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멍게 삶아" 고수온에 통영·거제 멍게 95% 폐사
"바다가 멍게를 삶아버렸다"라는 어민 하소연은 과장이 아니었다.
26일 오전 통영시 한산도 바깥먼바다(외해)에서 건져 올린 멍게는 누렇게 익어 있었다. '붉은 꽃'을 피우며 통통하게 속을 채워야 할 멍게는 빈 껍데기만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일주일 만에 변해버린 멍게 상태를 보고 이종만(61) 씨는 망연자실했다. 한산면 일대에서 12㏊ 규모 멍게 수하식 양식장을 운영하는 이 씨는 올해 키우는 멍게 전량이 폐사했다고 밝혔다. 피해액만 10억 원으로 추산했다. 그는 "27년째 멍게를 키우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겪어본다. 재해라기보다 재앙"이라고 말했다.
◇3년 양식 망쳐…소비 촉진할 멍게도 없다 =
올해 경남 바다 양식장 고수온 피해가 이미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그 수치는 경신될 것으로 보인다. 양식어류뿐 아니라 멍게 피해도 심각하지만 이제 피해 조사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통영과 거제는 전국 멍게 생산량 70%를 차지한다. 1970년대 멍게 양식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우렁쉥이'가 표준말이지만 통영말 '멍게'가 널리 사용되면서 멍게도 표준어가 됐을 정도다. 통영·거제 등 남해안 지역 700㏊에서 연간 15만∼20만t 멍게를 생산한다. 전국 단위인 멍게수하식수협 조합원 380여 명 중 330여 명이 통영·거제에 있다.
그만큼 지역 대표 수산물이지만 내년에는 멍게를 맛보기 어려울 형편이다. 김태형(54) 멍게수하식수협 조합장은 통영·거제에서만 올해 95% 폐사했거나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피해액은 700억~800억 원 이상으로 보고 있다.
고수온에 대비해 수심이 깊은 곳으로 어장을 이동하거나 멍게봉 높이를 조절했지만 소용없었다. 멍게는 저수온성 생물로 생존 최적 수온이 13∼15도이고, 수온이 높으면 24∼25도까지 견디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조합장은 "올해는 표층·중층·하층이 수온 차이 없이 29도 이상으로 나와 피해가 더 크다"며 "어민들이 생산 의지를 잃어버릴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일부 채묘를 강원도 쪽으로 피신시켜 그곳에서 종자를 가져온다고 해도, 복구 기간을 고려하면 피해 규모가 엄청나다"고 덧붙였다. 멍게 양식은 채묘에서 출하까지 보통 3년이 걸리는데, 올해 거의 폐사해버려 피해 복구까지 최소 3년 이상 어민들 생계가 막막해지는 것이다.
이 씨는 "지금 양식하는 것들이 내년 봄에 출하하려는 멍게인데 다 죽었다"면서 "소비 촉진에 쓰일 멍게조차 없다"고 한탄했다.
◇대책 있나…일본산 수입 우려도 = 어민들이 '멘붕(멘탈 붕괴)'에 빠진 데는 마땅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 이유도 있다. 정부가 일부 지원하는 '양식수산물재해보험'이 있지만, 대다수 어민은 지나치게 비싼 보험료 탓에 가입을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김 조합장은 "정부(50%)와 지자체(20~30%) 지원금을 보태도 어민 자부담이 크다"면서 "1년짜리 소멸성 보험에 평균 5000만 원에서 1억 원 이상 드는 데 누가 가입하겠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남 750여 양식어가 중 보험에 가입한 곳은 80여 곳(10%)이고, 멍게 어가는 1곳으로 파악되고 있다. 멍게수협은 최초 가입금액을 낮추는 등 어민 부담을 줄이는 개선안을 건의해 왔지만, 최근 자연재해에 따른 양식수산물 피해가 급증하면서 보험료가 오히려 인상되는 형편이다.
김 조합장은 또 "정부가 자연재해 피해 복구비로 어가당 최대 5000만 원 지원하는 것이 전부인데 이를 현실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면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더라도 어민에게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년 전부터 국립수산과학원에 고수온에 강한 품종 개발을 요구해왔지만 당장 현실화하기 어려워 어민들이 생산 의지가 더 꺾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해가 갈수록 고수온이 확산할 텐데 멍게를 키우려면 맞는 기후를 찾아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면서 "올해도 강원도 쪽 멍게만 일부 살아남았는데, 이제는 통일되면 북한이나 러시아 등지에서 멍게를 키워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부 어민들은 내년 멍게 생산량이 급감하면 정부 대책으로 일본산 멍게 수입이 확대될 것을 우려했다.
김 조합장은 "일본산 멍게는 통영산과 경쟁도 되지 않을 정도로 향이나 맛에서 뒤떨어지는데 내년에 생산할 멍게가 없어 일본산 수입이 늘어날 수도 있다"라며 "멍게 소비가 줄어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멍게 생산량 중 수출은 10%, 내수 소비가 90%를 차지한다.
/정봉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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