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는 생명을 갉아먹었다 [뉴스룸에서]


이정훈 | 사회정책부장
스페인은 한국인이 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많이 찾는 나라다. 지난해 약 39만명(한국관광공사 집계)이 방문해 2위 오스트리아(약 23만명)보다 1.5배 넘게 많았다. 걷는 즐거움을 주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인기인데다 찹쌀순대와 비슷한 모르시야 등 음식도 우리 입맛과 궁합이 맞다. 여기에 ‘평행이론’이 언급될 정도로 역사도 닮았다. 두 나라 모두 수십년간 장기 독재 정권을 거쳤고, 여러 차례 쿠데타 경험이 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저지른 ‘12·3 내란’은 공통점을 하나 더했다. 1981년 2월23일 스페인에서 발생한 쿠데타는 18시간 뒤 실패로 끝났고, 2024년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은 6시간 동안 진행되다 불발됐다. 무장한 군인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그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된 불명예를 스페인에 이어 한국도 갖게 됐다.
두 쿠데타가 하루도 안 돼 허사가 됐다지만, 그 충격은 나란히 시민들에게 긴 상처와 고통을 남겼다. 윤 대통령의 내란보다 43년 앞서 발발한 스페인의 ‘18시간짜리’ 쿠데타는 경제적 충격을 넘어 국민의 생명을 갉아먹었다. 국제 보건정책 학술지 ‘헬스 이코노믹스’(Health Economics)에 2021년 실린 ‘1981년 스페인 군사 쿠데타로 살펴본 정치적 불안정과 출산 결과’는 이를 입증하는 논문 가운데 하나다.
쿠데타 발발 시 태아이던 1981년 3∼10월 신생아는 전년 같은 시기 신생아에 비해 몸무게가 9g 적었다. 74만여명의 신생아를 비교한 결과다. 임신 초·중기인 1∼6개월에 엄마 배 속에서 쿠데타를 경험한 경우 출생 체중 차이가 더 두드러졌다. 특히 프랑코 독재 정권(1939~1975년)의 민간인 학살로 집단 매몰지가 있는 마드리드, 발렌시아 등에서 태어난 아이는 24∼38g 더 가벼웠다.
악영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쿠데타 이후 태어난 이들은 자라서 고교 졸업률이 더 낮았고 노동시장 참여율도 저조했다. 논문은 “출생 체중 감소가 학업 성취도, 경제적 성과, 건강 상태 등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스페인의 군사 쿠데타가 단기적으로 태아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장기적으로 사회경제적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6시간짜리’ 쿠데타가 21세기에 접어들고도 한참이 지난데다 권력을 잡은 대통령이 스스로 일으켜 충격적이라는 점에서 스페인에 비해 피해가 더 적다고 하기 어렵다. 45년 만에 계엄령이 발포돼 군인들이 국회에 유리창을 깨고 난입하고, 국회의원이 출입이 막혀 담장을 넘는 상황을 상상한 이는 많지 않다. 봉준호 영화감독도 “어떤 에스에프(SF) 영화보다 초현실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충격은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지디피(GDP) 킬러’(포브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이없는 친위 쿠데타를 벌이면서, 지난해 4분기 실질 지디피 성장률이 0.1%로 전망보다 0.4%포인트 낮아졌다. 전망도 계속 나빠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1.7%로 낮췄다. 국가신용등급 하향 우려마저 있다. 주위에선 폐업을 했거나 할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를 쉽사리 마주할 수 있다. 더욱이 광주항쟁을 겪은 시민들의 트라우마가 염려되는 등 생명에 미친 폐해도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쪽 조대현 변호사(전 헌법재판관)는 “국민들은 ‘계몽령’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는 발언까지 했다. 경제적 피해는 물론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고 그 피해가 오랜 기간 이어질 수 있는데도, 이를 부록이나 우수리 정도로 취급하는 태도다.
정신의학 전문의들은 폭력 트라우마 회복 방안의 하나로 ‘가해자가 응당한 처벌을 받는 정의로운 해결’을 꼽는다. 윤 대통령은 쿠데타를 저지른 지 두달이 넘어가는데도, 반성 대신 후안무치함을 이어가고 있다. 시민들의 빠른 피해 회복과 2차 피해 예방을 위해선 서둘러 단죄가 이뤄져야 한다. 1981년 스페인 쿠데타의 주역 안토니오 테헤로 중령 등은 체포돼 최고 3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도 이듬해 옥중 출마에 나서기도 했다. 제대로 단죄하지 않으면, 반성도 없고 그만큼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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