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발 잃은 바다거북, 한담이의 바다는 없다 [시사기획창/죽음의 바당 1부 ‘숨’]⑥

문준영 2024. 9. 1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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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기획 창 '죽음의 바당 1부 숨' 중에서]

서너 살로 추정되는 국제 멸종위기종 새끼 푸른바다거북

버려진 그물에 걸려 있다가 죽기 직전 구조됐습니다.

[이정준/다큐멘터리 감독]
(잠수부가) 수심 16m 정도에서 그물에 엉켜 있는 거북이를 발견하신 거예요. 칼로 줄을 끊어서 수면으로 올라와 봤더니 그냥 그게 끝이 아니고 항문 쪽으로 낚싯줄이 이렇게 길게 나와 있던 거예요. 낚싯줄을 이렇게 살짝살짝 당기니까 목 쪽에서 약간 이렇게 움찔움찔하는. 그러니까 이게 연결되어 있고, 낚싯바늘이 어딘가에 걸려 있는 그런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이 되어서 구조치료센터 수의사님께 요청을 해서 인계를 해드리게 됐습니다.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를 먹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홍원희/아쿠아플라넷 제주 수의사]
낚싯바늘이 식도에 걸려 있었고요. 식도가 돌기들이 나 있어서 그 돌기에 걸려서 이 바늘은 밑으로 못 내려가고 있고. 낚싯바늘이 있는 상태에서 먹이 활동을 또 스스로 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소화를 시키면서 나머지 줄들은 쭉 내려간 거죠.

손을 쓰기엔 이미 늦었습니다.

부검 결과 기도에 동전만 한 낚싯바늘이 걸려 있었습니다.

1m가 넘는 낚싯줄은 장기를 관통했습니다.

온몸이 찢기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마지막 헤엄을 치던 새끼 거북이는 결국 숨을 멈췄습니다.

[홍원희/아쿠아플라넷 제주 수의사]
장이 줄을 주축으로 서로 꼬이기 시작하면서 전체적으로 다 괴사가 나 있더라고요. 그 혈관이 막히면서 일부 부위가 찢어지면서 장 파열이 있었던 거죠.

얼마 전 폐어구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된 국제 멸종위기종 붉은바다거북

사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이 한창입니다.

이 바다거북의 주둥이에서도 새끼 거북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한 크기의 낚싯바늘이 나왔습니다.

[정원준/서울대 수생생물의학실 연구원]
외관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고 근육량이나 등껍질의 상태를 미루어 보았을 때는 매우 건강한 상태의 바다거북이었는데 물고 있는 낚싯바늘이 혀 깊숙이 박혀 있었고요. 그로 인해서 먹이 활동의 저하, 면역력의 감소, 감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60~70% 정도로 저희가 추정하고 있습니다.

제주의 유일한 해양 동물 전문·구조 치료기관

폐어구에 걸려 앞발이 절단된 한담이도 이곳 생활을 오래 했습니다.

[홍원희/아쿠아플라넷 제주 수의사]
붉은바다거북 한담이는 2021년 여름에 한담 해변가에서 구조됐고요. 발견 당시에 그물이 몸에 싸여 있었고, 왼쪽 앞다리가 상완뼈가 여기에 드러나 있었어요. 팔은 다 썩어서 떨어져 나가고 그다음에 뼈만 조금 남아 있었는데 뼈도 썩고 있는 중이었어서 저희가 그 뼈를 제거하고 수술을 해준 거예요.

바다로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 한담이.

하지만 얼마 전 해양수산부 해양동물 보호위원회에서 영구 방류 불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홍원희/아쿠아플라넷 제주 수의사]
소독하면서 관리를 한 상태로 현재 아문 지는 한 1년 정도 됐어요. 다 아문 지는 저렇게 예쁘게. 근데 이쪽 보시면 아시겠지만 한 팔이 없기 때문에 바다로 나갈 수는 없게 됐어요. 이유는 만약에 응급 상황이나 배가 다가온다든가 포식자가 다가왔을 때 빠르게 피해야 되는데 보통 추진력을 내는 발이 앞다리거든요. 근데 한 다리밖에 없잖아요. 그러면 얘는 빠르게 도망가려고 한 다리를 치게 되면 몸이 돌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바다에 나갔다가는 응급 상황이, 위급한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바다에 안 나가는 걸로 결정이 났어요.

제 운명을 알기라도 한 듯, 자꾸만 수면 위로 올라와 구슬픈 숨을 내뱉습니다.

며칠 뒤 작은 수조에서 지내던 한담이가 모처럼 밖으로 나왔습니다.

넓은 수조에서 다른 동물들과 생활할 수 있는지 보기 위해섭니다.

[서동오/아쿠아플라넷 제주 주임]
좁은 수조에 있다가 큰 수조로 들어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기자) 어떠세요? 계속 봐온 입장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아요?

바다에서처럼 자기가 자유롭게 들어가서 적응 훈련 잘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첫 훈련을 앞두고 물장구를 칩니다.

얼마 전 낚싯바늘을 삼킨 새끼 거북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홍원희 수의사

그녀 역시 잔뜩 긴장했습니다.

한 발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한담이.

모처럼 자유로워 보입니다.

3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신기한 듯 여기저기 다가갑니다.

똑같이 생긴 거북이를 보면서
놀라 도망가기도 하고,

물고기 떼 옆을 유유히 지나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균형 잡기가 힘듭니다.

호흡 조절이 어려운지 자꾸 수면 위로 올라갑니다.

이내 다시 힘겹게 한 발 한 발 내딛습니다.

[홍원희/아쿠아플라넷 제주 수의사]
뼈가 괴사가 안 나고 조금이라도 팔이 남아 있다면 한담이는 바다에 나갈 수 있었을 거예요. 그게 너무 안타깝고요

수천km를 헤엄치며 광활한 바다를 누비는 바다거북

하지만 이제 한담이의 바다는 없습니다.

방송일시 : 2024년 9월 10일 (화) 10시 KBS 1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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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영 기자 (m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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