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동 662번지 일대
서울의 사라지는 풍경을 담기 시작한 건 지극히 개인적이고 복합적인 상황에 의해서였다. “왜 시작하게 된 거예요?” 사람들은 매번 똑같은 질문을 던졌고 나는 매번 머뭇거렸다. 앞서 설명했듯이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음’에서 비롯된 작업이다. 최근 들어 그 ‘이유’라는 것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다. 그저 복잡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어서 그 맥락을 나름대로 정리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작업의 시작점이 되어준 아현동 재개발 기록에 대해 되짚어보았다.

반복되는 회사 생활에서 나름의 변화를 주고자 시도한 것이 점심시간의 산책이었다. 밥을 최대한 빨리 먹고, 나머지 시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산책길에 마주한 곳은 다름 아닌 재개발 현장이었다. 사람들은 이미 대부분 이주한 상태였고, 몇몇 사람들이 남아 재개발을 반대하고 있었다. 일부 건물은 철거되었고, 일부는 남았다. 이 자체만으로도 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관련 업계(건설, 건축, 도시) 전문가 혹은 실무자, 재개발 구역에 거주하는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일부러 찾지 않고서야, 살면서 이런 장소를 경험할 수 있을까 싶었다.
사람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빈집 가득한 이곳.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낮인데도 불구하고 스산한 기운이 맴돌았다.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다소 긴장되었지만, 발길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빈집 가득한 동네를 걸었다. 아직도 누군가 사는 것처럼 물건이 그대로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나뒹굴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지만, 완벽하게 비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벽 한쪽에 걸린 액자를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사람이 사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둘러보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파란 천이 뒤덮인 모래사장이 보였다.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는데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불과 1년 전 골목 탐방을 하겠다며 찾았던 동네였다. 방금 본 모래사장은 동네가 철거된 이후 정리된 모습이었다. 알아보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이 1년 전만 해도 온전한 동네였던 곳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나니 현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봤던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고, 그만큼 자세히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록과 함께 흐르는 시간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걷는 동안 봤던 풍경을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구체적 계획 없이 가능한, 되는 대로, 많이, 자주 와서 할 수 있는 한에서, 모든 것이 다 사라질 때까지 기록을 해보기로 했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보다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일을 시도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기록이 진행되다 중단될 수도 있고, 누군가의 제지로 아예 기록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렇게 한 달, 3개월, 6개월, 1년.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사이 아현동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사계절이 흘렀고, 오랜 기간 이주하지 않고 대항하며 남아 있던 사람들이 어느새 사라졌다. 강아지와 산책하던 아저씨도,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지나가던 배달 오토바이도, 인근에 있던 학생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현동 662번지 재건축 현장에는 나와 영역을 지키는 고양이들만 남았다.
어느 날은 무거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순간에는 모든 것이 허무했고 혼란스러웠다. 갈 곳 잃은 생 앞에서 무언가를 남기는 행위가 정말로 의미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진짜 중요한 건 이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괜한 사명감에 사로잡혀 본질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되었다.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닌 누군가의 삶이 지켜져야 할 장소에서 ‘어떻게든 남겨야 한다.’며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는 것이 맞는지, 무거운 죄책감도 들었다. 내 일은 아니지만,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더 이상 발길이 옮겨지지 않아 기록을 멈추었다. 철거 공사도 한동안 진행되지 않았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공사는 재개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일어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다시 물었다. 결론은 처음과 같았다.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있도록, 온전히 다 사라지기 전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뭐라도 남길 것 말이다.
“진실이 어렵다고 잊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정지돈, <스페이스 (논)픽션>에서.
아현동, ‘철거풍경’을 기록하다
아현동을 마주한 것은 우연이었지만, 운이 좋았다. 1년 2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아현동 662번지 일대’라는 동네가 어떻게 사라지게 되는지를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감쪽같았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건물이 철거되고, 계단과 길이 사라졌다. 행정적으로 부여된 주소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길은 남겠지’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모든 것이 지워져버렸다. 마지막은 늘 모래언덕이었다. 태초의 자연으로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동네를 이루고, 어떻게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곳이기에 나름 오랜 시간 쌓아온 질서가 존재한다. 물리적 공간, 자연, 생물, 길고양이, 사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 관계 등 이 모든 것이 어찌 보면 하나의 생태계라고 볼 수 있다. 일명 동네 생태계다. 이런 거대한 생태계가 형성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안정적인 질서가 잡힌다.

사람이 살지 않던 곳에 집을 짓고, 한 채 두 채 생겨난 것들이 동네를 이룬다. 오고 가는 길 위에는 필요한 생필품을 팔고,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시장을 비롯한 작지만 다양한 가게들이 생겨난다. 집 마당에는 나무도 심고,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이 싹을 틔우면서 동네 여기저기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아이들이 동네에서 놀 수 있도록 놀이터도 만든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시간을 두고 차곡차곡 쌓이는 것인데 한순간에 모래 한 줌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시의 공간 구성이 변화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변화의 과정에서 ‘대안’ 혹은 ‘보완’이라는 것은 없는 것일까? 그 변화에 있어서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급하게 진행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도시의 변화 속도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한꺼번에 생겨난다. 과거에 존재하던 것들이 미처 마음의 준비도 못 하고 혹은 제대로 무언가를 전달받지 못한 채로 말 그대로 쫓겨나듯이 급하게 떠나간다.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조차 알지 못한 채 수도 없이 스쳐 가고 사라진다. 이러한 상황은 과거의 어떤 특정 시대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고 있다. 시대는 변했는데 과정은 왜 변하지 않는 것일까? 매번 문제를 제기하고는 있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아니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것이 더 맞는 말 같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그 어떤 답을 내리지 못한 채로 4년이 흘렀다.
<철거풍경> 그 이후, 함께 생각해볼 질문을 공유하기
모든 것이 철거되고 모래언덕이 된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공사가 진행되었다. 원래 나의 계획은 철거 완료 시점까지만 기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현동 662번지뿐만 아니라 인근에도 변화가 지속해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기록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종종 현장을 찾아 변해가는 풍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공사는 계속되었고 4년 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아현동 인근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였던 아현시장은 점점 규모가 축소되고,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줄어들었다. 시장 내에 있는 가게 업종도 바뀌었고, 전에 비해 많은 수의 학원이 생겨났다. 유명한 카페가 생겼다. 오래된 슈퍼가 사라졌다. 거칠고 딱딱한 돌로 되어 있던 언덕길은 아스팔트로 정비되었다.

하나, 둘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다. 기존과는 다른 성격의 조직으로 구성된 동네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동네였다. 과거는 과거로만 남았다. 현재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아직 남아 그 흔적을 남기고 있기도 하지만 그 또한 언제 사라질지는 미지수다. 동네는 계속 변해가고 있지만, 남겨진 의문들은 숙제로 남아 있다. 재개발 과정에서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에 그 풍경을 담아내는 것을 목표로 현장을 오고 갔으니 말이다. 여전히 존재하는 의문에 대해서는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생각해볼 거리로 남겨두고 싶다. 그 어디에도 답은 없지만,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혹은 어떤 상황에서 질문을 던져볼 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답을 내리지 못할지언정 누군가 나의 질문에 응해줄 것을 기대하며 함께 생각해볼 질문을 이곳에 공유한다.
“사라진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과정에서 발생했던 문제를 보고도 그냥 지나쳐야 하는 것일까? 이미 사라져버린 동네는 과거로만 남겨질 수 있겠지만 그 문제에 직면했던 당사자의 시간은 현재까지도 이어져올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어떻게 짚어볼 수 있을까? 그들에게는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반복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일까? 해결책은 없을까? 권력과 자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개인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사회구조 안에서 보호받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글과 사진. 이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