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사라져갈 12기통 엔진에 대하여

사진 페라리

12기통 엔진은 왜 좋았을까?

엔진 제작 기술이 크게 발전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출력을 높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배기량을 늘리거나, 아니면 실린더의 개수를 늘리거나. 그러나 단순히 배기량을 늘리고 실린더 개수는 그대로 둔다면, 불완전 연소가 일어나기 쉽다. 지금은 기술이 발전해서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한때는 '실린더 하나당 깔끔하게 연소가 가능한 한계는 500cc 정도'라는 속설도 있었다. 현재 4기통 엔진이 대부분 2.0ℓ에서 마무리되는 것도 다 근거가 있었던 셈이다.

어쨌든 실린더 하나당 용량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보니, 출력을 높이기 위해 보다 많은 연료를 깔끔하게 태우려면 실린더의 개수를 늘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4기통보다는 6기통, 그 위에 8기통, 최종적으로는 12기통에 도달했던 것이다(물론 최종적으로는 16기통 엔진도 탄생했지만 그래도). 그리고 과거에는 무거운 고급 차가 출력이 높아야 했으니, 12기통 엔진을 탑재했던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터보차저 기술이 발전한 현재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리고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레이스에서 이기기 위해서다. 옛날의 레이스라는 것은 대부분 배기량에 제한을 두고 있었으므로, 배기량을 늘려서 출력을 높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태우는 간격을 짧게 잡고 많은 연료를 태워서 출력을 높이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실린더 개수가 많아야 했다. 그리고 실린더가 많으면 상대적으로 엔진을 고회전으로 돌리기가 쉬웠다. 그만큼 실린더의 길이를 짧게 가져갈 수 있고, 위아래로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린더를 일렬로 배열한 뒤 직렬 12기통을 만드는 것이 엔진 회전에는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렇게 만들면 자동차라는 한정된 공간에 탑재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직렬 6기통 엔진 두 개를 나란히 V자 형태로 배치하고 V12로 만드는 게 한동안 유행하던 공식이었다. 그것을 약간 비튼 것이 폭스바겐인데, 일명 W12 엔진을 탑재했다. V6 엔진 두 개를 나란히 배치했는데,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협각 V6 엔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12기통 엔진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진동이 적고 조용하면서 우아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형태의 엔진은 피스톤이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불균형 때문에 진동이 발생한다. 그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회전수와 일치하는 주기의 진동인 1차 진동, 그리고 회전수의 2배 주기로 발생하는 2차 진동이다. BMW의 직렬 6기통 엔진이 '실키 식스'로 유명한 이유는 6개의 피스톤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면서 진동을 모두 상쇄하기 때문이다(물론 BMW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6기통을 V자 형태로 나란히 배열한 V12 엔진이라면, 크랭크샤프트가 한 번 회전할 때 연소 회수가 직렬 6기통의 두 배가 되므로, 진동을 매끄러운 형태로 둘러싸는 엔진이 된다. 그리고 같은 배기량이라면 12기통 엔진이 깔끔하게 연소되므로 소리도 좋다. 그래서 엔진 출력이 높아야 하는 슈퍼카는 물론 고급 세단, 그리고 SUV에도 탑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슈퍼카 중에서도 플래그십 모델, 고급 세단 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모델에만 허락됐다.

효율? 환경규제? 어쨌든 운명은 정해졌다

그런데 12기통 엔진을 탑재하는 자동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물론 엔진 효율 문제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배출가스 규제다. 연료를 많이 넣고 태운다는 것은 그만큼 배출가스의 양도 많다는 이야기와 동일하다. 아직 아슬아슬하게 12기통 엔진을 만드는 곳도 있지만, 앞으로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셈이다. 이제 사라질 것이다. 8기통 엔진도 존재를 위협받고 있는 시대에 12기통 엔진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사라져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아주 일부는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럽에서는 합성 연료를 사용하는 엔진에 대한 통과가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그렇다 해도 사실은 합성 연료에 자동차의 동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비행기를 띄우는 데도 양이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자동차에 넣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돈이 넘치는 부자들만 12기통 엔진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미래는 어떻게 될까? 속단은 할 수 없지만, 12기통 엔진이 일반도로를 지배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마도.

페라리 812 GTS 사진 페라리

페라리 812 GTS

페라리에는 이미 12기통 엔진을 탑재한 SUV, 푸로산게(Purosangue)가 있지만 굳이 812 GTS를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아마도 V12 엔진을 차체 앞쪽에 탑재한 마지막 컨버터블 모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6.5ℓ 12기통 엔진은 최고출력 800마력을 발휘하는 것과 동시에 낮은 회전에서도 차체를 부드럽게 이끌 수 있는 토크를 제공한다. 개선된 촉매 변환기와 GPF(가솔린 미립자 필터)가 있어 배출가스 규정을 준수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최대 8500회전까지 돌릴 수 있는 엔진과 DCT의 경쾌함, 그리고 특별히 설계한 배기 파이프가 아름다운 음색을 들려줄 것이다.

토요타 센추리 사진 토요타

토요타 센추리

토요타에 12기통 엔진이 있었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데 단 한 대만을 위한 사치스러운 12기통 엔진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토요타의 플래그십 세단 센추리. 본래 1세대 모델은 8기통 엔진을 탑재했지만, 1997년에 등장한 2세대부터 12기통 엔진을 탑재했다. 당시 토요타가 만들고 있던 3.0ℓ 직렬 6기통 엔진 두 개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는데, 실린더의 지름을 줄이면서 최종적으로는 5.0ℓ 엔진이 되었다. 또한 한쪽 6기통 엔진이 모두 고장 나는 사태가 발생해도 나머지 6기통 만으로 주행할 수 있는 기술도 적용되어 있었다. 센추리는 3세대가 되면서 하이브리드를 도입했고 12기통 엔진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중고 엔진은 토요타 자동차를 튜닝할 때마다 사용되고 있다.

메르세데스-AMG S65 파이널 에디션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메르세데스-AMG S65 파이널 에디션

메르세데스-벤츠에서 S클래스는 플래그십 세단을 담당하는 모델이다. 거기에 고성능을 추구하는 AMG라면 당연히 12기통 엔진을 탑재하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벤츠는 S65 파이널 에디션을 마지막으로 12기통 라인업을 중단했다. 2019년에 등장한 파이널 에디션은 단 130대만 생산됐으며, 동일하게 12기통 엔진을 탑재하는 마이바흐 S650보다 비쌌다. 9단 자동변속기와 사륜구동이 지배하는 시대에 구형 7단 자동변속기로 뒷바퀴만을 굴리는 이 차는 낭만이 넘쳤고, 우아한 모습으로 도로를 지배했다. 성능만 중시한다면 쉽게 선택할 수 없겠지만, 12기통 특유의 매력을 안다면 당연히 선택하는 자동차였다. 물론 그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만 말이다.

벤틀리 바투르 사진 벤틀리

벤틀리 바투르

한때 폭스바겐을 이끌었던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생각을 실현한 것이 그 유명한 W12 엔진이다. 그리고 이 엔진을 좀 더 고급스럽게 발전시킨 것이 바로 벤틀리다. 럭셔리 자동차를 지향하는 벤틀리에 잘 어울렸기에 콘티넨탈을 비롯한 여러 모델에 탑재했지만, 이제 그 수명이 끝나가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W12 엔진을 탑재한 모델은 벤틀리에서도 장인들만 모인 '뮬리너'에서 만든 특별한 모델, 바투르(Batur)다. 필자도 SUV 벤테이가를 통해 W12 엔진의 진가를 경험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엔진이 곧 단종된다는 사실이 정말 슬프게 들려온다. 그 부드러움을 다시 느낄 수 없다니 말이다.

애스턴마틴 발키리 사진 애스턴마틴

애스턴마틴 발키리

이 차는 분명히 일반도로를 주행할 수 있지만, 그 구조는 F1에 투입되는 자동차와 거의 동일하다. 무엇보다 레드불에서 일하고 있는 F1 설계 전문가인 아드리안 뉴이(Adrian Newey)가 설계에 참가했으니 말이다. 엔진은 그 유명한 코스워스(Cosworth)에서 다듬었으며, 자연흡기 V12 엔진과 전기모터를 합해 최고출력 1139마력을 발휘한다. 리카르도(Ricardo)에서 만든 7단 시퀸셜 변속기를 조합해 클러치가 없으며, 그 덕분에 일반도로에서 다소 정체가 있더라도 왼발이 아플 일은 없다. 그러나 자동차 마니아가 아니라면 '시끄러워서 운전 못하겠다'는 이야기가 먼저 나올 것이다. 조수석 탑승객과 이야기하기 위해 헤드셋을 사용해야 할 정도이니 말 다했다. 아, 발키리 AMR은 일반도로를 주행할 수 없다.

BMW M760Li xDrive 사진 BMW

BMW M760Li xDrive

1986년에 등장한 BMW 7시리즈 2세대 모델은 독일 자동차들 중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V12 엔진을 탑재한 모델이다. 그 전통은 계속 이어져서, 7시리즈에 계속 12기통 엔진을 탑재해 왔다. 그리고 그 기술을 이용해 롤스로이스 모델에 탑재하는 12기통 엔진을 개량했고, 다시 그 엔진을 7시리즈에 가져왔다. 그런 BMW지만 역시 환경 규제는 피할 수 없어서, 7시리즈가 풀체인지를 단행하면서 12기통 엔진은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은 12기통 엔진 대신 전기모터와 배터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중이다. 그래도 아직 롤스로이스에는 12기통 엔진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