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뉴욕 양키스와 달라진 방망이

지난해 뉴욕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 우승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그러나 우승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격려보단 비판이 이어졌다.

지금이야 다저스가 우승이 당연한 팀이 됐지만, 원래 이 분야 원조는 양키스였다. 양키스의 역사가, 곧 메이저리그의 역사일 때도 있었다.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 조 디마지오, 미키 맨틀, 요기 베라,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등 양키스가 배출한 전설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쌓은 금자탑은 후배들이 지켜야 할 공든탑이었다. 그 누구도 양키스의 명성에 흠집을 내선 안 됐다. 양키스는 매년 우승을 목표로 달려야 했고, 우승이 아니면 실패라는 분위기가 기저에 깔렸다.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은 이러한 눈높이가 "부담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뉴욕 양키스 로고 (양키스 SNS)

우승 문턱에서 무릎을 꿇은 양키스는 고개를 숙일 시간도 없었다. 곧바로 다음 시즌을 위한 작업에 나서야 했다. 최우선 과제는 후안 소토의 잔류였다. 양키스는 16년 7억60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제안했다. 하지만 소토는 더 확실한 금액을 보장한 뉴욕 메츠로 떠났다(15년 7억6500만). 더 많은 돈을 찾아간 것을 두고 양키스를 나무랄 순 없었다.

양키스는 넋을 놓지 않았다. 소토를 대신할 또 다른 선수들을 재빨리 영입했다. 맥스 프리드와 데빈 윌리엄스, 왕년의 MVP를 수상한 코디 벨린저와 폴 골드슈미트도 데려왔다. 비록 소토는 놓쳤지만, 선발과 불펜, 타선을 골고루 채우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준비
양키스는 전력의 재구성이 필요했다. 소토뿐만 아니라, 주전 2루수이자 리드오프였던 글레이버 토레스도 붙잡지 않았다. 한때 마무리였던 클레이 홈즈도 떠나보냈다.

토레스는 리드오프로서 준수했다. 그러나 2루 수비가 최악이었다. 지난해 실책이 가장 많았다(18개). '수비 실점 방지'를 뜻하는 디펜시브런세이브(DRS)와 '평균 대비 아웃카운트 처리'를 뜻하는 OAA(Outs Above Average)도 모두 마이너스였다(DRS -11 & OAA -7). 시즌 후반 마무리에서 강등된 홈즈 역시 지난해 최다 블론 13개를 범하면서 한계를 노출했다.

토레스가 나간 2루는 원래 2루수였던 재즈 치즘 주니어에게 맡겼다. 지난해 팀 사정상 3루수로 나왔지만, 치즘이 자신 있는 포지션은 2루수였다. 치즘은 스프링캠프에서 유격수 앤서니 볼피와 함께 "올해 가장 많은 병살타를 처리하겠다"고 장담했다.

치즘 포지션별 수비 이닝 (수비율)

2루수 - 1,357.1이닝 (.970)
중견수 - 1605.0이닝 (.988)
3루수 - 400.1이닝 (.940)
유격수 - 329.2이닝 (.931)


불펜 정비는 외부 영입과 내부 단속을 병행했다. 지난해 활약이 좋았던 팀 힐을 잔류시켰고(1년 285만) 마무리 데빈 윌리엄스와 경기 후반에 쓸 수 있는 페르난도 크루스를 트레이드 영입했다.

지난해 69경기 평균자책점 4.86이었던 크루스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스플리터를 구사한다. 스플리터의 통산 피안타율이 1할도 채 되지 않는다(262타수 26안타 0.099). 지난 3년간 스플리터 헛스윙률도 메이저리그 1위였다.

2022-24 스플리터 헛스윙률 (500구)

58.4% - 페르난도 크루스
56.7% - 펠릭스 바티스타
52.7% - 마크 라이터 주니어
51.2% - 트레버 스테판


양키스가 신경 쓴 또 다른 부분은 포수였다. 뛰는 야구 방어에 취약했던 호세 트레비뇨를 정리했다. 트레비뇨는 2022년 골드글러브 시절 보여준 도루 저지력이 갈수록 떨어졌다(2024년 도루 저지율 18.6%). 가능성을 보인 오스틴 웰스에게 주전을 맡기고, 뒷받침을 해줄 수 있는 포수들을 여러 명 데리고 왔다.

굿바이 소토 (메츠 SNS)

소토의 이탈은 전력 누수다. FA를 앞두고 더 폭발했던 소토를 대신할 선수는 몇 명 없다. 벨린저 역시 "소토의 공백을 메우는 것보다 우리 각자의 역할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측면에서 양키스는 크고 작은 영입으로 투타 균형을 잘 맞춰놓았다.

강점
지난해 양키스의 강점은 빅볼이었다. 아메리칸리그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냈고(237홈런) 유일하게 800득점을 넘긴 팀이었다(815점). 팀 OPS 역시 리그 1위였다.

2024 AL 팀 OPS 순위

0.761 - 양키스
0.751 - 볼티모어
0.741 - 보스턴
0.741 - 휴스턴
0.726 - 미네소타


큼직큼직한 야구를 잘했던 양키스는 전력 차이가 분명한 팀에게는 강한 면모를 보였다. 잔실수가 나와도 홈런과 장타로 분위기를 가져왔다.

문제는 강팀을 만났을 경우다. 포스트시즌 단기전에서 세밀한 야구가 부각되는 건 전력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찰나의 순간에 승패가 결정된다. 잔실수가 나오면 되돌릴 방법이 적다. 그래서 기본적인 루틴 플레이가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지난해 양키스는 수비와 베이스러닝에서 낙제점이었다. 특히 베이스러닝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실력이 떨어졌다. <팬그래프> 베이스러닝 지수 전체 최하위, 도루와 추가 진루로 점수를 합산하는 <스탯캐스트> 베이스러닝 득점 가치도 전체 최하위였다.

<팬그래프> 베이스러닝 지수 하위

-12.8 : 토론토
-12.9 : 휴스턴
-14.3 : 에인절스
-17.0 : 양키스

<스탯캐스트> 베이스러닝 가치 하위

-10 : 휴스턴
-11 : 에인절스
-14 : 토론토
-16 : 양키스


올해 양키스는 이러한 약점이 보완될 전망이다. 소토는 공격에서 최정상급이었던 반면, 수비와 베이스러닝은 평균 이하였다. 그런데 벨린저는 뛰어난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 수비와 베이스러닝에서도 기여할 수 있는 선수다. 골드슈미트 역시 32도루를 해낸 전성기 시절은 아니지만, 여전히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지난 4년간 도루 성공률 95.3%(41/43)에서 알 수 있듯, 루상에서 찬물을 끼얹는 주자가 아니었다.

치즘이 2루를 지키는 내야 수비는 보다 안정될 것이다. 치즘은 최신 수비 지표에서 플러스를 보이는 2루수다(통산 DRS 8 & OAA 7). 토레스와 비교할 수가 없다.

코디 벨린저 (양키스 SNS)

여기에 외야 수비도 개선된다. 벨린저의 합류로 애런 저지가 중견수를 내려놓는다. 지난해 저지는 소토가 오면서 어쩔 수 없이 중견수를 봤지만, 썩 좋은 수비를 보여주진 못했다(중견수 DRS -9 & OAA -6). 월드시리즈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실책까지 저질렀다.

다시 우익수로 이동하는 저지는 수비에서 부담을 덜어낸다. 데뷔 때부터 맡은 우익수는 중견수보다 훨씬 편안한 곳이다. 수비 지표도 중견수와 차이가 드러난다(통산 DRS 58 & OAA 17). 수비가 편해지면 당연히 공격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누군가는 "소토가 없는 저지가 고립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저지가 62홈런을 친 2022시즌에는 소토가 없었다. 중견수 수비 부담을 벗어난 저지의 공격력은 더 무서워질 것이다.

토피도
양키스는 정규시즌 개막 시리즈에서 밀워키를 만났다. 밀워키는 지난해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1위 팀이었다. 이 3연전에서 양키스는 무시무시한 화력을 뽐냈다. 1차전은 넉 점으로 승리했지만, 2차전은 20점, 3차전은 12점을 뽑으면서 대승을 장식했다.

완승의 원천은 홈런이었다. 1차전에서 오스틴 웰스가 개막전 리드오프 홈런을 친 최초의 포수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2차전에서는 홈런이 무려 9개나 쏟아졌다. 저지가 개인 통산 3번째 3홈런 경기를 선보였다. 양키스는 3차전에서도 저지의 홈런을 포함해 홈런 4개를 터뜨렸다. 개막 첫 3경기 동안 홈런 15개를 친 역대 두 번째 팀이었다.

개막 첫 3경기 최다 홈런

15 - 양키스(2025)
15 - 디트로이트(2006)
13 - 다저스(2019)


이 시리즈에서 홈런만큼 화제가 된 건 일부 양키스 타자들이 쓴 방망이였다. 양키스 중계진은 2차전에서 볼피의 달라진 방망이를 소개했다. 볼피의 방망이는 일반 방망이보다 라벨 부분이 짧고 몸통 부분이 더 길었다. 또한, 몸통 부분에 목재를 더 넣은 것처럼 두툼함이 도드라졌다. 이 모양이 어뢰(Torpedo) 혹은 볼링핀과 닮았다고 소개됐다.

볼피의 방망이 (중계 화면 캡쳐)

볼피는 이 특수 제작된 방망이를 몸쪽 높은 공에 대응하기 위해 쓰고 있다. 실제로 2차전에서 그 코스의 공을 홈런으로 날렸다. 양키스는 볼피와 치즘, 벨린저, 웰스, 골드슈미트가 이 방망이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15홈런 중 9홈런을 이 방망이로 때려냈다. 3차전 홈런 2개를 친 치즘은 "느낌이 좋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규정에 어긋나는 건 아니다. 규정집 3.02항에 명시되어 있는 지름의 크기(2.61인치 이하)와 길이(42인치 이하), 모양 등에서 결격 사유가 없다. 일반 방망이와 디자인이 다르기 때문에 사무국 승인도 받은 상태다. 양키스가 불법을 행했다는 건 잘못된 시선이다.

이 방망이를 양키스만 쓰는 것도 아니다. 미네소타의 라이언 제퍼스, 탬파베이의 주니어 카미네로와 얀디 디아스 등도 이 방망이를 활용했다. 시카고 컵스와 볼티모어, 보스턴도 이 방망이를 알고 있었다.

이 방망이는 양키스 마이너리그 타격 코디네이터였던 애런 린하트가 발명했다. 린하트는 MIT 출신 물리학자로, 미시건대학교에서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런데 투수들이 지나치게 유리해진 야구판을 바꾸기 위해 아예 전공을 바꾼 인물이다. 괴짜 물리학자였다.

린하트는 틈만 나면 선수들에게 스윙할 때 편의성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수많은 고민과 연구를 거듭한 끝에, 질량 분포를 절묘하게 가져가는 최적의 방망이를 만들었다. 그 방망이가 오늘날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토피도(Torpedo)다. 현재 마이애미 필드 코디네이터로 보직을 옮긴 린하트는 이 방망이 덕분에 엄청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마치 요술 방망이처럼 여겨지는 토피도는 당분간 유행처럼 번질 기세다. 너도 나도 주문 제작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직은 표본이 너무 적다. 양키스의 화력이 정말 이 토피도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어제도 캔자스시티에게 11점을 내준 밀워키 투수들의 난조도 감안해야 한다.

한편, 저지는 토피도에 관해 "굳이 필요 없다"고 답했다.

과제
토피도를 배제해도 양키스는 작년하고 달라졌다. 2차전에서는 실책 5개를 연발했지만, 작년에 비하면 수비가 견고해졌다. 수비가 든든하면 투수들이 더 믿고 던질 수 있다. 근접전에서 보여줘야 할 지키는 야구의 완성도도 높아진다.

루상에서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아웃카운트를 그냥 헌납하지 않고, 주자들이 시시때때 추가 베이스 진루를 노렸다. 이처럼 스몰볼에 빅볼이 더해지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물론, 안심하기는 이르다. 이제 개막 첫 시리즈가 끝났을 뿐이다.

양키스는 시범경기 기간 동안 부상자가 속출했다. 에이스 게릿 콜은 토미존 수술로 이번 시즌 복귀가 불가능하다. 선발진을 구축하는 루이스 힐(광배근)과 클락 슈미트(어깨)도 부상으로 빠지면서 선발진 구성이 여의치 않다. 오죽하면 원래 선발진에서 밀렸던 마커스 스트로먼이 3선발로 들어왔다. 카를로스 로돈과 맥스 프리드를 제외하면 선발진이 매우 불안정하다. 선발진에서 구세주가 나와줘야 한다.

양키스의 개막 첫 시리즈는 강렬했다. 단순히 토피도 효과를 일컫는 게 아니다. 지난 겨울 구상했던 야구가 실현됐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었다.

우승권에 다가선 팀들은 강점을 강화하는 것보다 약점을 보강하는 게 중요하다. 양키스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그 약점은 단기전에서 더 발목이 잡힐 수 있었다. 달라진 양키스가 소토 없이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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