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해도 되겠네..너무 잘 생겨서 배우로 착각한 천만 감독
(Feel터뷰!) 영화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을 만나다
영화는 사법제도의 문제점과 사적 단죄, 사이버 렉카, 언론의 기능, 학폭 등 최근 다양한 콘텐츠에서 다뤄지는 이슈를 녹여 냈다. 1편에서 보여준 선악 대결의 단순 명료한 구도를 버리고 한 사건의 입체적인 면을 고집스럽게 들여다본다. 그로 인한 여러 인물 간의 복잡한 얽힘이 계속되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마음이 계속된다.
9월 11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류승완 감독을 만나 영화의 기획부터 개봉까지 9년 동안 베테랑을 향했던 애정, 깊은 서사, 변화된 톤앤매너 이유 등을 들을 수 있었다.
류승완의 첫 번째 시리즈물,
달라진 톤앤매너
-베테랑의 아트박스 사장님(마동석)이 먼저 ‘범죄도시’로 프랜차이즈화에 성공했다. 베테랑의 2번째 시리즈이자 류승완이 만든 첫 번째 시리즈물의 기대가 크다.
“형사물이라는 큰 범위에서는 ‘범죄도시’와 비슷하겠지만 ‘베테랑’은 결이 다르겠지만. ‘범죄도시’ 자문 형사가 같은 분이시다. 마동석이 ‘베테랑’ 출연할 때 이미 ‘범죄도시’가 기획 단계였다. 다음 시리즈가 기획될 때마다 소재가 겹치지 않게 연락도 보내주신다. 저도 개인적으로 시리즈의 팬이다. 아트박스 사장님이 경찰 돼서 계속 승승장구하면 좋겠다. (웃음) 모두가 9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을 거다”
-1편의 천만 흥행 이후 9년 만에 나온 속편이다. 게다가 명절에 개봉하는 유일한 텐트폴 영화가 되었다.
“서도철의 애정도가 다들 높아 촬영 끝나자마자 의상을 보관할 정도로 속편을 염두에 둔 영화였다. 1편이 대형 규모의 영화가 아니어서 제작비도 많지 않았다. 추악한 재벌 3세의 디테일을 잡아갈 때 저게 맞나 신경 쓸 정도로 고민되었다. 개봉할 때도 텐트폴 영화가 아니었다. 계속 일정이 밀리다가 다음 해 여름 시즌에 개봉하게 된 거다. 400만 명 목표만 넘자고 했는데 3배 넘는 성공을 거두니 차기작에 부담이 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황선배도 다른 스케줄을 소화하고, ‘극한직업’이나 ‘범죄도시’등 재미있는 형사물이 나오게 되었다. 드라마에서도 사회정의 구현 소재가 제작되어 자칫 반복하면 위험하겠다고 봤다. 너무 큰 성공에 겁이 나기도 했고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전편과는 분위기가 달라 심사숙고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1편의 톤을 기대했던 관객은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기도 한데.
“1편은 저를 분노하게 했던 몇 사건이 휘발점이 되었다. 그걸 해소하는 차원으로 만들었고 관객도 열광해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요즘 젊은 세대가 분노하는 상황에 베테랑이 밈으로 소비되는 걸 볼 때마다 어느 순간 불편함이 들었다. 그래서 저를 돌아보니 섬뜩했다. 어떤 현상에 순간 분노가 끓어올라 비난을 막 퍼부었는데.. 알고 보니 가짜 뉴스임을 알았던 순간 같은 거다. 그 상황에서도 저는 스스로를 변호하고 있더라. 저부터 현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비난과 분노라는 감정으로 해소하려 했던 상황이다. 이게 과연 정당했던 건가 싶었다.
여러 생각 끝에 9년이란 시간이 흘러 버렸다. 속편은 명확한 실체가 없고, 답도 없어. 영화를 보고 나서 토론으로 이어지는 질문을 여러 개 던져볼 생각이었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나치 가족이 합리화했던 당시의 정의처럼 섬뜩하게 다가온 느낌도 비슷했다”
-1편의 캐릭터들도 나이 들었다. 9년이 지나면서 외모와 상황도 변화를 맞이했다.
“매번 새로운 길을 선택했을 때마다 이전과 어떻게 다를지, 기대를 충족시켜 주면서 이전 것을 넘어설 수 있을까 고민한다. 서도철 팀은 변동 없이 등장해야 했고 조연은 변화를 주어야 했다. 이건 제작진만 아는 건데, 해치 사건을 두고 TV 패널이 등장하잖냐. 두 명은 신진물산의 조태오 쪽 변호사와 경제 자문이다. 그들 마저도 패널로 승격되었다.
정의TV 운영자 정의부장(신승환)은 언론사 기자였는데 뇌물 받고 해고되었다. 이후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자기 채널을 꾸린 뉴스 공급자로 변신했다. 전소장(정만식)도 진화된 얄미움으로 등장시키고 싶었다. 1편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벌어지는 일과 주요 사건이 맞닿으면서 확장해 나간다고 생각했다.
시리즈물은 처음이다 보니, 친숙함과 익숙함의 조화가 숙제였다. 전작의 성공 패턴을 반복하다가 무너지는 상황을 봐왔기 때문에 반복 재생은 위험하다고 봤다. 1편과 벌어진 시간을 핑계로 보폭을 넓게 걸어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앞서 말한 여러 고민을 ‘서도철’의 일상과 업무에 심어 이야기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1편에서 아들이 초3일 때 이런 말을 한다. ‘깽 값 물어오는 건 참아도 어디서 맞고 들어오지는 말아라’는 대사다. 그때는 관객도 많이 웃었지만 지금은 잘못된 태도라 반성이 들었다. 저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고 보니 서도철의 성장이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가정이 있는 인물이 지닌 정의의 목적은 피곤하고 비루하고 짜증 나더라도 내 일상,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거다. 가정을 꾸린다는 건 전투이며 개인의 삶과 직장인의 삶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 서도철에게 중요한 건 가정사이고, 잘 돌아가야 할 일상이다. 희로애락이 영향 주는 서민 영웅 서사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액션, 서사, 해치를 둘러싼 사회현상도 중요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아빠가 생각이 짧았다’라는 대사다. 그 장면이 베테랑 2의 특성이자 핵심이다. 사과하고 반성할 줄 아는 어른의 아름다움. 일상을 지키려 싸우는 어른의 모습은 얼마나 멋있을 수 있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도철도 아들이 학폭 가해자란 의심이 들면서 내면의 혼란이 야기될 때, 반드시 가정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긴다”
정해인의 흐트러짐 없는
이미지 깨보고 싶어
-새로 합류한 정해인의 어떤 모습에서 박선우의 뒤틀린 정의감을 발견했나. 박선우는 과거가 밝혀지지 않아 목적의식이 다소 생략되어 있다.
“올해 끔찍한 더위를 두고 다양한 설명이 가능했지만 뚜렷한 해결책이나 실체도 없었지 않나. 저도 근원 없는 악의 발생과 형태가 필요했다. 초반에 빌런을 내세우지 않았던 것도 ‘누가’가 아닌, ‘어떻게’를 중요하게 봐주길 바랐던 거다.
다들 조태오와 많이 비교하는데 박선우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조태오는 본인이 악행이라 생각하지 않아 딜레마가 없는 인물이고, 박선우는 명확한 자기 신념이 정의라고 여겨 이주여성의 사연이 가짜 뉴스임을 안다고 해도 직진한다. 대중의 공분 대상을 처형해 주다가 실체를 까발리며 대중의 혼란을 즐기려는 사람이다. 관객도 각자의 기준에서 혼란스럽길 바랐다. 그래서 형사 입장도 난감한 거다. 정의의 사도라 불리는 해치를 심적으로 응원하면서도 잡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박선우의 전사 버전도 준비되어 있었다가 생략했는데 1편의 주요 캐릭터와 연결되어 있다. 범죄의 단서를 제공하고 설명하는 순간 실체 없는 두려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봤다. 해인 씨에게도 일부러 전사를 알려주지 않아서 본인도 힘들었을 거다. (웃음)”
-박선우의 다초점 눈빛 연기, 클로즈업 등 정해인의 발견이란 말이 들린다.
“일단 이번 캐스팅은 서도철보다 젊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해인 씨는 <시동>에서 처음 봤는데 그동안 바른 태도를 지닌 사람을 수도 없이 만났지만 역시 다산의 자손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웃음) 깍듯하지, 짝다리도 안 짚지.. 오래 이야기해도 흐트러짐 없는 태도지, 그 와중에 해맑은 미소가 유지된다.
내심 속내를 파악해 보려고 무진장 노력했던 호기심이 캐스팅에 반영된 거 같다. 화날 때는 운동으로 해소한다는 말도 뭔가 섬뜩했다. (웃음) 화를 운동으로 삭히면 최악의 방법인 거다. 주변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안은 원자가 들끓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 같다고나 해야 할까. 신뢰감이 큰 배우여야 눈빛 하나만 바뀌어도 이상함을 느끼겠다고 판단했다. 전사를 굳이 풀어주지 않아도 이 사람의 의도를 모를 때 모두가 집중하겠다고 생각했다. 흔히 맑은 눈의 광인이라고 하잖냐. 흠집 하나 없는 것의 무서움, 흐트러짐이 궁금해서 박선우를 맡겼다. 개인적인 재미와 사회정의 실현, 본인의 고통이 모두 박선우에게 있더라. 해인 씨의 파괴력이 컸다”
고전액션 오마주, 4가지 액션에 중점
-액션에 진심인 감독답게 이번 영화도 시그니처 액션이 여럿 등장한다.
“박력과 타격감은 장르 영화 제작자의 본질이다. 시원한 느낌표보다 물음표를 던지는 전략을 선사하고자 했다. 특히 어려운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특별한 영화적 체험, 극장만의 특별함이 꼭 필요했다. 그게 시각적 스펙터클이든, 뼈가 부서지는 고통스러운 체험이든, 한 대 쥐어박아 주는 쾌감이든. 익명의 사람과 극장이란 장소에 모여 숨죽여 응원하고 한숨 돌리며 해소하는 특별함을 돌려주고 싶다는 게 목표였다.
1편 시사회나 해외 관객의 반응을 돌이켜보니 서도철이 아플수록 관객 반응이 커짐을 캐치했다. 관절 건강에 좋지 못할 수 있지만 그 부분을 시그니처로 삼았다. 오프닝의 슬랩스틱 액션은 무성영화의 헌사다. 전편을 본 관객의 진입이 쉽도록‘이건 애피타이저였어, 본편은 홍어야’라고 외치며 시작한다.
1편의 즐길 거리를 셋업하고 액션 강도를 높여 남산 계단 장면으로 가서는 경쾌한 추격전이 이어진다. 계단 액션에서 충격을 일으켜서 단짠단짠으로 배치한 구성이다. 비 오는 옥상 수중 격투 장면은 캐릭터 각각 한 컷씩 휘두르면서 나오는데, 히어로 영화의 방식을 차용했다.
마지막 터널 액션은 온전히 서도철의 지독함을 보여주기로 했다. 액션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격렬한 순간에 서도철이 어떤 사람인지 보이는 게 중요했다.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지키는 게 목적인 사람이다. 서도철이 1편에서는 정당방위 근거를 위해 맞았다면 2편은 내가 저지른 사건으로 단 한 명의 피해도 입지 않길 바라는 싸움이다. 네 가지 액션 포인트를 전략적으로 다뤄 각기 다른 흥미를 전달하고 인물을 이해하도록 설계했다”
-마지막 터널 액션 장면에서 자기가 만든 함정에 빠지는 설정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운이 따라주는 것도 앞서 말한 무성영화의 오마주인건가. 액션 장인도 어려운 지점이 있을 거 같다.
“영화는 현실을 모사하는 것에서부터 출발이다. 진짜 같은 가짜를 볼 때는 거부감이 없지만 정작 진짜를 보게 되면 끔찍하다. 잔인한 장면도 영화니까 잔인한 장면을 볼 수 있는 거다. 진짜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적인 상황을 만드는 게 모든 제작자의 숙제 같다. 2분짜리 액션이라도 촬영 내내 골머리를 앓는 험난한 과정의 연속이다 청각, 특수효과, 디자인, 인물 성격 등이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분야다.
채플린이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 것처럼 사고 현장도 시선에 따라 심각하게도 웃기게도 보이기도 만들었다. 해치는 서도철을 잡기 위해 깨진. 유리 세팅을 하면서도 만족스럽고 즐거웠을 거다. 하지만 서도철은 즐기는 자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 즉 지키는 사람이라 강한 사람이다”
-쿠키 영상은 칸 버전에는 없었다고 들었다. 조심스럽게 3편의 가능성도 있는 건가.
“칸 버전은 영화제 상영이 목적이고 그 내용은 한국 관객이 이해하는 정서라 독립된 영화라고 생각해서 쿠키 영상이 없었다. 뭐.. 3편이야.. 2편이 손익을 넘겨야 가능하다. (웃음) 하지만 3편의 기초 스토리와 해치의 스크립트가 준비된 건 사실이다”
글: 장혜령
사진: CJ ENM
- 감독
- 출연
- 신승환,오달수,오대환,김시후,안보현,권해효,변홍준,조관우,허준호,김재화,김가을,박준면,박경혜,주보비,신민재,우정원,이원재,류승완
- 평점
-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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