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재난에도 무죄, 무죄…법원 앞에서 멈춰 선 ‘국가기관 의무와 책임’[이태원 참사 2주기]
‘업무상과실치사상’ 현행 형법 한계
현장 모든 가능성 보고 안 한
‘하급 기관’에 책임 돌아가
용산서장만 금고 3년형
상급 기관일수록 책임 옅어져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지났지만 ‘이 비극은 누구의 잘못인가’에 대한 사법적 결론을 한국 사회는 아직 내리지 못했다. 권한은 위로 갈수록 커지고 책임은 아래로 갈수록 무거워지는 역설은 세월호와 이태원, 오송에서 되풀이됐다. 반복되는 재난, 이어진 책임 촉구에도 국가기관의 의무는 번번이 법원 앞에서 멈췄다.
이태원 참사 관련 책임으로 재판에 넘겨진 주요 공직자들에 대한 1심 선고가 최근 나왔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달 30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에게 금고 3년형, 박희영 용산구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17일에는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모두 항소했다.
협소한 주의의무 위반 해석
이들은 업무상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했을 때 적용되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업무상과실’은 업무와 관련해 ‘구체적·직접적 주의의무’가 있었는지, 있음에도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는지가 주요 판단 기준이다.
이태원 참사 책임으로 기소된 공직자들의 유무죄를 가른 변수 역시 ‘주의의무 위반’에 관한 해석이었다. 법원은 용산구 내 소관 사무를 관장하는 이 전 서장에 대해 법령과 매뉴얼 등에 정한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지만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반면 박 구청장에 대해선 인파 관리·통제와 관련해 자치구가 직접적·구체적인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재난안전법에 다중 운집으로 인한 압사 사고가 재난유형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 등의 이유를 들며 자치구의 참사 대응 주의의무를 좁게 해석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업무상과실치사 판단에서 주의의무와 책임을 어느 정도까지 져야 할 것인지 해석하는 것은 법원의 재량”이라며 “형사 책임에서는 직접적으로 잘못을 한 사람을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휘부에 책임 묻기 어렵다고 말하는 법리
상급 지휘부의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더 까다롭다. 법원은 김 전 청장이 참사를 예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보고 업무상과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전 청장에 대해 “1차적으로 용산서가 제공한 정보에 의존해 치안 수요 등 현장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현행법과 해석이 이렇다 보니 지시·보고 관계인 상하 기관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나는 할 만큼 했다”는 식의 공방을 벌이게 된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용산서는 “보고했고, 지원도 청했다”고 주장했다. 서울청은 “보고받은 적 없고, 지원 요청도 받은 게 없다”고 반박했다. ‘시민 안전’은 모든 기관이 나눠서 진 책무지만 ‘재난 대응’은 모든 가능성을 보고하지 않은 하급 기관 책임으로 집중된다. 이 때문에 책임을 묻는 건 용산서에 국한됐다. 경찰청, 서울시, 행정안전부 책임은 수사 단계에서 배제됐다.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서는 지휘부가 책임을 지기 어려운 구조”라며 “과실을 인정하려면 (참사를) 알거나 알 수 있어야 했는데, 지휘 체계가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다면 최상부 지휘부는 이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해양경찰 지휘부였던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김수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 등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지만 지난해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가 확정됐다. 역시 지휘부가 현장에서 벌어진 일들을 예견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형사처벌을 받은 건 징역 3년이 확정된 현장 지휘관 김경일 전 123정장이 유일했다.
형사적 책임은 면했지만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으로 국회에서 탄핵소추된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도 같은 법리가 등장했다. 헌재는 “다중 밀집 압사 사고의 위험성이나 이 사건 참사 당일 신고전화 등 위험 징후에 대해 사전에 행정안전부나 이 장관에게 별도로 보고되지 않았다”고 했다. 최 교수는 “지휘부에 과실 등 형사적 책임을 직접 인정할 수 없다면, 대응 체계 마련 책임을 규정하는 법을 정해 이를 준수했는지 따져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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