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TACO Again
예상대로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럼프는 겁쟁이) Again’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 7일(현지시간), 8월 1일부로 한국에 상호관세 25%를 부과하겠다는 서한을 트루스 소셜에 공개했다. 백악관은 같은 날 ‘상호관세율 수정 연장’ 행정명령과 14개국의 관세율 조정을 담은 팩트시트를 발표했다. 이 상황은 단순히 한국 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14개국 전체와 미국 통상정책의 방향성을 조감해야 이해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낸 서한은 강력한 압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TACO’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 4월 9일 상호관세 발효 당시 국채시장이 패닉에 빠졌던 경험이 재현되는 것을 우려해, 미국 자신을 위한 '소심한' 유예 결정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서한을 받은 14개국의 면면을 보면, 한국·일본 등 실제 협상 중인 동맹국,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신흥국, 그리고 미얀마·라오스·세르비아·보스니아 등 미국과의 교역 규모나 전략적 중요성이 크지 않은 국가들이 혼재돼 있다. 미국의 10대 무역적자국 중 한국, 일본, 태국만 있고 실제 미국과 협상을 한 나라도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정도다. 반면 중국(협상 일단락)·EU(협상 중) 등 미국의 최대 무역상대국은 제외됐다. 이들은 이미 별도의 협상 채널이 가동 중이기는 하나, 미국에 이미 보복을 했거나 보복을 예고한 강대국으로, 미국내 시장 충격을 우려해 명단에서 뺐다고 볼 여지가 있다.

0, 5로 맞춰 단순화
14개국이 서한을 받았다고 너무 겁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는 협상전술일 뿐 실제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유예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미얀마·라오스 등 일부 국가는 미국과 협상 없이 관세가 일방적으로 인하됐고, 일본은 오히려 24%에서 25%로 소폭 인상됐다. 일본은 조속 합의를 위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적극 움직였지만, 결과적으로 관세 인상이라는 ‘굴욕적’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역시 관세율을 0, 5 단위로 맞추려는 행정적 단순화 의도가 강하게 작용한 게 아닐까 유추한다.

이번 7.7 조치도 상당한 불확실성을 예고한다. 이를 상호관세율 변화로 살펴 보자. 지난 4월 미국은 185개국에 10% 기본관세를 적용하고, 주요 50여 개국에는 20~46% 등 다양한 상호관세율을 부과해 관세율 유형이 11개에 달했다. 7월 7일 14개국에 보낸 서한에서도 일부 국가의 관세율이 상향(일본 등)되거나 하향(라오스, 미얀마 등)됐지만, 관세율 유형 수는 11개로 변함없다. 미국의 10대 무역적자국을 기준으로 보면 이중 베트남(46%→20%), 중국(34%로 인상), 일본(24→25%) 등 일부 조정이 있었으나, 관세율 유형은 4월과 그대로 8개였다.
이는 미국이 다자무역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최혜국대우(Most Favored Nation) 체계를 사실상 파기하면서, 그로 인한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협상력 극대화와 압박 효과를 우선시한 결과로 해석된다. 이대로 실행된다면 미국의 관세정책은 매우 복잡해져 글로벌 공급망과 기업의 예측가능성은 크게 낮아질 뿐 아니라 세계무역질서에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이 글은 상호관세가 촉발할 다자무역질서 파기의 도미노 효과의 심각성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이 주제가 아직 국내에서는 주목받지 못하지만, 이미 미국 Trade Compliance Resource Hub나 영국의 UK Trade Policy Observatory 등에서 문제제기가 시작되었다. 이에 상호주의의 역사적 기원을 이해하고 이것이 압축된 MFN 원칙 파기가 야기할 문제점을 살핀 뒤 한국의 대응 방향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상호주의의 역사적 기원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란 한 국가가 자국 상품에 대해 상대국이 부과하는 관세율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수준의 관세를 상대국 상품에 부과하는,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tit-for-tat 관세다. 이 개념은 국제무역에서 ‘상호성 원칙(principle of reciprocity)’에 기반하며, 주로 양자 간 무역협정이나 무역분쟁 대응에서 사용되어 왔다.
상호관세의 역사는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과 프랑스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서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며 ‘관세 전쟁’을 벌였는데, 1860년 ‘코브든-슈발리에(Cobden-Chevalier) 조약’ 체결로 상호 관세를 ‘인하’해 무역을 촉진하는 계기를 삼았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와 반대의 움직임이 있었다. 1890년 제정한 ‘맥킨리 관세법(McKinley Tariff)’은 일방적인 고율 관세 부과 조치로, 유럽 국가의 상호적 관세 보복을 불러 일으켰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미국의 허버트 후버 행정부는 ‘스무트-홀리(Smoot-Hawley) 관세법’을 제정해 2만여 개 품목에 40~60%의 고관세를 부과했고, 이에 유럽 주요국들이 보복관세로 맞서면서 세계 무역이 마비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이후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4년 ‘상호무역협정법(Reciprocal Trade Agreements Act, RTAA)’을 제정해 의회로부터 관세 협상 권한을 위임받아 각국과 관세 ‘인하’ 협상에 나섰다. RTAA는 미국이 19개국과 27건의 양자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계기가 됐으나, 국가별로 상이한 관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의 한계와 비효율, 차별 문제가 드러났다.

이에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브레튼우즈 체제하에서 ‘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 체결을 주도하고, 한 국가에 부여한 관세 인하 혜택을 모든 회원국에 자동 적용하는 ‘최혜국대우(MFN)’ 원칙을 다자무역의 핵심 규범으로 삼기에 이른다. WTO 체제에서 상호성은 일대일 상호관세가 아니라 다자적 협상에 기반한 관세 인하를 의미한다. 경제사학자 더글러스 어윈은 MFN 원칙이 미국 무역정책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RTAA 제정 이후의 역사에서 상호주의는 관세 인하와 무역 확대, 즉 자유무역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불공정 무역’을 명분으로 상대국에 동일한 수준의 고관세로 맞대응하는 정책을 ‘상호주의’로 포장했다. 그 수사적 대칭성은 유권자를 현혹하기에 안성맞춤이다.
RTAA 기반 상호주의가 관세 인하를 위한 것이었다면, 트럼프 2기의 상호주의는 관세 인상을 위한 것으로,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셈이다.
다자무역질서 파기의 도미노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1월 취임 직후 관세전쟁의 속도를 높였고, 4월 2일에는 185개국에 10% 기본관세와 57개 대미 흑자국에 대해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고강도 조치를 발표했다. 한국에는 기본관세 10%에 상호관세 15%를 더한 25%가 적용됐다. 그러나 4월 9일 상호관세 발효 13시간 만에, 국채금리 급등 등 시장의 반발로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 대해 90일 유예를 결정했고, 7월 7일에는 이를 8월 1일까지 다시 연장했다.
이번 상호관세는 MFN 원칙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미국은 18개국과 관세 협상을 진행 중이나, 실제로는 영국·베트남 등 일부 국가만 협상 타결에 이르렀는데, 만약 7월 7일 기준 11개 유형의 관세율이 국가별로 부과된다면, 다자무역질서 파기의 도미노가 현실화될 수 있다. 물론 FTA(자유무역협정)와 같은 특혜무역협정에서도 MFN 원칙의 예외가 존재한다. 실제로 FTA 체결국끼리만 상호 더 낮은 관세나 특혜를 적용하는 것은 WTO 협정에서도 명시적으로 인정된 예외다.
MFN 원칙은 예측가능성과 단순성, 비차별 원칙을 보장하는 강력한 규범이다. 이것이 무너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미국이 영국에는 자동차·에탄올 등에 10% 미만 관세를, 베트남에는 20% 단일관세를, 한국에는 25%를 부과하는 식의 차별은 명백한 MFN 위반이다. 이는 미국 내 행정·경제적 부담을 키우고, 기업과 세관 모두 복잡한 시스템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다. 철강 역시 마찬가지다.
5월 9일자 Financial Times는 "영국이 MFN 원칙 훼손의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영국이 CPTPP(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가입하면서 EU와 CPTPP는 규칙 기반 무역 시스템 보호에 노력하자 다짐해놓고 실제로는 MFN을 위반했다는 지적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 역시 "영국의 MFN 파기 동조가 CPTPP에 미칠 파장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영국에 이어 베트남도 CPTPP 회원국이다. CPTPP는 EU와 달리 관세동맹이 아니어서 각 회원국이 독자적으로 관세 정책을 운용한다. 이 때문에 역외국인 미국이 CPTPP 회원국에 서로 다른 관세율을 적용하면 회원국간 경쟁 여건이 왜곡될 수 밖에 없다. 베트남 역시 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회원국이니 한국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무역규범 제정과 상사분쟁조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국제상공회의소(ICC)도 "MFN이 기업의 투자 결정과 일상적 운영에 필요한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는 중요한 원칙"이라고 운을 뗀 뒤 "상호관세가 MFN 위반"이라고 강조한다. 상호관세의 도미노는 무역 차별과 무역비용 증가를 초래하고, 각기 다른 규칙의 분절화로 광범위한 시장의 불확실성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어느 하나 틀린 말이 없다.
한국 입장에서 관세 전쟁은 한미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글로벌 공급망에 깊이 연결된 한국은 중국, 베트남, 일본, EU 등 주요 교역국의 관세율 변화에 따라 경쟁 환경이 달라진다. 특히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먼저 상호관세 서한을 보낸 것은, 동맹국조차 관세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다자주의에 기반한 자유무역질서는 한국의 경제안보적 국익에 직결되는 중대 사안이다. 따라서 MFN 원칙이 도전받게 된 상황에서, 한국은 이것이 얼마나 빠르게 현실화될지 그 파장은 얼마나 심각할지 냉정히 분석해야 한다.
한국은 단순히 국제 규범의 수용자(rule taker)가 아니라, 규범의 제정자(rule setter)로서의 역할을 고민할 시점이다. 정부가 강조해온 소프트파워와 능동적 국제경제질서 구축도 실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한국의 대응 방향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미국에 대한 적극 대응이다. 먼저 미국과 세계무역질서에 상당한 불확실성과 고비용을 초래하게 될 상호관세의 실행 의도와 가능성, 전망 등을 냉정히 분석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만일 이를 강행할 의사가 분명하다면 고위급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다각적으로 MFN 파기로 인한 미국의 부담과 부작용을 미 정계·산업계에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만일 현실적으로 관세 인상 수용이 불가피하다면, 한미 FTA를 폐기하기보다 관세 협상 결과를 국제법적으로 용인되는 한미 FTA의 틀에 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둘째는 국제 연대 강화다. 일본 등 유사한 처지의 국가들과 긴밀히 의견을 교환하고, 필요하다면 멀리 내다보고 MFN 원칙 준수와 다자무역질서 수호의 필요성을 국제사회에 적극 알리고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각자도생식 대응은 단기적 이익만 가져올 뿐,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불리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될 수 있다.
영국 서식스대학의 마이클 가시오렉(Michael Gasiorek) ‘포용적 무역정책 센터(Center for Inclusive Trade Policy)’ 소장은 "각국이 영국의 뒤를 이어 MFN 파기에 나선다면 글로벌 무역질서는 더욱 불안정해진다"며 국제 협력과 규범 준수 필요성을 역설한다. 캐나다, EU, 인도 등은 이미 미국의 관세에 맞서 WTO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국 역시 지레 움츠려들지 말고 가용한 외교적·법적 수단을 최대한 활용해 다자무역질서와 국익을 지켜야 한다. 한국의 외교역량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 김양희는 동경대 경제학 박사. 삼성경제연구소,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거쳐 대구대학교 경제금융통상학과에 재직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 무역위원, 외교부 국립외교원 연구부장 등을 역임했다. 최근 저서는 『경제학들의 귀환』(2022, 공저), 『2024 한국경제 대전망』(2023, 공저), 논문은 “Interactions between Japan's ‘weaponized interdependence’ and Korea's responses: decoupling from Japan vs. decoupling from Japanese firms”(2021), “미국 주도 ‘신뢰가치사슬’은 작동 가능할까?”(2023), 보고서는 “Economic security vs economic coercion and data protection vs data protectionism”(202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