될 공간이다. 세포라 핵심 매대에 '올리브영' 간판이 걸린 풍경은 K뷰티의 달라진 위상과 올리브영의 존재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두 기업은 서로의 주력 시장에 진출했다가 모두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경험을 공유한다. 올리브영은 2018년 미국 시장에 도전했지만 2020년 발을 뺐고, 세포라는 2019년 한국에 진출했으나 2024년 사업을 접었다. 서로의 시장에서 고배를 마셨던 두 기업이 이제는 미국 시장에서 파트너로 마주 앉았다.
현재로서는 이상적인 파트너십에 가깝다. 세포라는 급증하는 K뷰티 수요를 붙잡고 Z세대 고객층을 확대할 수 있는 강력한 파트너를 얻었다. 아모레퍼시픽(에스트라·이니스프리), LG생활건강(닥터그루트), 구다이글로벌(조선미녀) 등 한국 브랜드가 이미 입점해 있지만 현재 북미 K뷰티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은 인디 브랜드다. 세포라로서는 올리브영의 빠른 트렌드 포착 능력과 큐레이션 역량을 활용해 뷰티 포트폴리오의 빈틈을 메우려는 계산이다.
올리브영 입장에서도 득이 크다. 직접 점포를 확대하는 부담을 지지 않고도 미국 전역 580여개 세포라 매장을 통해 '올리브영'이라는 이름을 현지 소비자에게 각인시킬 수 있어서다. 독자 출점에 앞서 브랜드 인지도와 소비자 반응을 축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협업은 북미 사업 확장을 위한 효율적인 교두보에 가깝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이번 협업을 '트로이의 목마'에 비유하기도 한다. 세포라가 K뷰티 열풍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잠재적 경쟁자의 시장 안착을 돕고 있다는 해석이다.
소비자들이 세포라 매장에서 '올리브영이 엄선한 K뷰티'를 경험할수록 올리브영의 브랜드 인지도 역시 함께 높아진다. 향후 독자 매장과 온라인 사업 확대에 나설 경우 이는 강력한 자산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올리브영은 K뷰티 인디 브랜드 큐레이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럭스에딧'과 같은 프리미엄 뷰티 포맷까지 미국에 안착시킨다면 세포라와의 경쟁 구도도 한층 선명해진다. 세포라가 들여온 것은 K뷰티 브랜드가 아닌 또 하나의 뷰티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올리브영이 완벽한 승기를 잡은 것은 아니다. 세포라 입점은 올리브영이 가진 유통 파이프라인의 영향력을 입증한 성과다. 그러나 플랫폼 역할만으로는 수익성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유통업은 본질적으로 브랜드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사업이다. 거래액이 늘어날수록 외형은 커져도 수익은 제조사와 브랜드, 유통 채널 사이에서 분산된다.
고객을 모으는 것은 유통망이지만 그 고객을 수익으로 연결하는 것은 결국 브랜드다. 세포라가 자체 브랜드(PB)인 '세포라 컬렉션'을 키우며 수익성을 높여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에이피알과 구다이글로벌이 글로벌 시장에서 약진한 원동력도 결국 메디큐브와 조선미녀라는 브랜드 경쟁력이었다. 현재 올리브영이 보유한 PB는 10여개에 달하지만 이번 세포라 입점 브랜드 19개 가운데 PB는 바이오힐보가 유일하다.
올리브영은 이미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트로이 목마의 진짜 승부는 그 안에 무엇을 실었느냐에 달려 있다. 유통 플랫폼으로 쌓아온 영향력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기 위해서는 바이오힐보와 웨이크메이크 같은 PB가 독자적 브랜드로 당당히 서야 한다. 현지 소비자가 먼저 찾는 브랜드 파워를 확보하는 순간 올리브영은 비로소 K뷰티 유통사를 넘어 글로벌 뷰티 기업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이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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