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현의 2024시즌 - 자신감이 나를 바꿨다.

넷플릭스 영화 ‘빅 조지 포먼’에서 은퇴 후, 40대 중반의 배불뚝이 아저씨로 링 위로 다시 돌아온 조지 포먼은 챔피언 마이클 무어러와의 경기 10라운드에 들어서면서 이렇게 읊조립니다.
‘Everything I was searching for was already there.’
이 독백은 ‘내가 찾아왔던 모든 것들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로 번역이 됐습니다.
이후 열세였던 경기를 뒤집고 포먼은 45세의 나이로 다시 한번 프로복싱 헤비급 챔피언에 오릅니다.

넷플릭스 영화 빅 조지 포먼 포스터 <사진 IMDB>

여기 약관 스무 살의 한 투수가 있습니다.
비록 프로 입단 2년 차에 지나지 않지만 그 기간 동안 많은 것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그가 찾던 것도 역시 그 안에 이미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투수는 바로 한화 이글스의 김서현입니다.

PTS 데이터로 봤을 때 김서현의 직구는 2024 시즌 데뷔 시즌이었던 2023 시즌보다 근소한 차이지만 느렸습니다. (2023년 241구 평균 151.7km/h, 2024년 419구 평균 150.3km/h)
하지만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이 평균 상하 릴리스포인트와 평균회전수였습니다.
2023년 평균 상하 릴리스 포인트 : 159.2cm
2023년 평균 회전수 : 34.2
2024년 평균 상하 릴리스 포인트 : 165cm
2024년 평균 회전수 : 39.0
<PTS데이터 : sports2i>

김서현 선수와 인터뷰 중

이는 KBO공식 기록업체 스포츠2i의 PTS 자료이고 업체 측에서는 여기에 단순하게 60을 곱해서 RPM으로 환산할 경우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하며 권장하는 방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느낌을 위해서 RMP으로 환산해 보겠습니다. 각 수치에 60을 곱해서 구한 RPM은 2023년은 2052였던 반면 2024년은 2340입니다. 매우 큰 차이입니다.
여기에 릴리스 포인트도 5cm 이상 높아지면서 달라진 높이 / 회전축과 함께 공의 위력을 더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 변화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지난 12월 2일, 김서현 선수와 만나서 2023년과 2024년의 달라진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역투하는 김서현 <사진 OSEN>

“자신감의 차이였습니다. 2023년은 프로가 아마와 다르다는 걸 느낀 경우가 많았는데 대표적인 것들이 투구폼의 고정이나 선발 등판 등등이었죠.(2023년 20회 등판 중 선발 1회) 제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는 환경이었어요.”

사실 입단 당시에 만났던 고교생 김서현은 다양한 릴리스 포인트에서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할 수 있는 투수였습니다. 각 구종에 대해서 다양하게 던져보면서 최적의 릴리스 포인트를 찾아서 던졌던 거죠.
“올해 들어와서 데이터로 5cm의 높아지기는 했지만 제가 팔을 올리고 싶어서 올린 것은 아니고요. 자신감을 가지고 던지다 보니 릴리스 포인트도 자연스럽게 잡혔습니다. 구단을 통해서 받아보는 트랙맨 자료로는 높을 때 168cm까지 올라가더라고요.”

팔 동작을 의식적으로 마치 풍차처럼 크게 휘돌리는 것도 이런 자신감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궁금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동작이 커질 경우 여러 가지 단점도 있을 수가 있거든요. 대표적인 것이 tipping pitch(구종 노출)가 될 수도 있죠.
“저는 강속구 투수는 구종 노출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실제로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치
‘어차피 내가 던지는 공은 빠른 공 위주니 칠 테면 쳐 봐라’
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이런 자세 또한 2024 시즌 들어 회복한 김서현의 자신감을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큰 동작의 팔 스윙에서 드러나는 전완근이 매구 혼신의 투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는 공을 꽉 잡고 던지는 편입니다. 꽉 잡고 공을 놓는 것이 아니라 때린다는 느낌을 가지고 공을 던지는데 던지다가 오늘 좋다 싶으면 조금 더 과감하게 때렸습니다.”
팔을 휘두를 때의 전완근이 돋보이는 이유는 이렇게 공을 꽉 잡는 기본 동작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대표팀에서도 위력을 발휘한 김서현 <사진 OSEN>

과거 두산 베어스의 고 조성민 코치가 해설을 하던 시절, 일본에서 투수의 기본 동작 중 가장 크게 강조하는 두 가지를 자주 언급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그립을 꽉 잡을 것, 다른 하나는 가슴을 활처럼 활용할 것이었습니다. 조 코치는 그립에 대해서 요미우리 시절, 당시 투수코치들이 강조했던 내용이라면서 팽이를 예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팽이를 강하게 돌리고 싶을 때, 실을 살살 감는가? 세게 감는가? 당연히 세게 감아야 한다. 꽉 감고 세게 채 줘야 팽이에 강한 회전이 걸린다. 야구공도 마찬가지다. 꽉 잡고 릴리스 때 강하게 풀어줘야 공에 강한 회전이 걸린다.”
일본 야구에 관심이 많은 김서현 선수가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강조하는 기본적인 동작을 스스로 지키고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김경문 감독이 시즌 중반 부임한 이후 함께 팀에 합류한 양상문 투수코치와 김서현 선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습니다. 한화에 합류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는데 양상문 코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서현은 좋은 것을 타고난 선수다. 우선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해주고 싶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해준 것’
결국 김서현을 바꾼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시즌 초반 떨어졌던 구속도 다시 지난 시즌 수준으로 올라왔습니다.
자신감을 되찾은 김서현은 시즌 중후반 들어서는 경기 후반 중요한 상황을 책임지는 셋업맨 역할을 수행했고, 그 여세를 몰아서 국가대표팀에서는 4경기에서 4이닝 무실점 투구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한화의 여름 유니폼과 함께 본 궤도에 오른 김서현의 역투 <사진 OSEN>

제가 김서현 선수를 만나면서 가장 키(Key)가 되는 질문으로 생각했던 것은 이겁니다.
“본인은 본인의 자신감이 퍼포먼스의 상승세로 이어지는 유형이라고 생각하는가?”
김서현 선수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답했습니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유일했던 루틴도 상승세를 도왔습니다.
“주변에서 형들도 그렇고 권유가 있었어요. 루틴을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권유였죠. 그러면서 유일하게 취한 루틴이 마운드 아래 십자가를 그리는 루틴이었는데요. 이게 매번 그려보니까 각 구장 마운드도 느낌이 다 다르더라고요. 예를 들면 창원NC파크는 좀 단단한 느낌도 있고요. 내년 새로운 대전야구장의 마운드는 어떨지가 궁금합니다.”

지난 프리미어12 이후 저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특급 유망주 선수들이 선발로 커줬으면 하는 욕심 말이죠.
김서현 선수는 동년배 최고의 특급 유망주인 만큼 선발에 대한 욕심이 없는지 궁금함이 컸습니다.
“저는 선발에 대한 생각이 없어요. 다른 이유보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선발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였는지 2023년에 선발 등판할 때도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제게 기대했던 모습은 위기가 왔을 때 그 위기를 막아내는 거였고 저는 그 역할을 즐겼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역할을 잘 수행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마무리 투수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본인의 욕심이 경기를 시작하는 쪽이 아니라 경기를 승리로 끝내는 쪽이라면 그 선택도 물론 저는 존중합니다.
그나저나 지난 자선 야구에서 서현핑은 어찌 된 일이었을까요?
“그건 제 결정이 아니었어요. 제가 그런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수줍게 ‘서현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김서현 선수의 서현핑 분장의 이야기는 영상을 통해서 만나보시죠.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