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국가로 남기 위한 대만의 처절한 외교전쟁 [이규화의 지리각각]

이규화 2026. 5. 8.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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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압박에도 12개국 中 아닌 대만 선택
에스와티니, 국가원수 전용기 내주며 우의
한국과도 명칭 논란…결국 표기 삭제키로
“우리는 독립국가”라고 외치는 생존 투쟁


의장대 사열하는 음스와티 3세 에스와티니(왼쪽) 국왕과 라이칭더 대만 총통. 대만 총통부 캡처. 연합뉴스

“대만은 이미 독립국가인데 왜 중국은 계속 ‘독립하지 말라’고 위협하나.”

국제정치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한 번쯤 품는 의문이다. 실제로 대만은 일반적인 국가와 다르지 않다. 자체 정부와 군대, 사법체계, 화폐와 선거제도를 갖고 있으며 2300만 명의 시민들은 중국 공산당의 통치를 받지 않는다. 중국 정부의 행정력은 대만 사회 어디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중국이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다. 대만이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외교를 하지 말라고 압박한다. 국제사회에서 외교는 곧 국가 존재의 증명이다. 대만이 외교를 포기하는 순간, 중국은 대만을 “중국 내부의 지방정부”로 규정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대만의 외교는 단순한 국제 교류가 아니라 국가 생존 그 자체와 직결된다.

2026년 5월 현재 대만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단 12개국뿐이다. 중남미의 과테말라·파라과이·벨리즈·아이티·세인트키츠네비스·세인트루시아·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오세아니아의 팔라우·마셜제도·투발루, 유럽의 바티칸시국, 그리고 아프리카의 에스와티니다. 대부분 소규모 국가들이다. 중국은 이들 국가를 상대로 대규모 투자와 차관, 인프라 지원을 약속하며 대만과 단교하도록 압박해 왔다. 실제로 최근 수년 사이 온두라스와 나우루 등이 중국과 수교하며 대만과 단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12개국이 대만을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최근 대만 외교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사건이 있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의 아프리카 에스와티니 방문이었다. 에스와티니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모잠비크 사이에 위치한 인구 120만명의 작은 내륙국이다. 이 나라는 중국이 아닌 대만과 수교를 유지하는 아프리카 유일의 국가다.

라이 총통은 음스와티 3세 국왕의 즉위 40주년 행사 참석을 위해 지난달 에스와티니 방문을 추진했다. 하지만 출발 직전 모리셔스·세이셸·마다가스카르 등 인도양 국가들이 돌연 대만 총통 전용기의 영공 통과 허가를 취소했다. 대만은 독일과 체코 등을 통한 우회 비행까지 검토했으나 중간 기착 허가마저 얻지 못했다. 중국의 압박이 있었거나 이들 국가가 중국을 의식해 허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방문이 무산되는 듯했지만, 에스와티니 측이 기발한 해법을 내놓았다. 음스와티 3세 국왕이 국가원수 전용기를 내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툴리실 들라들라 에스와티니 부총리가 직접 전용기를 타고 대만으로 와 라이 총통을 태워가는 방식이었다. 주변국들이 대만 총통 전용기는 막을 수 있어도, 에스와티니 국가원수 전용기의 운항까지 제지할 명분은 없었다. 결국 라이 총통은 무사히 에스와티니를 방문했고, 귀국 후 “84시간 동안 2만5000㎞를 함께 비행한 들라들라 부총리 덕분에 외교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며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이 과정은 대만 외교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만 총통은 국제사회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중국은 항공로와 국제기구, 외교무대를 총동원해 대만을 고립시키려 한다. 그러나 동시에 에스와티니처럼 중국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대만 편에 서는 국가들은 존재한다.

대만의 외교 투쟁은 멀리 아프리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미묘한 외교 갈등이 발생했다. 한국 정부의 전자입국신고서 시스템이 대만을 ‘CHINA(TAIWAN)’로 표기한 것이 발단이었다. 대만은 이를 사실상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표기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만 외교부는 한국 표기를 ‘남한·KOREA(SOUTH)’으로 바꾸는 대응 조치까지 검토하며 시정을 요구했다. 결국 한국 정부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전자입국신고서에서 ‘직전 출발지’와 ‘다음 목적지’ 항목 자체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수습했다. 한국 외교부는 “방문객 편의 증진을 위한 행정적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중국과 대만 사이의 민감한 외교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즉각 “대만은 중국의 일부이며 ‘중국 대만’ 표기는 당연하다”고 반발했다.

대만이 사소한 것을 트집 잡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이름은 곧 주권과 직결된다. 대만은 국제 스포츠대회에서는 ‘차이니스 타이베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해야 하고, 대부분 국제기구에도 가입하지 못한다. 그래서 국가 명칭과 표기를 둘러싼 싸움은 대만에겐 단순한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국가 존재를 둘러싼 전쟁에 가깝다.

유럽에서는 리투아니아 사례가 상징적이다. 대부분 국가들은 중국의 반발을 우려해 대만 대표부 명칭에 ‘대만’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게 하고 ‘타이베이 대표부’라는 명칭을 요구한다. 그러나 리투아니아는 2021년 유럽 최초로 ‘대만 대표부’(Taiwanese Representative Office)라는 명칭 사용을 허용했다.

중국은 즉각 리투아니아산 상품 수입 제한과 기업 압박 등 경제 보복에 나섰다. 그럼에도 리투아니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반도체와 첨단기술 협력을 중심으로 대만과 관계를 강화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가치 외교의 용기’로 평가했다.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라는 공통 가치가 중국의 경제 압박보다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였다.

그렇다면 왜 12개 나라들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과 자본의 유혹을 뿌리치고 대만을 선택한 것일까. 이유는 의외로 단순한 경제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선 대만의 지원 방식은 중국과 다르다는 평가가 많다. 중국의 지원이 대규모 차관과 토목공사 중심이라면, 대만은 농업기술·의료·교육·정보기술 등 생활 밀착형 협력에 집중한다. 실제 주민들의 삶에 도움이 된다는 신뢰가 높다. 작은 국가들 입장에서는 중국과 수교한 수많은 개발도상국 중 하나가 되는 것보다, 대만과 수교해 최우선 파트너 대우를 받는 편이 실익이 크다는 계산도 존재한다.

여기에 정치적·이념적 요인도 작동한다. 현재 대만 수교국들은 대부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들이다. 표현의 자유와 인권, 선거를 존중하는 정치체제를 가진 국가들이다. 중국 공산당식 권위주의보다 민주주의 체제인 대만에 더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다. 특히 교황청은 종교의 자유 문제 때문에 중국과 공식 수교에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대만은 현재 공식 수교국은 12개국뿐이지만, 비수교국 60여개국에 사실상의 대사관 역할을 하는 대표부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 미국 일본 등과 유럽 주요국 대부분에 대표부가 있다. 외교적 형식은 제한돼 있지만 실질적 국제관계는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의 대만 외교는 단순한 국가 간 교류가 아니다. 거대한 중국의 압박 속에서도 “우리는 독립국가다”라고 외치는 생존 투쟁이다. 국제사회에서 이름을 지키고, 국기를 들고, 외교관을 파견하고, 국가원수의 비행경로를 확보하는 일까지 모두 하나같이 투쟁의 일부다.

이규화 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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