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답습 거부한 '베테랑2', 진화인가 퇴보인가

김지혜 2024. 9. 2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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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2015년 개봉한 영화 '베테랑'은 선(善)이 악(惡)을 응징하는 사이다 액션으로 전국 1,341만 관객을 사로잡았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주제로 삼아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장르 영화의 문법으로 유려하게 풀어내며 영화적 쾌감을 안긴 수작이었다.

류승완 감독이 故 강수연이 사석에서 한 말에서 착안해 만들었다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그해 최고의 대사로 각광받았고, "어이가 없네"라는 대사와 함께 보여준 유아인의 연기는 밈(Meme)으로 수년간 회자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9년, '베테랑'이 속편으로 돌아왔다. 데뷔 25년 차의 베테랑 연출자 류승완에게도, 데뷔 30년 차의 베테랑 배우 황정민에게도 생애 첫 속편이다.

'베테랑2'는 성공한 영화의 속편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1편과의 비교가 불가피하다. 전편과의 연관성을 이어가면서 속편만의 개성과 색깔을 구축하는 것이 성패의 관건이다.

"전편을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는 류승완 감독의 말에서 속편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가 엿보인다. 실제로 '베테랑2'는 전편의 흥행에 취해 복사기에서 찍어낸 듯한 결과물을 양산하고 있는 여타 시리즈와는 달리 창작자의 고민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성공에 취해 전편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류승완 감독의 결의는 2편에 여실이 드러난다. 그러나 1편과 확연히 달라진 톤 앤 매너에 관객의 호불호도 나뉘고 있다. '베테랑2'는 진화일까 퇴보일까.

◆ 대한민국 사회의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에 관하여

영화는 주부 도박단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불법 도박장을 잠입하는 미스 봉(장윤주)과 이 작전을 진두지휘하는 서도철(황정민)을 위시한 형사들의 모습으로 문을 연다. 약 7분여의 오프닝을 통해 광역수사대에서 강력범죄수사대로 부서를 옮긴 형사 5인방의 건재를 알리고, 1편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베테랑2'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질 법한 사건을 연이어 등장시킨다. 1편에서는 돈과 권력을 등에 업고 법 위에 군림하는 재벌의 범죄를 다뤘다면, 2편은 대중의 분노를 토대로 활개 치는 비질란테(Vigilante: 자경단)의 연쇄 살인을 재료 삼았다.

류승완 감독은 대한민국 부조리의 파노라마를 한 편의 영화로 제시하려는 듯 성범죄, 학교폭력, 가짜뉴스, 사이버 마녀사냥 등의 다양한 사건을 통해 '해치'라는 배후를 등장시킨다.

해치는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르고도 법의 심판을 제대로 받지 않는 인물에게 사적 제재를 가해 대중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사법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인해 각광받는 비질란테를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 '사적 제재는 옳은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2편의 빌런으로 등장하는 '해치'는 안하무인에 극악무도하며 법 위에 군림했던 1편의 빌런 '조태오'와는 다른 인물이다. 해치가 살인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활개를 칠 수 있는 것은 대중의 사회를 향한 분노와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을 기반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해치의 행각은 '죽어 마땅한 인물을 죽인다'는 식의 자기 합리화와 살인을 게임처럼 즐기는 소시오패스적인 속성과 어우러져 점점 과감해진다. 영화는 선을 넘는 해치와 열광하는 대중을 교차로 보여주며 이 기현상을 광풍처럼 묘사한다.

◆ 사연 없는 빌런vs사과할 줄 아는 어른

영화는 '해치'의 정체를 초반부터 오픈한다. '베테랑2'는 수사 기법을 활용한 범인 잡기가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라 문제적 인물이 던지는 화두와 그의 범행이 남기는 논쟁적 질문이 핵심인 영화임을 알 수 있다.

연쇄 살인을 다룬 형사물에서 범인을 먼저 오픈할 경우, 연출자가 할 수 있는 보편적 선택 두 가지가 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쫀쫀한 두뇌게임을 통해 텐션을 유발하는 연출과 빌런의 존재감을 극대화해 압도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연출이다.

그러나 '베테랑2'의 경우 어느 쪽도 큰 효과를 내지 못한다. 배우의 이미지를 전복한 변신으로 주목도를 높이는 데는 성공한다. 말간 배우의 이미지를 뒤엎는 양면 연기와 남성미를 부각한 액션 연기는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수많은 연쇄 살인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범죄자로서의 압도적인 포스와 캐릭터로서의 매력은 떨어진다.

인물에 대한 서사가 충분히 디자인되지 않은 데서 발생한 문제다. '해치는 어떻게 이 많은 사건을 감쪽같이 설계했을까?'에 대한 개연성도 떨어지는데다 '도대체 왜?'에 대한 거대한 물음표를 공란으로 둠으로써 '그저 미친놈'이라는 결론을 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같은 선택에 대해 류승완 감독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이 인과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발생한다. 우리들은 실체를 알기 위해 아주 작은 단서만 나오면 포커스를 맞추고 해소하려 한다. 그게 진실인지 사실인지 바라볼 여유도 없이 믿고 정의해 버리고 넘어가는 게 편하니까. 나는 빌런의 정체보다 빌런이 야기시키고 있는 현상과 여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상과 여파'라는 말에서 류승완의 의중을 읽을 수 있다. 답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는 감독의 연출 의도는 영화의 결과물을 생각하면 다소 거창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대중이 범죄와 뉴스를 대하는 시선과 방식에 대한 질문은 꽤 묵직하게 다가온다. 또한 논란과 현상에만 몰두하다 정작 진실과 거짓,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뀔 때는 태도를 바꾸는 대중의 습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감독은 사적 제재에 대한 화두 던지는 동시에 사적 제재에 열광하는 대중에 대한 비판까지 아우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잔악무도한 범죄와 억울함과 분노를 야기하는 부조리를 그저 단순한 선악 구도로 재단하고, 교훈적인 응징으로 다루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빌런의 서사 공백은 영화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의도적 생략이라기보다는 스토리텔링의 결함처럼 보인다. 하나의 주제에 여러 소재를 가지로 엮으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충분했는가에 대한 아쉬움도 든다.

명쾌하고 화끈했던 액션 영화는 어둡고 극단적인 사회 드라마로 드리프드 했다. 천만 관객이 사랑했던 영화의 성격과 색깔을 바꾼 선택은 수용자 입장에서 '당혹스러운 흑화'로 여겨질 수 있다.

안타고니스트에 사연을 부여하는 것을 경계했다는 류승완 감독의 말도 일견 이해는 가지만, 결국 인물의 동기에서 '왜'가 빠지면서 이 인물은 납작한 소시오패스에 그치고 만다. '비질란테'나 '노웨이 아웃' 등의 시리즈에서 이미 사적 제재를 다룬 바 있기 때문에 이 화두 자체가 식상하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서브플롯 중에 힘을 준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아들의 학교 폭력에 직면한 서도철의 사연이다. 류승완 감독은 엔딩부의 서도철의 대사가 중요했다고 강조했지만 '아버지 서도철'의 서사를 관객도 중요하게 여길까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자칫 자기 개발서 같은 '모범적 어른'을 제시하는 게 고리타분한 결론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작 관객이 궁금한 건 '사과할 줄 아는 어른의 반성문'이 아닌 '빌런의 탄생과 분노의 근원'이었을 것이다. 이를 거대한 공란으로 둬 해야 할 것을 건너뛴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류승완 감독은 쿠키 영상을 통해 이 공란을 다음 편에서 채울 수도 있다는 식의 암시를 한다. 118분의 러닝타임에서 하지 않은 이야기를 다음 편으로 넘기는 게 기대감을 부르는 일일까. 그 전에 이 캐릭터가 또 한 번 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가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해 보인다.

◆ 액션은 류승완 그리고 그의 눈 최영환

류승완 영화에서 액션은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시작해 '베테랑2'에 이르기까지 그의 연출작 14편이 곧 충무로 액션의 변천사라고 볼 수 있다. 그간 '포스트 류승완' 자리를 노리는 도전자들이 나왔고 액션의 경향도 변화했지만, 류승완의 액션은 낡지 않고 숙성을 거듭해 왔다.

"어느 순간부터 때리는 쾌감보다 맞는 고통에 더 신경을 쓴다"는 류승완 감독은 때리는 '작용'보다 맞는 '반작용'을 효과적으로 살리며 액션의 리얼리티를 높이고 있다.

'베테랑2'에서는 두 번의 인상적인 액션 시퀀스가 있다. 남산의 계단 액션신과 우중 액션신이다. 물론 남산의 파쿠르 액션이 보다 속도감 있고 타격감이 두드러지지만 비 내리는 옥상에서 펼쳐진 액션 장면은 날것의 처절함이 돋보인다.

경찰과 범인이 흥건한 빗물 바닥을 나뒹굴며 벌이는 이 액션은 물의 질감까지 활용해 역동성을 극대화했다.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생각나며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떠오르기도 하는 이 시퀀스는 유상섭 무술감독의 창의적인 액션 디자인과 공간과 사물을 200% 활용하는 류승완의 다이내믹한 연출의 환상적인 합작품이다.

또 돋보였던 건 최영환 촬영감독의 촬영이다. 액션 장면에서의 카메라 워킹도 인상적이지만 인물 촬영에서 스플릿 렌즈 효과(Split Focus Diopter)를 활용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선명한 이미지와 아웃포커싱한 이미지를 한 프레임에 혼합해 신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쿠엔틴 타란티노나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즐겨 사용했던 기법으로 한국 영화에서는 오랜만에 보는 룩이었다.

'베테랑2'는 개봉 15일 만에 전국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추석 연휴 기간 일찌감치 손익분기점(350만 명)을 돌파하며 만든 이들의 땀방울을 보상받은 만큼 지금부터는 관객들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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