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전술핵 벨라루스 배치 …"나토에 핵전쟁 경고"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3. 5. 2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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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확산금지조약 무력화
러 핵무기 이전 본격 착수
1991년 이후 첫 해외 배치
나토국 국경 맞대 긴장 고조
우크라에 F-16 지원 카드
서방진영 움직임에 초강수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포럼 참석을 위해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왼쪽)이 24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자국산 핵무기를 벨라루스에 이전 배치하는 작업에 본격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미국 등 서방이 꺼내 든 'F-16 전투기 지원' 카드에 대해 러시아가 '핵무기 이전'이라는 맞불을 놓으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2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이날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포럼 참석차 러시아를 방문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벨라루스로 러시아산 전술 핵무기를 이전하는 작업이 시작됐다"며 "이미 핵무기를 보관할 충분한 크기의 저장 시설을 마련해뒀다"고 말했다.

또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미 핵무기가 벨라루스에 도착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아마도 그럴 것이다. 벨라루스로 돌아가면 직접 확인해 보겠다"고 답했다. 러시아산 핵무기 이전 소식은 이날 러시아와 벨라루스 군 당국이 전술 핵무기 이전 합의 등을 골자로 하는 협정에 서명한 지 몇 시간 뒤에 나왔다. 루카셴코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이 사실이면 러시아산 핵무기가 해외로 이전 배치되는 것은 1991년 이후 처음이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3월 벨라루스에 자국산 전술 핵무기를 배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는 이번 핵무기 이전 배치가 합법이라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서방이 똘똘 뭉쳐 러시아를 몰아붙이고 있는 만큼 핵무기 이전 배치는 자국 안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벨라루스에 넘긴 이스칸데르-M 미사일과 수호이(Su)-25 전투기에서 발사될 수 있는 전술 핵무기에 대한 직접 통제권은 여전히 러시아에 있다고 강조했다. 해당 미사일과 전투기 모두 전술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모델로, 러시아를 견제하는 서방의 움직임에 따라 최악의 경우 얼마든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러시아와 벨라루스 서쪽 국경에 대한 위협이 극도로 고조되는 만큼 핵무기를 활용한 군사 조치로 대응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열세를 보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F-16 전투기 지원 가능성이 러시아의 핵 위협을 다시 야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전투기 지원만은 절대 안 된다'는 기존 입장을 깨고 우크라이나 공군이 F-16 전투기 조종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허가했다. 직접적인 전투기 지원 약속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 공군에 조종 기술을 넘기면서 아예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전투기 지원'에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놨다. 러시아는 이에 즉각 반발했지만 이미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공군을 대상으로 하는 조종 훈련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전술 핵무기 이전 배치가 현실화되면서 미국 등 서방에 맞서려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간 관계가 앞으로 한층 돈독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지원하는 형국인 만큼 러시아의 통제 권한이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지면 벨라루스의 주권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쇼이구 장관은 "양국이 군사력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핵무기 이전 배치에는 서방 지원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를 넘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을 저지하려는 목적도 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벨라루스는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과도 근접해 있다. 나토 소속이면서 미국과 협력하는 이들 국가와 달리 벨라루스는 러시아 최대 우방국인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이 흘러가는 방향에 따라 언제든 핵무기를 앞세워 나토를 견제하고 위협할 수 있다.

이번 핵무기 이전 협정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볼모로 잡기 위한 수단이라며 강력 규탄하고 있다. 올렉시 다닐로우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3월 협정 체결 당시에도 "이번 협정으로 벨라루스 내정이 더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게 됐다"며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를 향한 벨라루스 국민의 거부감 역시 극대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처드 와이츠 미국 허드슨연구소 정치군사분석센터 소장은 "벨라루스로의 핵무기 이전 배치는 러시아가 보내는 정치적 신호"라며 "러시아는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엇 미사일, F-16 전투기 등 강력한 무기를 계속 제공한다면 핵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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