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정지’ 이진숙이 인류에 기여할 방법 [정준희의 ‘미디어 레퀴엠’]
방송과 통신을 아우르는 미디어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대통령 직속 중앙행정기관이다. 기획재정부·외교부·법무부처럼 기관의 장이 국무위원인 행정부처는 아니지만 위원장은 장관급, 부위원장은 차관급의 대우를 받는다. 위원장을 제외한 상임위원 4인의 권한에 큰 차이는 없다. 연간 3000억원 못 미치는 예산에 300명 미만의 소속 공무원을 두고 있는, 중앙행정기관으로서는 소규모에 속한다. 하지만 방송법·교육방송공사법·방송문화진흥회법 등 굵직한 소관 법령을 갖고 있으며, 방송통신 주파수 및 위성방송, 케이블방송, IPTV 사업 허가권과 종합편성채널·보도전문채널에 대한 승인권, 공영방송 이사 선임권 등을 가지고 있다. 또한 방송통신 내용물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매개로, 국내 미디어산업에 가히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조직이다. 그런 방통위에 전례 없는 일들이 연속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지 벌써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이 넘었다.
우선 현재 방통위는 단 1인의 상임위원만으로 굴러가고 있다. 예산이 그리 많지 않은 조직이다 보니 윤석열 대통령의 ‘건전재정’ 기조에 맞추기 위해서 상임위원에게 지급될 인건비라도 줄여야 하기 때문인 건 아니다. 2024년 7월31일 임명된 이진숙 위원장이 8월2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되자, 함께 임명되었던 김태규 부위원장만 홀로 남은 탓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회 교섭단체 몫인 상임위원 3인은 아직 추천되지 않았다. 어제오늘 일만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되었던 한상혁 전 위원장이 2023년 5월에 면직되고 ‘여2·야1’ 구도가 만들어졌다. 그 전후로 대통령은 국회 추천 몫의 상임위원 후보자 임명을 무작정 미뤘다. 어떤 이유를 댔건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처사다. 야권 우위 구도를 허무는 것은 물론이고 잠시간의 대등함조차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3개월 후 국회 추천 몫 상임위원이던 김효재·김현 위원이 임기 만료로 물러나자, 방통위는 지금까지 1년 넘게 (국회 추천 몫 3인이 빠진 채) 대통령 몫인 상임위원 2인의 기형적 체제로 운영돼왔다. 그 가운데 1인은 위원장이고 다른 1인은 (비록 형식상으로는 상임위원 가운데 호선으로 선출되지만) 부위원장이니, 본래 여야 5인으로 운영되어야 할 ‘합의제 중앙행정기관’이 결국 이들 둘만의 ‘합의’로 운영돼온 것이다.
엄청난 관운 자랑하는 의외의 핵심 인물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위원장은 하나같이 단명했다. 한상혁을 내쫓은 자리에 대통령이 임명 강행한 이동관은 자신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자 2023년 12월 자진 사퇴했다. 취임 4개월 만의 일이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하다가 자리를 옮긴 김홍일이 그 뒤를 이어 7개월 동안 머물렀다. 하지만 그 역시 국회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후 국회 본회의 의결 직전 사퇴하는 ‘이동관의 길’을 따랐다. 2024년 8월 이진숙이 왔다. 이번에는 사퇴하지 않았기에 탄핵소추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이후 직무정지에 들어가 있다. 임명 후 이틀도 지나지 않아서 물러나기에는 너무나 아쉽고 억울했던 걸까, 아니면 이번만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받아봐야겠다는 의지(혹은 헌재가 자신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리지 않으리라는 자신감)가 발동한 것일까. 사퇴한 위원장들과 사퇴하지 않고 버틴 위원장들의 속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장 3인이 직무를 수행했던 극히 짧은 기간에나마 나름 절실히 이뤄내고자 했던 일은 그간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이들이 거둔 실적이란 것 자체가 몇 개 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들이 그 짧은 시간에 위원장 혹은 위원장 직무대행 직을 통해 수행한 핵심 임무는 한결같았다. 공영방송 이사진 재편과 그에 뒤따른 사장 교체, 그리고 민영화. 한상혁 전 위원장이 해임된 직후 직무대행을 맡은 김효재 부위원장은 이상인 위원과 둘이서 KBS 야권 이사 2인의 해임과 보궐 이사 선임을 통해 여야 6대 5의 구도를 만들어냈다(그는 임기 만료 후 신문산업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인 언론진흥재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윽고 보궐 임기를 시작한 이동관 신임 위원장은 김효재 직무대행이 터놓은 물꼬를 키우는 일에 전력했다. 임명 직후인 2023년 8월30일에 KBS 이사회는 김의철 당시 사장에 대한 해임제청안을 의결했고 대통령은 이를 즉각 재가했다. 박민이 KBS 보궐 사장으로 임명된 것, 그리고 YTN 지분 매각에 이은 최다 출자자 변경 심사가 신속히 진행된 것 모두 이동관 위원장 재임기의 일이다. 이 또한 이상인 당시 부위원장과 함께 구성한 2인 체제의 성과물이다.
흥미롭게도 이상인 위원은 대통령이 최민희 위원 내정자에 대한 임명을 미루는 사이 대통령 몫 상임위원으로 임명된 후 재직했던 1년 남짓 동안 김효재 직무대행과도, 이동관 위원장과도, 그리고 김홍일 위원장과도 매번 짝을 이루어 중요한 결정을 해낸 의외의 핵심 인물이었다. 물론 두 번이나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으며 엄청난 관운을 자랑하던 그도 결국 자신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전에 사퇴함으로써 전임자들의 뒤를 따르기는 했지만 말이다. 오로지 장관급인 위원장에 대해서만 가능했던 국회 탄핵소추안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역사적 인물로서 기록되었으니, 그 역시 호사 아닌 호사, 혹은 필부필부로서는 평생을 바쳐도 누릴 수 없을 가문의 영광이었다고 해야 할까.
통상 3년 임기로만 보자면 (김효재 직무대행을 제외한) 이들의 직무수행 기간은 절대적으로 짧았지만 이진숙 현 위원장에 견주어 보면 상대적으로 긴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이진숙 현 위원장이 단 이틀 만에 이룬 성취는 이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탁월하고 뚜렷하다고 평가하는 게 온당하다. 무엇보다 그는, 무려 세 번에 걸쳐 발의된 국회 탄핵소추안이 본회의를 통해 가결되기 직전에 사퇴한 전임자들과는 달리 과감히 직무정지를 택했다. 그가 사퇴 대신 직무정지를 택한 것이 공직자로서의 어떤 용기나 확신 혹은 국회의 권능 행사를 회피하지 않겠다는 정당한 태도에 따른 행동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이진숙 위원장 역시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그리하여 상임위원 1인 단독으로는 내릴 수 없는 의사결정을 단행함으로써, 반드시 해내야 했던 (적어도 그들의 관점에서는) 절체절명의 과업이 있었던 건 전임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진숙 위원장은 과거 그 어떤 위원장들보다도 짧고 빠른 시간에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냈다. MBC 사장 선임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이사 교체를 통한 여권 우위 구도로의 재편 말이다.
사실 이 과업은, 위에서 서술한 현 집권 세력의 너무나 선명하고 일관된 의지에 비추어 보자면, 1년 전 한상혁 전 위원장 면직이 단행된 때에 이미 수행했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KBS와는 달리 방문진 이사 교체와 그에 뒤이은 사장 교체는 법원에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마침내 때가 찾아왔으니 그건 그토록 애가 타게 기다리던 2024년 8월 방문진 이사의 임기 만료 시점이다. 이에 맞춰 대통령 몫의 방통위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새로 임명하면, 그 2인 체제하의 결정이라는 요술봉을 다시 한번 휘둘러 마침내 방문진 이사회를 여권 우위의 새로운 진용으로 채울 수 있으리라 본 셈이다. 하지만 야권이 이진숙 신임 위원장에 대해서도 탄핵 카드를 꺼내들 것이 분명했다. 탄핵소추안 발의에서 국회 본회의 의결에 이르는 단 며칠만이라도 활용해서, 방문진 이사회를 뜻에 맞게 새로 구성한 다음 그렇게 구성된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MBC 사장을 임기 전에 내쫓을 수 있다는 계산을 세웠으리라.
이에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은 취임 당일인 지난 7월31일 KBS 이사 7인을 추천하고 방문진 이사 6인을 임명했다. 참고로 KBS 이사회의 총원은 11인이고, 방문진 이사회의 총원은 9인이다. 야권 추천 몫 이사 각각 4인과 3인에 대해서는 아예 심사해서 추천하고 임명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차피 국회 및 야권의 권한 행사에 대해선 신경 쓸 의향도 여유도 없다는 명백한 의사 표현이었다. 법의 ‘취지’가 무엇이건, 다수만 구성할 수 있다면 혹은 의결정족수 관련 규정이 없을 경우에는 심지어 다수가 아니어도, 합의제의 원리나 숙의의 원칙에 대한 일말의 존중도 없이, 권력을 독점한 자신들의 뜻대로 국가기구를 굴리겠다는 현 집권 세력의 주저함 없는 대리자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유사 사례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후진성
두 시간가량 진행된 2인 ‘전체회의’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방통위는 상임위원 5인에 의한 합의제 중앙행정기관이다. 정원의 과반에도 이르지 못하고 야권의 의사를 아우르지도 못하는 2인이 합의제 기구의 ‘전체’를 참칭하는 이 막장 드라마는 지난 1년을 지나는 동안 거의 정극인 양 당연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태규 부위원장을 ‘호선’하고, 방문진 및 MBC와 특수관계에 있는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기피 신청을 각하했으며, 공영방송 이사 후보자 83명에 대한 심사 후 추천과 임명까지 마쳤다. 이사 후보자 1인당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전임자들에 비할 바 없는 탁월함을 선보인 두 번째 성취다. 이 두 상임위원이 발휘한 행정 역량이 가히 초인적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문제는 이들의 역량이 평범한 인간의 수준을 지나쳐 물리 및 생리 세계의 제약마저도 뛰어넘었다는 데 있다. 이들이 그 두 시간 동안 주어진 문서를 읽고, 판단하고, 논의 후 합의하여 서명까지 마치고 의사봉을 두드릴 수 있었다는 건, 이들 두뇌의 논리회로와 팔다리의 근골격 및 신경계 작동이 그간 우리를 막아서던 전자기적·생리화학적 한계를 돌파해낸 결과였어야만 한다.
만약 국내 과학자들이 이에 관련한 실증 데이터를 수집해서 논문을 작성한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사실의 발견을 세계 최초로 보고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왕 길을 나선 김에 조금 더 힘을 낼 경우 기존 물리·화학·생물 이론을 깨는 새로운 통합이론의 출현도 기대해봄 직하다. 이쯤 되면 국내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이나 화학상, 생리의학상 수상을 노리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다만 자연과학 연구의 핵심인 재현성(reproducibility)과 반복성(replicability)이 보장되지 않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 것 같기는 하다. 따라서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이 당시의 행위를 과학자들 앞에서 재연할 수 있도록 언론계와 학계가 나서야 한다. 기껏해야 몇 년 가지도 못할 공영방송 이사를 바꾸고 사장을 교체하는 데 기력을 쏟기보다는,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훨씬 더 유익하고 영광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 짧은 시간에 그런 엄청난 일을 수행했을 정도라면, 마침 직무정지 상태라 시간도 넘쳐날 이진숙 위원장에게는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인류를 위해 기여할 더 큰 기회의 창이 활짝 열린 셈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방송통신 융합이라는 전환기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독립적 방송 규제기관이었던 방송위원회와 한국판 정보혁명을 이끈 정보통신부를 합쳐 합의제 중앙행정기관이자 정치경제적 독립성을 추구하는 대통령 직속기구라는 ‘제도적 아이러니’의 종합판을 만들어낸 게 2008년의 일이다. 모형으로 삼았던 미국의 FCC(연방통신위원회)나 영국의 오프콤(Ofcom) 등이 선택하지 않은 길이었지만, 독립적이되 힘이 없었던 방송위원회와 강력하되 독립적이지 못했던 정보통신부의 장점만을 취합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방통위는 신기하게도 양쪽의 단점만 뽑아낸 모습으로 진화 아닌 퇴화를 거듭해왔다. 그리고 그 퇴화의 양상은 지난 2년 남짓한 기간에 더욱 뚜렷하게 집중되어 있다. 국가를 막론하고 모든 제도에는 완벽함이란 게 있을 수 없지만, 이 정도의 경제와 민주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문화와 미디어 역량을 지닌 나라들 치고 이렇게나 후진적으로 미디어 규제기관과 공영 미디어를 다룬 사례는, 적어도 디지털 전환 이후 21세기의 조건에서는, 장담컨대 유사 사례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그럴 바엔 차라리 허울뿐인 독립과 합의를 떼고 여타 정부부처처럼 ‘독임제’ 중앙행정기관이 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공영방송도 이참에 죄다 민영화하는 편이 작금의 지긋지긋한 꼴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깔끔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제도를 망가뜨린 자들의 책임을 묻기보단 제도를 더 철저히 망가뜨려 아예 책임조차 묻지 못하게 하는 꼴이다. 아무튼 이 정부와 여당은 그간 ‘인적 요소’에 의해 모호하게 가려져 있던 ‘기존 제도 설계의 약점’을 그 어느 집권세력보다 명확히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에서만은 역사적 책무를 지나치게 잘 수행 중이라고 할 만하다.
이 어이없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전면적 제도 재설계에 대한 사회정치적 요구는 더 거세지고 더 전면화될 것이다. 그 물결은 비단 나의 전공 분야인 방송통신 규제와 공영방송 제도를 넘어, 의료·교육·복지·노동·환경 분야를 덮치고 마침내 헌법에까지 다다를 테다. 그때 갑자기 고개를 들고 나서서 새삼 ‘선명하고 효율적인 제도 설계’를 외치는 학자나 전문가들이 있다면 나는 진지하게 물을 생각이다. 그나마 명목적으로라도 독립과 합의를 전제로 삼은 제도였기에 그 정도의 논란이라도 일고, 급기야 법원이 막아 나서기라도 했던 그 시절, 당신들은 그 논란의 어느 편에 섰느냐고. 아니 그 제도 파괴를 문제 삼는 발언, 저항하는 행동이라도 하기 위해 단 한 번이라도 정색하고 나선 적이 있느냐고.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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