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품은 회화적 상상력…낯섦에 대한 향수를 그리다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1. 1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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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가 찜한 작가·갤러리
⑤ 94년생 유예림-갤러리 기체

◆ MZ세대가 찜한 작가?갤러리 ◆

유예림, Ancestral Wisdom(조상의 지혜·2022).

제목부터 재미있다. '우유가 상한 것은 전적으로 날씨 탓'이라니.

그런데 그림 속 풍경이나 등장인물이 너무나 낯설다. 황량한 주차장 배경에 그림 속 우유 광고판만 제목과 연결된다. 작가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진다.

1994년생 유예림 작가의 신작 19점을 품은 개인전 '조상의 지혜'가 종로구 화동 갤러리 기체 전관에서 펼쳐졌다. 이국적인 풍경과 인물이 등장하는데 어떤 상황인지 도통 짐작도 안 된다. 덩치 큰 인물은 물고기처럼 작은 이가 아주 많아서 어색하다. 화면 속에서 어정쩡한 구도로 등장하니 오히려 화면 밖 상황이나 화면 전후의 시간을 상상하게끔 한다.

전시장 1층에 전시 제목과 같은 대형 그림(227.3×181.8㎝)에서 땅 밑에 한 노인이 죽은 듯 누워 있고, 땅 위에는 그가 유령처럼 떠서 강아지와 교감한다. 반려견 두 마리를 산책시키는 두 사람은 그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눈치다. 수직 수평 구조가 중세 유럽 종교화를 전복한 듯싶다.

전시장에서 만난 유예림 작가는 "낡은 건물 벽을 만지면서 그 장소에 쌓인 시간과 죽음을 떠올리는 행위는 알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며 "내가 경험해본 적 없는 날들에 대한 그리움이므로, 결국은 허구"라고 밝혔다. 제목인 '조상의 지혜'는 묵은 각질처럼 켜켜이 쌓인 시간 이미지를 중립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열쇠 단어로 품었다.

작가는 작품마다 독특한 제목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제목은 작품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하지만, 방해하는 요소도 된다.

기존에는 작가가 문장이나 문장들의 결합으로 이뤄진 가상의 내러티브를 이미지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면, 이번 개인전에서는 작가가 가보지 못한 장소나 대상, 그곳에 축적된 시간에 대한 허구적 향수를 이미지로 재현했다. 기존에 흡수되는 느낌이 좋아 택했던 나무 패널 대신 이번에는 캔버스에 그린 것도 달라진 점이다.

다만 인종이나 성별이 모호한 주체와 장소나 시간도 알 수 없는 배경으로 그림을 그려 작가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감추는 태도는 여전하다. 요리사의 칼질이나 깨진 자동차 유리창, 블라인드를 여는 모습 등 일상 장면이 기이한 기운을 풍긴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생물과 비생물 경계가 모호한 '알'도 작가가 흥미를 가지는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허구의 이야기를 촘촘히 구축하고 생경한 이미지로 재해석해 내는 데 능통한 작가는 홍익대 회화과 출신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 졸업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초 유예림 작가와 전속 계약을 맺은 갤러리 기체는 베를린 기반 페레스프로젝트와 손잡고 독일 레지던시를 거쳐 올 해 말 밀라노에서 개인전을 열기로 했다. 윤두현 갤러리 기체 대표는 "세대나 지역성을 탈피해 이야기를 구축하고 작업을 만드는 방식이 흥미롭다"면서 "작가 관점에서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독립 큐레이터를 적극 기용하는 유연한 연대 시스템을 갖췄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도 작가가 점토로 빚던 입체 작품을 브론즈 등으로 바꾸는 등 새로운 시도를 도왔다. 기체는 1988년생 옥승철과 유지영, 이동혁, 장파 등을 전속으로 두고 있다. 전시는 28일까지.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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