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중국萬窓] 그림과 시에 빠져 나라 잃은 망국의 황제 송 휘종

강현철 2025. 7. 1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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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송(北宋)의 8대 황제 휘종(徽宗, 1082 ~ 1135년) 조길(趙吉)은 북송을 멸망시킨 망국의 황제라는 치욕적인 이름으로 중국 역사에 남아 있다. 정강의 변(靖康之變)은 정강(靖康) 원년인 1126년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의 침공으로 중원과 화북 지역을 잃고 강남으로 천도한 사건이다. 당시 황제 휘종과 흠종, 황후와 모친들 그리고 후궁들은 모두 포로가 돼 금나라로 압송되는 굴욕을 당했다. 휘종과 그의 아들 흠종은 결국 머나먼 ‘오랑캐의 땅’ 한 칸짜리 방에서 망국의 한을 품고 1135년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휘종은 당의 현종처럼 즉위 초기에는 업적을 내고 능력있는 황제였다. 그런데 왜 망국지군(亡國之君) 으로 전락했을까? 현종이 절세의 미인 양귀비의 치마폭에 안겨 나라를 망쳤다면, 휘종을 추락시킨 건 시와 서, 화였다.

원나라때 한 황제가 휘종의 그림을 구경하며 감탄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신하가 말한다. “휘종은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지만 한 가지 일만은 무능했습니다.” 무엇이냐고 묻자 신하가 대답했다. “오로지 임금 노릇만 못했습니다(獨不能爲君). 임금이 임금 노릇을 잘해야지 다른 일을 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人君貴能爲君, 它非所尙也).”

휘종은 시, 서, 화에 능한 분위기에서 자랐고, 어릴적부터 그림에 재능을 나타났다. 골동품 감식안도 뛰어났다. 16~17세 때 이미 그림으로 이름을 날렸다. 꽃과 새를 주로 그린 화조화가 최백의 제자 오원유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수묵의 경향도 띠었다.

북송 황제 휘종, ‘서학도’(瑞鶴圖). 12세기.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그가 남긴 그림은 약 20여 편이다. 화풍은 색채를 화려하게 사용하거나, 수묵담채 두 유형이었다. 상서로운 학을 표현한 ‘서학도’(瑞鶴圖)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1112년 정월 대보름 다음날 구름이 낮게 드리운 가운데 학이 무리를 지어 궁궐에 날아와 머물렀던 일을 기념한 그림이다. 학은 동양에서 행운을 가져다주는 상서로운 새다. 신선이 타는 새로도 여겨진다.

푸른 하늘과 흐릿한 갈색 구름이 대조를 이루는 궁전의 지붕 위로 학들이 대각선 방향으로 엇갈려 날고 있다. 고려 상감청자 속 학의 모습과 같다. 길고 가는 목과 다리, 활짝 편 날개는 신선의 세계를 방불한다. 지붕 꼭대기 양 끝의 처마에는 두 마리 학이 살포시 앉았다. 스무마리의 학들은 각양각색으로, 같은 동작을 취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마치 구름이 떠있는 파란하늘로부터 선학(仙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서학도’(瑞鶴圖)는 ‘상서도’(祥瑞圖)로도 불린다.

휘종 ‘계산추색도’(溪山秋色圖)


휘종은 중국 회화사에서 구도를 화면의 한쪽으로 치우쳐 배치하고 표현을 단순화한 남송의 원체화(阮體畫)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부 기관으로 화원(畵院)을 설립해 화가를 양성했다. 황제의 몸이지만 직접 화원 화가를 지도하기도 했다. 가을 산색을 담은 ‘계산추색도’(溪山秋色圖)도 휘종이 남긴 것이다.

휘종이 창시한 글자체인 수금체(瘦金體).


서예에선 힘이 넘치는 ‘수금서’(瘦金書)라는 서법을 창안했다. 자획을 가늘고 길게 뽑아 날렵하면서도 우아하며 가냘픈 것이 특징이다. 후대는 “글자에 기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유약한 서체”라고 평하기도 했다.

‘연산정’(燕山亭)은 휘종이 여진의 포로 신세가 됐을때 지은 시다.

裁剪氷綃(재전빙초) 얇은 비단을 오려내 포갠 듯

輕迭數重(경질수중) 사뿐히 몇겹 접어

冷淡臙脂勻注(냉담연지균주) 가볍게 연지를 골고루 칠한 모양이네

新樣靚妝(신양정장) 새로운 유행의 화장이라도 했는지

艳溢香融(염일향융) 예쁜 자태에 향기까지 감도니

羞殺蕊珠宮女(수살예주궁여) 예주궁의 선녀가 무색하도다

易得調零(역득조령) 허나, 이 꽃도 시들고야 말겠지

更多少無情風雨(경다소무정풍우) 또 얼마나 모진 비 바람을 겪어야 할꼬

愁苦(수고) 아, 이 괴로움

問院落淒涼(문원락처량) 이 쓸쓸한 뜨락엔

幾番春暮(궤번춘모) 봄이 몇번이나 지났갔더란 말인가

憑寄離恨重重(빙기리한중중) 겹치고 겹친 서러움을 전하고 싶건만

這雙燕(저쌍연) 저 한쌍의 제비가

何曾會人語(하증회인어) 사람의 말을 어찌 알 수 있으랴

天遙地遠(천요지원) 멀고 먼 하늘 저 멀리

萬水千山(만수천산) 첩첩한 산과 물을 건너

知他故宮何處(지타고궁하처) 예전의 궁궐은 그 어디 있는가

怎不思量(즘불사량) 어찌 생각이 나지 않으리오.

除夢裏有時曾去(제몽리유시증거) 꿈에서도 몇번이나 가서 보았건만

無據(무거) 이제는 의지할데 없고

和夢也新來不做(화몽야신래불주) 어이하여 요즘엔 꿈에서 조차 보이질 않는단 말이냐

여리고 어린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휘종의 불행은 분수에 넘치는 자리에 앉았다는 데 있다. 그러니 본인도 불행하고 백성도 불행하게 만들었으리라. 비록 망국의 군주였지만 그는 궁중화원을 지원하고, 각종 서화 및 골동품을 수집했을 뿐만 아니라 화가와 작품 목록을 담은 ‘선화화보’(宣和畵譜)를 편찬해 후세에 전했다. 후대의 예술에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했다.

강현철 기자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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